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이외수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한 그루 나무를 보라
바람 부는 날에는
바람 부는 쪽으로 흔들리나니
꽃 피는 날이 있다면
어찌 꽃 지는 날이 없으랴
온 세상을 뒤집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밤에도
소망은 하늘로 가지를 뻗어
달빛을 건지더라
더러는 인생에도 겨울이 찾아와
일기장 갈피마다
눈이 내리고
참담한 사랑마저 소식이 두절되더라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침묵으로 세월의 깊은 강을 건너가는
한 그루 나무를 보라
■
세상을 비껴 서야만 보이는 결이 있다—이 시는 그 비껴 섬에서 시작된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천상병, 이외수, 그리고 중광. 흔히 세 사람을 ‘3대 기인’이라 부른다. 그러나 그 기인은 기이함의 외피가 아니라, 세상의 중심에서 한 발 물러나 본질을 오래 바라본 자들의 이름이다.
그 가운데 이외수의 이 시는, 기인의 언어가 어떻게 삶의 중심으로 되돌아오는지를 가장 조용하게 증명한다.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 한 그루 나무를 보라”
이 문장은 단순한 권유가 아니다. 세상과 부딪치기보다, 한 걸음 물러나 존재를 바라보라는 태도의 선언이다. 이는 천상병이 가난 속에서도 하늘을 노래하던 시선과 맞닿아 있고, 중광 스님이 세속의 규범을 넘어 자유를 실험하던 삶의 방식과도 이어진다. 셋 모두 중심이 아니라 변두리에서 진실을 길어 올린 이들이다.
이 시의 나무는 그래서 평범한 자연물이 아니다. 바람이 불면 바람 쪽으로 흔들리는 그 유연함은, 세상과 맞서기보다 받아들이는 방식의 지혜다. 기인이라 불린 세 사람의 공통된 결도 여기에 있다. 세상에 저항하기보다, 세상을 통과하며 자신의 결을 지켜내는 태도. 흔들림을 부끄러워하지 않되, 뿌리를 잃지 않는 삶이다.
“꽃 피는 날이 있다면 / 어찌 꽃 지는 날이 없으랴”라는 구절에서는 시간에 대한 담담한 인식이 드러난다. 이는 천상병의 시에서 보이던 ‘소풍 같은 삶’의 철학과 닮아 있다. 오고 가는 것을 억지로 붙잡지 않는 태도. 중광 스님의 파격 또한 결국은 집착을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었다. 이외수의 시는 그 철학을 가장 맑고 단정한 언어로 응축해 낸다.
특히 “흔들리지 않는 뿌리”라는 대목에서 시는 기인의 본질을 드러낸다. 겉으로는 자유롭고 때로는 기이하게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있다. 세 사람 모두 세속적 기준으로는 설명되지 않지만, 삶의 근본에서는 누구보다 단단한 뿌리를 지녔다.
마지막 연에 이르면 나무는 하나의 수행이 된다. “침묵으로 세월의 깊은 강을 건너가는” 존재. 이는 말로 설명하지 않고 삶으로 증명하는 태도다. 천상병의 가난한 시, 중광의 파격적 행위, 이외수의 고독한 문장—모두가 언어 이전의 자리에서 삶을 견디고 건너간 흔적이다.
이 시는 ‘위로’라는 이름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대신 한 그루 나무처럼 서 있는 법을 보여준다. 기인이라 불린 이들의 삶이 그랬듯, 중심에서 벗어났기에 오히려 중심에 닿는 길. 흔들리되 무너지지 않고, 말하지 않되 깊은 존재의 방식.
그 진실이 이 시의 가장 깊은 자리에서 오래 남는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