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뀌지 않은 것 위에 쓰인 세계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바뀌지 않은 것 위에 쓰인 세계




청람





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쪽으로 기울어질 뿐이다

눈을 감으면
사물들은 제자리를 벗어나고
이름은 제 의미를 잃는다

어제의 장면은
오늘의 마음에 의해 다시 쓰인다
지워진 것은 없는데
남은 것은 달라진다

사실은
돌처럼 놓여 있다가도
손을 떼는 순간
모래처럼 흩어진다

누군가는 같은 길을 걸었고
누군가는 다른 기억을 얻었다

길은 하나였으나
도착한 세계는 둘이었다
진실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스며드는 것이다

침묵 속에서
기억은 스스로를 고치고
감정은 의미를 덧칠한다

그렇게 하나의 이야기가
자신을 믿기 시작한다

사람은
보고도 다르게 말하고
같은 말을 듣고도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간다

사실은
서로를 설명하지 못하고
진실은
서로를 설득하지 못한다

그 사이에서
시간만이 고요히 쌓인다

어느 순간
무엇이 처음이었는지 묻지 않게 되고
무엇이 옳은지 따지지 않게 된다

남는 것은 단 하나
끝내 버리지 못한 해석

하여, 세계는
언제나 둘로 존재한다

변하지 않은 것과
이미 달라진 것

그 사이에서
인간은

자신이 만든 진실을
마치 처음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끌어안는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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