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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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왜 등을 돌리고 있는가
몸은 언제나 앞을 향해 있다.
눈은 바깥을 보고, 손은 바깥을 향해 뻗으며, 발은 앞으로 나아간다. 인간의 감각은 대부분 외부를 향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 방향은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이었으나, 동시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가리게 만든다. 안을 바라보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몸은 스스로를 중심이라고 여기지만, 그 중심을 바라보는 일에는 서툴다. 바깥의 변화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안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움직임에는 쉽게 둔감해진다. 숨은 이어지고 있고, 생명은 흔들림 없이 흐르고 있지만, 그것은 거의 의식되지 않는다. 몸은 그렇게 자신의 근원을 등진 채 살아간다.
이 등짐은 의도된 것이 아니다. 외려 너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바깥을 향해 배운다. 이름을 익히고, 사물을 구분하며, 세계를 이해하는 모든 과정이 외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서 안을 바라보는 일은 점점 뒤로 밀려난다. 결국 몸은 스스로의 중심을 등지고, 바깥을 향해 살아가는 방식에 익숙해진다.
문제는 이 익숙함이 질문을 막는다는 데 있다. 바깥을 향한 시선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요구한다. 더 많은 정보, 더 빠른 변화, 더 분명한 결과. 그러나 그 흐름 속에서는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몸은 계속 움직이지만, 그 움직임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는 묻지 않는다.
고통은 이 흐름을 잠시 멈추게 한다. 몸이 아프기 시작하면, 인간은 비로소 안을 바라보게 된다. 평소에는 의식하지 않던 부분들이 또렷해지고,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상태가 흔들린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고통이 사라지면 다시 바깥으로 돌아간다. 몸을 바라보는 일은 여전히 일시적인 경험으로 남는다.
몸은 분명히 가장 가까운 존재다.
동시에 가장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매 순간 함께 있으면서도, 그 안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감각은 있지만, 인식은 따라가지 못한다. 이 간극 속에서 인간은 몸을 사용하면서도, 몸을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등을 돌리고 있다는 것은 거리를 의미하지 않는다. 바로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시선이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뜻이다. 몸은 언제나 중심에 있지만, 인간의 의식은 그 중심을 향하지 않는다. 그 결과, 가장 가까운 것이 가장 늦게 드러나는 일이 반복된다.
돌아선다는 것은 멀리 가는 일이 아니다. 방향을 바꾸는 일이다. 바깥을 향하던 시선을 잠시 멈추고, 안으로 돌리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전과는 다른 장면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 단순한 전환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익숙한 방향이 너무 오래 지속되어 왔기 때문이다.
몸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은 몸이 아니라, 바라보는 방식이다.
문제는 거리가 아니라 방향이다.
그 방향이 바뀌는 순간,
가장 가까운 것이
비로소 드러나기 시작한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