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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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된 빛, 보이지 않은 풍경
사람의 눈은 언제나 모든 것을 보지 않는다. 마치 숲에 들어선 이가 수많은 나무 사이에서 단 하나의 빛나는 잎을 먼저 발견하듯, 시선은 스스로의 마음이 향하는 곳에 머문다. 귀 또한 다르지 않다.
바람이 같은 숲을 스쳐 지나가도, 누군가는 잎의 속삭임을 듣고, 누군가는 그저 지나가는 소리로 흘려보낸다. 그렇게 세계는 하나로 놓여 있으면서도, 사람마다 다른 결로 갈라진다.
이러한 선택은 결코 나약함만은 아니다. 거센 햇빛 아래에서 눈을 가늘게 뜨는 것처럼, 마음도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일부를 덜어낸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현실이 너무 복잡하고 때로는 지나치게 날카롭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이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세계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의미를 엮는다. 그 덕분에 삶은 무너지지 않고 이어진다. 각자의 마음이 다른 풍경을 품기 때문에, 세상은 단조롭지 않고 다채롭게 빛난다.
이 선택은 때로 그림자를 만든다. 보고 싶은 것만을 오래 바라보면, 보지 않으려 했던 것이 점점 더 멀어진다. 듣고 싶은 말만을 마음에 두면, 불편하지만 필요한 소리는 점차 닿지 않게 된다. 그렇게 시선과 귀가 한쪽으로 기울어질 때, 세계는 조용히 비틀린다. 사실은 그대로인데, 그 위에 덧입혀진 해석이 점점 더 단단해지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풍경을 진실이라 믿는 사람들이 마주 설 때, 말은 이어지지 않고, 침묵은 더 깊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이 선택을 모두 버릴 수는 없다. 사람은 본디 자신만의 빛과 그늘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만 필요한 것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여유다. 잠시 시선을 옮겨 다른 나무를 바라보는 일, 익숙하지 않은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는 일. 그 작은 움직임이 세계를 조금 더 넓게 만든다.
삶은 하나의 풍경이 아니라, 겹겹이 포개진 여러 개의 빛이다. 사람은 그중 일부를 선택해 살아가지만, 때로는 선택하지 않았던 빛에도 눈을 열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세계는 왜곡이 아니라 깊이로 다가온다.
그 깊이 속에서, 사람은 조금 더 온전한 자신에 가까워진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