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끝, 세 갈래의 길에서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하루의 끝, 세 갈래의 길에서



청람 김왕식



하루의 끝은 늘 비슷한 시간에 찾아오지만, 그 끝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게 빛난다. 같은 어둠 속에서도 어떤 이는 잔을 기울이고, 어떤 이는 책장을 넘기며, 또 어떤 이는 두 손을 모아 조용히 기도를 올린다. 같은 하루를 살았음에도 그 마무리는 서로 다른 길로 흘러간다.

술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이에게 밤은 해방의 시간이다. 하루 동안 쌓인 말과 감정이 잔 속에서 풀려나고, 마음은 잠시 무게를 내려놓는다. 그 한 잔에는 고단함을 달래는 온기가 있고, 때로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숨결이 있다.
세상의 거친 결을 지나온 하루가 그 안에서 조금은 부드러워진다. 그것은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스스로를 놓아주는 하나의 방식이다.

책으로 하루를 닫는 이에게 밤은 사유의 시간이다. 문장을 따라 걷다 보면 자신의 하루가 낯선 시선으로 다시 읽힌다. 타인의 삶 속으로 스며들며, 자신의 생각은 더 깊어지고 감정은 조용히 정리된다. 책은 단순한 글의 집합이 아니라, 자신을 비추는 또 하나의 거울이다. 그 거울 앞에서 사람은 비로소 하루를 객관화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힘을 얻는다.

기도로 하루를 마치는 이에게 밤은 내려놓음의 시간이다. 말로 다 풀어내지 못한 생각과 감정을 조용히 맡기고, 자신을 넘어서는 어떤 존재 앞에 서는 순간이다. 그 시간 속에서 사람은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동시에 보이지 않는 힘에 기대어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는다. 기도는 해결이 아니라, 견딤을 가능하게 하는 고요한 힘이다. 말하지 않아도 들리는 세계, 보이지 않아도 믿게 되는 자리에서 하루는 더 깊이 가라앉는다.

이 세 가지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 하루를 정리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내일을 향해 다시 나아가기 위한 준비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므로 어느 것이 옳고 그르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삶은 하나의 방식으로만 완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각자의 선택은 각자의 결을 따라 이루어지고, 그 결이 모여 한 사람의 생을 이룬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택했는가보다, 그 시간 속에서 자신이 어떤 상태로 머무르는가에 있다. 술을 마시며 자신을 잃어버린다면 그것은 단순한 소모일 뿐이고, 책을 읽으며 세상과 단절된다면 그것 또한 또 다른 고립이다.
기도 역시 형식에 머물러 마음이 닿지 않는다면, 그것은 공허한 반복에 그칠 수 있다. 결국 핵심은 방식이 아니라 태도다. 하루를 어떻게 내려놓고, 무엇을 남기며, 어떤 마음으로 내일을 맞이하는가.

하여, 이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가. 이 물음은 분류를 요구하기보다, 스스로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어떤 날은 한 잔의 온기가 필요하고, 어떤 날은 한 줄의 문장이 위로가 되며, 또 어떤 날은 조용한 기도가 마음을 붙든다. 사람은 하나의 방식으로 고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이를 오가며 조금씩 자신을 알아간다.

어쩌면 삶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균형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잔을 들 때에도 자신을 잃지 않고, 책을 펼칠 때에도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며, 기도를 올릴 때에도 삶을 등지지 않는 것. 그 세 가지가 서로를 보완하며 하나의 중심을 이루는 순간, 비로소 하루는 온전히 닫힌다.

하루의 끝은 단순한 마무리가 아니다. 그것은 다음을 준비하는 가장 깊은 시간이다. 그 시간 속에서 무엇을 선택하든, 그 선택이 자신을 더 단단하게 하고 더 따뜻하게 만든다면, 이미 충분하다. 그리고 그 반복 속에서 사람은 조금씩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 속해 있는가가 아니라, 어디로 가고 있는가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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