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아 있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아직 살아 있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





청람 김왕식




부활을 죽음 이후의 사건으로만 이해해 온 시간은 길다. 그 익숙한 관념을 잠시 내려놓고 바라보면, 부활은 전혀 다른 결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은 사라진 생명이 되돌아오는 일이 아니라, 이미 살아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알지 못했던 존재가 문득 자기 자신을 알아차리는 순간에 가깝다. 생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지만, 그 흐름이 어디서 시작되어 어디로 향하는지 묻지 못한 채 지나온 시간들. 그 무심한 지속이 어느 날 스스로를 비추어보는 찰나, 삶은 처음과도 같은 낯선 얼굴로 다시 열리게 된다.

이때 일어나는 변화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내부에서 조용히 번져가는 감각이다. 마치 오래 닫혀 있던 창이 열리듯, 이미 그 자리에 있던 공기와 빛이 비로소 드러나는 일이다.

이전과 같은 하루, 같은 몸, 같은 시간임에도,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순간 존재는 다른 층위로 이동한다.

어둠과 빛의 관계 또한 새롭게 읽힌다. 빛이 어둠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스스로를 자각하는 빛이 태어난다. 어둠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 안에서 자신을 인식한 의식이 조용히 눈을 뜬다. 이때 빛과 어둠은 더 이상 서로를 부정하는 관계가 아니라, 하나의 깊이로 포개진다. 대립이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대립 자체가 의미를 잃는다.

심장의 박동 역시 그러하다.

오래전부터 멈춘 적 없이 이어져 온 이 리듬이 단순한 생존의 증거가 아니라, 존재 전체를 관통하는 고유한 울림임을 깨닫는 순간, 삶은 전혀 다른 결을 갖는다. 이전까지의 생이 무의식의 흐름이었다면, 그 이후의 생은 자각된 참여가 된다. 같은 숨결이 더 이상 같은 의미로 머물지 않는다.

무덤 또한 물리적 장소로 한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말하지 못했던 시간, 건네지 못한 마음, 끝내 마주하지 못한 진실들이 쌓여 있는 자리다. 삶의 이면에 조용히 퇴적된 미완의 순간들, 그곳이 존재의 또 다른 심연이다.

부활은 그 무덤을 깨뜨리고 무엇인가를 끌어내는 일이 아니다. 외려 그 안에 머물러 있던 것들이 서서히 밖으로 스며 나와, 삶 전체를 다시 짜 맞추는 과정에 가깝다.

이러한 의미에서 부활은 거대한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아주 미세한 감각의 전환에서 시작된다.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스며드는 일이며, 단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확장되는 상태다. 죽음을 이긴다는 표현 역시 새롭게 이해되어야 한다. 죽음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마저도 품어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하나의 상태에 이르는 것. 그때 생과 사의 경계는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한다.

마침내 한 존재가 자신의 끝까지 닿았을 때, 그 끝은 더 이상 끝으로 남지 않는다. 경계로 여겨졌던 지점이 문이 되고, 닫힘으로 알았던 자리가 열림으로 바뀐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보이지만, 그 내부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시작된다.

그 전환의 자리에서,
모든 것은 처음처럼 다시 깨어난다.


ㅡ청람

작가의 이전글부활 ㅡ끝까지 닿은 자리에서 처음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