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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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는 빛을 묻지 않는다
그림자는 언제나 따라다니지만, 자신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묻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의 결과이면서도, 원인을 향해 돌아보지 않는다. 인간의 삶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살아 있음은 분명하지만, 그 살아 있음이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보이는 것은 쉽게 믿어진다.
손에 닿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이름으로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 익숙함에 기대어 더 깊은 질문을 미룬다.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여기는 순간, 보이지 않는 것은 자연스럽게 밀려난다. 그렇게 삶은 점점 더 겉으로만 이해되고, 중심은 흐려진다.
몸은 분명히 존재한다. 움직이고, 느끼고, 반응하며, 세계와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러나 그 몸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 앞에서 인간은 쉽게 멈춘다.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살아가지만, 정작 가장 근본적인 물음은 피한다. 묻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묻지 않는 삶은 편안하다.
흔들리지 않고, 다시 확인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 편안함은 깊이가 없는 자리에서 유지된다. 질문이 없는 곳에서는 새로운 시선도 생겨나지 않는다. 인간은 그렇게 익숙함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중심에서 멀어진다.
빛은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비추는 것으로 존재한다. 그림자는 그 빛에 의해 생겨나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인간 역시 생명과 함께 있으면서도,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다. 늘 곁에 있기 때문에 오히려 바라보지 않게 된다. 가까움은 인식을 돕기보다, 때로는 그것을 늦춘다.
보이는 것만을 믿는 태도는 확실해 보인다. 그러나 그 확실함은 언제나 부분에 머문다. 삶의 중요한 순간들은 설명되지 않는 곳에서 시작된다. 이유 없이 흔들리는 마음, 갑자기 찾아오는 고요, 설명할 수 없는 기쁨. 이러한 것들은 보이는 것만으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인간은 여전히 보이는 것에 기대려 한다. 그것이 가장 안전하기 때문이다. 확인할 수 있고, 붙잡을 수 있으며, 반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안전함은 동시에 좁은 틀을 만든다. 그 안에서는 더 깊은 것을 향한 움직임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림자는 빛과 떨어질 수 없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인간 또한 생명과 떨어질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항상 함께 있으면서도, 그 중심을 바라보지 않는다.
문제는 없는 것이 아니라, 묻지 않는 데 있다.
빛은 늘 그 자리에 있고,
생명은 한순간도 떠난 적이 없다.
다만,
그것을 향해 돌아서는 일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을 뿐이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