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흔적

아버지, 나의 아버지





'아버지'


이름

석자를

평생 불러보지 못했다.


세 살 때

돌아가셨기에!







고향집

다락방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상자 안에는 아버지가 생전에 쓰신

몇 편의 일기와

한 다발의 문서가 묶여 있었다.


아버지의 유품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리지 못한다.


목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다.


세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탓이다.


어린 시절,

'아궁이 불지필 나무 안 해온다',

'소먹일 풀 안 베 온다'


갖은 이유를 대며

회초리를 휘두르는

친구들의 아버지를 보고 자랐다.


그때마다

어린 마음에


'아버지가 안 계신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나도 그런 아픔을 겪게 되었으리라.


그토록

두려운 아버지를 떠올리며

상자 안의 메모와 일기들을 숨죽여 읽었다.


여러 겹으로

접힌 작은 쪽지가 서류 틈새에 끼여 있었다.


낡아 부서지려 해

조심스레

펼친다.


이 쪽지를 접을 때의 아버지가

보이는 듯해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 뼘 남짓 쪽지에 깨알 같은 글씨가

여백 없이 가득했다.


'신뢰하는 사이에는

진심을 공유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에

가능한 가슴속 이야기는 삼가는 것이 좋다.

언젠가

인간관계는 변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상대는

나의 가슴속 이야기를 누설할 수 있다.


설령

상대가 그렇게 한다 해도 나만은

당시에 친구가나를 철저히 믿고 한 이야기는

결코

발설하지 않겠다!'

자못 비장했다.
말의 진실과 상대 존중의 중요성을 알리는

메시지였다.


순간

글자들은

제각기 아버지의 목소리가 되어

내 귓전을 맴돌았다.


'아, 아무 때나 회초리를

마구 휘두를 아버지는 아니구나.

이것이 나의 아버지구나.'


상상 속 엄한 아버지는

순간

산산이 부서졌다.


그러고 보니, 나는

줄곧 이와 비슷한 말을

쏙 들으며 자랐다.


"입은

세 번만 사용해야 한다.


첫째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둘째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때,

셋째 남의 칭찬을 할 때,


그러나

남의 흉을 보고 싶어

입이

근지러울 때에는

목구멍으로 꾹 삼켜 똥으로 빼내거라!"


이는

할머니께서 생전에

화롯가에서 들려주신 말씀이다.


'말을 먹고

똥으로 빼내는 것'에만

기울여 까르르 웃었던

모습에 미소가 감 돈다.


이러한

가르침이 할머니에서

아버지에게,

아버지에서

나에게로 전해졌을 것이다.


할머니는

한평생

아들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낸 한을

품고 사셨다.


그야말로 자녀를 먼저 보낸

'참척 慘慽'이다.


슬픔과

한을 드러내기보다

가슴으로 삭이며

입을 무겁게 하셨기에

모진 세월을 버틸 수 있었는지 모른다.




나는

두 사람의 지혜를

두 아들에게 전하려 한다.


아들은

그 자녀에게 전할 것이다.


아버지와 할머니의 가르침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언제나


'지금,

여기에'

존재할 것이다.


인생의 길목에서 헤맬 때에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고개 들어

허공을 본다.


오늘따라

하늘이 유난히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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