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까운 것이 가장 멀다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가장 가까운 것이 가장 멀다





가까운 것은 쉽게 지나쳐진다.

늘 곁에 있기 때문에 굳이 바라볼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멀리 있는 것을 향해 시선을 두고,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 사이에서 가장 가까운 것은 점점 더 희미해진다.


숨은 항상 이어지고 있다.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것은 의식되지 않는다. 너무 당연하기 때문이다. 생명 또한 그렇다. 늘 함께 있으면서도, 그것을 바라보는 일은 드물다. 가까움은 인식을 돕는 조건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늦추는 이유가 된다.


인간은 멀리 있는 것을 더 분명하게 느낀다. 거리감은 주의를 만든다. 손에 닿지 않는 것, 아직 알지 못하는 것, 도달해야 할 것들은 끊임없이 의식을 자극한다. 반면, 이미 곁에 있는 것은 배경이 된다. 그 자리에 있지만, 중심에 놓이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들이 종종 가장 늦게 드러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늘 함께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묻지 않게 되고, 묻지 않기 때문에 끝내 보지 못한다. 그렇게 인간은 멀리 있는 것을 찾느라, 가장 가까운 것을 잃어버린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로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다만 인식되지 않았을 뿐이다. 가까운 것은 떠난 적이 없고, 사라진 적도 없다. 단지 시선이 그곳을 향하지 않았을 뿐이다.


가까움을 다시 바라보는 일은 새로운 것을 찾는 일과 다르다. 그것은 이미 있는 것을 다시 보는 일이다. 익숙함을 잠시 멈추고, 당연함을 내려놓는 순간,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결들이 드러난다.
멀리 갈수록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가까운 것을 보지 못한 채로 얻은 앎은 중심에 닿지 않는다. 인간은 바깥으로 확장되면서도, 안에서는 비어 있는 상태에 머물 수 있다.


가까운 것을 바라보는 일은 방향을 바꾸는 일이다. 더 많이 가지려는 움직임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에 머무는 태도다. 그 단순한 전환 속에서, 삶은 이전과 다른 깊이를 드러낸다.


가장 가까운 것은
가장 늦게 드러난다.


그 늦은 드러남은
언제나
가장 깊은 자리에서 시작된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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