백영호 시인의 '부활의 아침 '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백영호 시인





부활의 아침

시인 백영호




눈꺼풀 너머 어둠을 뚫고
주님의 선명한 핏빛이 내려옵니다
식어버린 내 살점을 지나
멈춰 선 핏줄마다 뜨겁게 흐릅니다

마른 뼈 같던 고독한 시간에
붉은 생명의 꽃이 피어납니다
내 눈빛은 이제 하늘을 보고
내 심장은 부활의 박동으로 다시 뜁니다

오늘 아침, 내 모든 피돌기는
죽음을 이긴 그 사랑을 노래합니다
온몸으로 돋아나는 부활의 아침
나는 다시 주님을 닮아 태어납니다.





백영호 시인,
ㅡ어둠을 통과한 몸, 빛으로 다시 태어나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이끌어 올린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통과해 도달한 언어다. 시각이 흐려질수록 내면의 감각은 더욱 또렷해진다.
이 작품은 ‘보는 시’가 아니라 ‘흐르는 시’다. 피로, 심장으로, 존재 전체로 읽히는 시다.

첫 행에서 이미 방향이 정해진다. “눈꺼풀 너머 어둠”은 단순한 밤이 아니다. 시인의 현실이며, 동시에 인간이 마주한 근원적 한계다. 그 어둠을 “주님의 선명한 핏빛”이 뚫고 내려온다. 빛이 아니라 피로 시작하는 이 전환은 결정적이다. 여기서 구원은 관념이 아니라, 실제로 몸을 적시는 사건이 된다.

“식어버린 내 살점”과 “멈춰 선 핏줄”은 생명의 정지 상태를 드러낸다. 그러나 그 정지는 죽음의 완결이 아니라, 다시 흐르기 위한 정지다. 이어지는 “뜨겁게 흐릅니다”에서 시는 단순한 회복을 넘어 ‘재창조’의 단계로 나아간다.
이때 피는 생리적 현상을 넘어, 신성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가 된다.

특히 “마른 뼈 같던 고독한 시간”이라는 표현은 깊다. 시간마저 생기를 잃어버린 상태, 존재의 전반이 메말라 있던 국면이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붉은 생명의 꽃”이 피어난다.
죽음의 형상 위에 생명이 피어나는 이 역설은 곧 부활의 본질이다. 부활은 단순히 살아나는 일이 아니라, 죽음의 자리에서 전혀 다른 차원의 생명으로 전환되는 사건이다.

이 시에서 ‘몸’은 단순한 육체가 아니다. “내 모든 피돌기”라는 표현에서 보듯, 존재의 미세한 결까지도 신앙의 통로가 된다. 신앙은 생각이 아니라 흐름이며, 몸의 리듬이다. “부활의 박동”이라는 구절은 이를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낸다. 심장은 생명을 유지하는 기관이 아니라, 신적 리듬을 받아들이는 자리로 확장된다.

마지막 연에서 시는 선언으로 나아간다. “나는 다시 주님을 닮아 태어납니다.” 이 문장은 단순한 신앙 고백이 아니다.
시 전체를 관통해 온 변화의 필연적 귀결이다. 어둠을 통과한 몸이 결국 닮아가게 되는 것은 빛이 아니라 사랑이다. 죽음을 이긴 사랑, 그것이 이 시의 중심이며, 존재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힘이다.

이 작품은 특히 시인의 상황을 떠올릴 때 더욱 깊은 울림을 지닌다. 시각이 희미해질수록 세계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다가온다. 보이지 않기에 더 선명해지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시가 도달한 자리다.

이 시는 슬며시 귀띔한다.
빛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피로 흐르는 것이라는 사실을.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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