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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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들여다보는 일
어느 날,
아무도 없는 방에 혼자 앉아 있는데도 낯선 기척이 느껴질 때가 있다. 밖이 아니라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하루 종일 수많은 말을 했는데, 정작 스스로에게는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때 비로소 알아차린다. 사람은 그렇게 자신을 건너뛰며 살아간다.
나 자신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거울을 보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꾸며진 얼굴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 감추어 둔 표정을 마주하는 일이다.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던 마음의 주름, 스스로도 외면해 온 생각의 결을 천천히 따라가는 일이다. 이 일은 결코 편안하지 않다. 외려 불편하고, 때로는 두렵다. 자신이 알고 있던 자신과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삶은 바깥으로 향하는 속도로 가득 차 있다. 해야 할 일, 만나야 할 사람,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사람은 점점 더 바깥으로 흩어진다. 그러나 그 속도가 아무리 빨라져도, 내면은 그만큼 깊어지지 않는다. 더 얇아진다. 그래서 어느 순간, 설명할 수 없는 공허가 찾아온다. 무엇인가 빠진 것 같은데, 무엇이 빠졌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 그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채움이 아니라, 멈춤이다.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은 멈추는 데서 시작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시간, 그 시간 속에서 마음은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꺼낸다. 그 목소리는 크지 않다. 아주 작고, 조심스럽다. 그래서 서두르면 들리지 않는다. 오래 기다려야 한다. 감정이 가라앉고, 생각이 잠잠해질 때, 비로소 드러난다.
그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것은 대단한 깨달음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아주 사소한 사실들이다. 왜 그 말에 상처받았는지, 왜 그 일을 지나치게 붙잡고 있는지, 무엇이 두려워서 피하고 있는지. 그러나 바로 그 사소함이 삶의 방향을 바꾼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 채 쌓아 올린 선택들은 결국 흔들리기 때문이다.
자신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스스로를 판단하는 일이 아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자리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자리다. 부족함도, 어긋남도, 미숙함도 함께 끌어안는 일이다. 그때 비로소 사람은 자신에게서 도망치지 않게 된다. 자신과 화해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과도 평온하게 마주할 수 있다.
세상은 끊임없이 밖을 보라고 말한다. 더 멀리, 더 높이, 더 많이. 그러나 삶의 균형은 그 반대편에 있다. 안으로 향하는 시선, 스스로를 향해 조용히 내려가는 깊이. 그 깊이가 있어야 바깥의 넓이도 의미를 가진다.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은 특별한 사람만의 일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필요한, 그러나 누구나 미루고 있는 일이다. 그 일을 시작하는 순간, 삶은 조금씩 달라진다. 눈에 보이는 변화는 크지 않을지라도, 선택의 결이 달라지고, 관계의 온도가 달라진다. 무엇보다, 흔들림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게 된다.
사람은 바깥에서 길을 찾으려 애쓰지만, 방향은 언제나 안에서 정해진다. 그 사실을 아는 순간,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은 더 이상 부담이 아니라, 삶을 바로 세우는 가장 안온하고 깊은 힘이 된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