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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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속에서 더 높아지는 삶
가난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는 일이다. 가진 것이 적어질수록 삶은 축소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불필요한 것들이 먼저 떨어져 나가며 본질이 전면에 선다. 선택의 여지가 줄어드는 자리에서 비로소 선택의 의미가 또렷해진다. 무엇을 할 수 없는가보다, 무엇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가가 그 사람의 중심을 말해준다.
이때 어떤 이는 무너지고, 어떤 이는 더 곧게 선다. 차이는 외부의 조건이 아니라 내부의 질서에 있다. 삶을 무엇으로 지탱하는가에 따라 가난은 무게가 되기도 하고, 깊이가 되기도 한다. 정신적 가치를 중심에 둔 사람에게 가난은 결핍이 아니라 정리의 과정이다. 흩어져 있던 욕망이 가라앉고, 삶의 기준이 다시 세워진다.
물질적 부족은 분명 불편을 낳는다. 그러나 그 불편이 곧 비참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신이 흔들릴 때 비로소 가난은 삶 전체를 무너뜨린다. 반대로 정신이 단단할 때, 가난은 외형에 머문다. 가진 것이 적어도 스스로를 낮추지 않는 태도, 비교에 자신을 맡기지 않는 시선, 타인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는 중심. 이것이 고품격의 삶이 시작되는 자리다.
가난 속에서도 품격을 잃지 않는 사람은 삶을 소비하지 않는다. 필요 이상의 것을 탐하지 않고, 이미 가진 것의 의미를 깊이 있게 사용한다. 말은 절제되고, 관계는 가볍지 않으며, 시간은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는다. 부족함이 오히려 태도를 정제시키고, 태도는 다시 삶의 결을 고르게 만든다. 그 고요한 균형 속에서 인간은 스스로의 가치를 지켜낸다.
또한 이들은 가난을 숨기지 않는다. 숨기려 할수록 그것은 수치가 되지만, 받아들일 때 그것은 하나의 상태로 남는다. 상태는 지나가지만, 수치는 남는다. 그러므로 담담하게 견디는 태도는 곧 자신을 보호하는 방식이 된다. 가난을 부끄러움이 아니라 과정으로 받아들일 때, 삶은 비로소 흐름을 회복한다.
정신적 가치를 고양한다는 것은 거창한 이상을 좇는 일이 아니다.
외려 일상 속에서 스스로를 흐트러뜨리지 않는 일이다. 작은 선택에서 정직을 지키고, 관계에서 진심을 놓지 않으며, 외로움 속에서도 스스로를 버리지 않는 일. 이러한 반복 속에서 인간의 품격은 쌓인다. 그것은 소유로 증명되지 않고, 태도로 드러난다.
가난은 사람의 외형을 줄인다. 그 대신 내면의 밀도를 요구한다. 채울 수 없는 자리에 깊이를 놓을 것인가, 아니면 결핍을 원망으로 채울 것인가. 선택은 언제나 그 사람에게 남는다. 그리고 그 선택이 쌓여 삶의 품격을 만든다.
고품격의 삶이란 많이 가진 삶이 아니라, 끝까지 지켜낸 삶이다. 결핍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삶. 그런 사람에게 가난은 더 이상 낮춤의 이름이 아니다. 오히려 삶을 정제하고, 인간을 또렷하게 드러내는 하나의 과정이 된다.
가난은 줄어든 삶처럼 보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더 깊어지는 길이다.
그 길 위에서, 인간은 비로소 스스로의 높이를 스스로 결정하게 된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