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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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을 바꾸고 진실을 만들어내는 세계
밤은 언제나 조용히 시작된다.
그 고요 속에서 가장 시끄럽게 움직이는 것은 바깥이 아니라 안쪽이다. 눈에 보이는 세계는 잠들어 가는데, 보이지 않는 세계는 오히려 더 또렷해진다.
그때 사람은 알게 된다.
우리가 믿어온 사실이란 것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그리고 그 흔들림 속에서 전혀 다른 어떤 것이 태어난다는 사실을.
사실은 눈앞에 있는 것이다. 손으로 짚을 수 있고, 기록으로 남길 수 있으며,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것. 그래서 사람들은 사실을 안전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 안전함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같은 장면을 보고도 사람마다 다르게 기억하고, 같은 말을 들어도 서로 다른 의미를 받아들인다.
사실은 고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미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진실이 시작된다. 진실은 사실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통과한 뒤에 남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것을 넘어, 그것이 왜 그렇게 보였는지를 묻는 순간, 사람은 더 이상 사실에 머물지 않는다. 해석이 개입되고, 감정이 스며들며, 경험이 덧입혀진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은 더 이상 단순한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내면에서 재구성된 세계, 곧 진실이다.
문제는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사람은 종종 사실을 바꾸면서까지 자신이 믿고 싶은 진실을 만들어낸다. 기억은 선택적으로 남겨지고, 불편한 부분은 지워진다. 때로는 의도적으로,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만들어진 진실은 점점 더 단단해진다.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그 단단함은 객관의 힘이 아니라, 반복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세계는 이제 사실보다 진실이 더 강하게 작동하는 곳이 되었다. 무엇이 실제로 있었는가보다, 무엇이 그렇게 느껴지는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이해는 점점 더 좁아진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진실을 주장한다. 그 진실은 각자의 삶과 경험 속에서 만들어졌기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진실이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진실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다. 차가운 사실만으로는 삶을 견딜 수 없다.
사람은 의미를 필요로 하고, 그 의미는 해석을 통해 만들어진다. 문제는 그것이 타인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굳어질 때 발생한다. 자신의 진실이 유일한 것이라고 믿는 순간, 세계는 닫히기 시작한다.
하여, 필요한 것은 다시 돌아보는 일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사실인지, 아니면 내가 만들어낸 진실인지 조용히 구분해 보는 일. 그리고 그 둘 사이의 거리를 인정하는 일. 그 거리는 불편하지만, 동시에 자유를 준다. 모든 것을 단정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 타인의 세계를 받아들일 수 있는 틈이 그곳에서 생겨난다.
세계는 하나가 아니다. 사실의 세계와 진실의 세계가 겹쳐져 있다. 우리는 그 사이를 오가며 살아간다. 때로는 사실에 기대고, 때로는 진실에 의지한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을 완전히 버리거나 절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 둘이 서로를 비추도록 두는 일이다.
사실을 바꾸지 않고도 진실을 만들 수 있을 때, 그때 비로소 사람은 조금 더 깊어진다.
그 깊이는, 말보다 오래 남는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