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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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함은 그 사람의 민낯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고요한 수면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아래에는 보이지 않는 흐름이 있다. 잔잔해 보이는 물도 깊은 곳에서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듯, 인간의 감정 또한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이미 오래전부터 쌓이고 흔들리고 있다.
어떤 순간의 ‘욱함’은 우연히 터진 불꽃이 아니다. 그것은 오래 눌려 있던 감정의 결이 드러난 하나의 징후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저 사람 원래 안 그랬는데.”
실은 ‘원래’ 그 안에 있었던 것이다. 다만 드러날 기회를 만나지 않았을 뿐이다.
분노는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이해받지 못한 시간, 반복된 억눌림, 말하지 못한 상처가 켜켜이 쌓이며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한 번의 격한 반응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그 사람의 시간 전체가 밀려 나오는 순간이다. 그 짧은 찰나 속에는 수없이 참아온 날들이 겹쳐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분노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감정의 이유와 행동의 책임은 다른 차원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분노를 단순히 ‘성격’으로만 치부해 버릴 때, 우리는 한 사람의 내면을 너무 쉽게 잘라내고 만다. 이해는 판단보다 늦게 오지만, 더 깊이 도달한다.
“저 사람은 참 좋은데, 얼마나 힘들면 저렇게 화를 낼까.”
이 질문은 사람을 다시 보게 한다. 겉으로 드러난 거친 말보다, 그 말 뒤에 숨어 있는 사정을 바라보게 만든다. 누군가의 날 선 반응 앞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그 사람의 시간을 떠올릴 수 있다면, 관계는 단절이 아니라 이해로 이어질 가능성을 갖는다.
‘욱함’은 민낯이면서 동시에 신호다.
그 사람의 본모습이 드러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가 얼마나 오래 버티고 있었는지를 말해주는 징표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 두 가지를 함께 보아야 한다. 하나만 보면 판단이 되고, 둘을 함께 보면 이해가 된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그가 평온할 때를 아는 것이 아니라, 무너질 때를 어떻게 지나가는지를 보는 일이다. 그리고 그 무너짐의 순간을 함부로 단정하지 않은 태도, 그 조심스러운 시선 속에서 비로소 인간에 대한 진짜 이해가 시작된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