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인 ㅡ 흐르는 거리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윤동주 시인 제2 부 침묵의 결기
(3편) 흐르는 거리






흐르는 거리




윤동주






으스럼이 안개가 흐른다. 거리가 흘러간다. 저 전차, 자동차.
모든 바퀴가 어디로 흘리워 가는 것일까? 정박할 아무 항구도
없이, 가련한 많은 사람들을 싣고서, 안갯속에 잠긴 거리는,

거리 모퉁이 밝은 포스트 상자를 붙잡고, 섰을라면 모든 것이
흐르는 속에 어렴풋이 빛나는 가로등, 꺼지지 않는 것은 무슨
상징일까? 사랑하는 동무 박朴이여! 그리고 김金이여! 자네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 끝없이 안개가 흐르는데,

"새로운 날 아침 우리 다시 정답게 손목을 잡어 보세 " 몇 자 적어 포스트 속에 떨어트리고, 밤을 새워 기다리면 금휘장에 금단추를 삐었고 거인처럼 찬란히 나타나는 배달부, 아침과 함
께 즐거운 내림來臨,

이 밤을 하염없이 안개가 흐른다.

(1942.5.12)







윤동주 시 〈흐르는 거리〉
― 멈출 수 없는 시대 속에서 붙잡고 싶은 것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 시는 멈춰 서 있는 사람이 쓴 시다.
그래서 모든 것이 더 빨리 흐른다.
〈흐르는 거리〉는 풍경의 기록이 아니라 속도의 기록이다.
윤동주는 거리의 움직임을 묘사하지 않는다. 대신 그 흐름에 휩쓸리지 않는 한 사람의 의식을 드러낸다.
“안개가 흐른다. 거리가 흘러간다.”라는 반복은 단순한 서술이 아니라 체감의 언어다. 안개는 흐리고 거리는 흘러가지만, 그 속에서 멈춰 서 있는 시인의 감각은 오히려 또렷해진다.

이 시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퀴’다. 전차와 자동차, 그 모든 바퀴는 어디로 향하는가. 윤동주는 목적지를 묻지 않는다. 그는 ‘흘러간다’는 사실 자체를 묻는다. 정박할 항구 없이 흘러가는 세계, 그 위에 실린 사람들의 가련함을 그는 이미 알고 있다. 이 장면에서 거리는 단순한 도시 공간이 아니라 시대의 은유가 된다.

윤동주는 그 흐름에 동참하지 않는다. 대신 모퉁이에 서서 그것을 바라본다.
시의 중심은 ‘포스트 상자’ 앞에서 멈춘 장면이다. 거리의 속도와 반대로 시인의 동작은 정지한다. 그는 흐르는 세계 속에서 유일하게 멈춘 사람이다. 그리고 그 멈춤은 패배가 아니라 선택이다. 흐르는 것들 속에서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가, 이 질문이 여기서 시작된다. 가로등의 빛 역시 같은 상징이다. 모든 것이 흐르는데도 꺼지지 않는 불빛은 사라지지 않는 무엇을 암시한다. 그것은 희망이면서 동시에 양심이다.

이 시의 가장 인간적인 대목은 이름을 부르는 순간이다.
“사랑하는 동무 박이여, 김이여.” 여기서 시는 추상에서 현실로 내려온다. 윤동주는 군중 속에서 익명의 인간을 보지 않는다. 그는 이름을 기억한다. 이 이름 부르기는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인간을 끝까지 잊지 않겠다는 의지다. 흐르는 시대 속에서도 인간은 개별적으로 남아야 한다는 윤동주의 신념이 여기서 드러난다.

편지를 쓰는 장면은 더욱 절실하다. 몇 자 적어 떨어뜨린 편지, 그리고 밤새 기다리는 시간. 이 기다림은 낭만이 아니라 절박함이다. 그는 응답을 확신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쓴다.
윤동주는 흐르는 세계 속에서 유일하게 ‘머무는 방식’을 알고 있었던 시인이다.

마지막의 이미지는 찬란하다. 금휘장과 금단추를 단 배달부가 나타나는 장면은 현실이 아니라 희망의 형상이다.
아침과 함께 오는 내림은 단순한 소식이 아니라 존재의 확인이다. 이 시에서 윤동주는 흐르는 세계를 막지 않는다. 대신 그 흐름 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들을 붙잡는다. 이름, 기다림, 빛. 그것이 그의 저항이며 그의 품격이다.

〈흐르는 거리〉는 도시의 기록이 아니라 인간의 기록이다. 멈출 수 없는 시대 속에서도 멈출 수 있는 마음이 있다는 사실, 윤동주는 그 조용한 가능성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 달삼과 오산학교 문예교사 청람의 대화


“선생님, 왜 다 흐르는데 그는 멈춰 있죠”




운동장은 어두웠는데 가로등만 유난히 또렷했다.
달삼은 시집을 펼친 채 오래 움직이지 않았다.

“선생님…”

청람이 조용히 말했다.

“그래, 달삼아.”

달삼이 고개를 들었다.

“이 시는요… 다 흐르는데 한 사람만 멈춰 있어요.”

청람이 웃었다.

“그래서 더 선명하다.”

달삼은 첫 구절을 다시 읽었다.

“‘안개가 흐른다. 거리가 흘러간다.’
선생님, 왜 이렇게 자꾸 흐른다고만 하죠?”

청람이 대답했다.

“흐른다는 건 멈출 수 없다는 뜻이다.”

달삼이 물었다.

“그럼 윤동주는 왜 같이 안 흘러가요?”

청람이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누군가는 멈춰야 하기 때문이다.”

달삼은 시의 다음 구절을 짚었다.

“‘모든 바퀴가 어디로 흘리워 가는 것일까’
이거 너무 무서워요.”

청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목적 없이 움직이는 세계가 더 무섭다.”

달삼이 낮게 말했다.

“그래서 포스트 상자를 붙잡고 서 있나 봐요.”

청람이 웃었다.

“좋은 독서다.”

달삼이 다시 물었다.

“근데요 선생님…
왜 갑자기 이름을 불러요?
박이여, 김이여…”

청람이 천천히 말했다.

“흐르는 세계 속에서도
이름은 남는다.”

달삼이 중얼거렸다.

“… 이름은 남는다.”

청람이 이어 말했다.

“윤동주는 군중을 보지 않는다.
사람을 본다.”

달삼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을 읽었다.

“‘밤을 새워 기다리면’…
선생님, 이건 너무 쓸쓸해요.”

청람이 고개를 저었다.

“쓸쓸함이 아니라 결심이다.”

달삼이 물었다.

“기다리는 게요?”

청람이 대답했다.

“그래.
기다림은 가장 느린 저항이다.”

달삼은 시집을 천천히 덮었다.

“선생님…”

“그래.”

“이 시를 읽고 나니까요…
저도 조금 멈추고 싶어요.”

청람이 말했다.

“멈추는 건 겁나는 일이다.”

달삼이 웃었다.

“… 그래도 해보고 싶어요.”

청람이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그럼 잘 읽은 거다.”

그 말이
가로등 아래 길게 늘어진 그림자 위로
조용히 내려앉았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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