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Sep 9. 2023
'아버지'
이름
석자를
평생 불러보지 못했다.
세 살 때
돌아가셨기에!
ㅡ
고향집
다락방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상자 안에는 아버지가 생전에 쓰신
몇 편의 일기와
한 다발의 문서가 묶여 있었다.
아버지의 유품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리지 못한다.
목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다.
세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탓이다.
어린 시절,
'아궁이 불지필 나무 안 해온다',
'소먹일 풀 안 베 온다'
갖은 이유를 대며
회초리를 휘두르는
친구들의 아버지를 보고 자랐다.
그때마다
어린 마음에
'아버지가 안 계신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나도 그런 아픔을 겪게 되었으리라.
그토록
두려운 아버지를 떠올리며
상자 안의 메모와 일기들을 숨죽여 읽었다.
여러 겹으로
접힌 작은 쪽지가 서류 틈새에 끼여 있었다.
낡아 부서지려 해
조심스레
펼친다.
이 쪽지를 접을 때의 아버지가
보이는 듯해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 뼘 남짓 쪽지에 깨알 같은 글씨가
여백 없이 가득했다.
'신뢰하는 사이에는
진심을 공유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에
가능한 가슴속 이야기는 삼가는 것이 좋다.
언젠가
인간관계는 변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상대는
나의 가슴속 이야기를 누설할 수 있다.
설령
상대가 그렇게 한다 해도 나만은
당시에 친구가나를 철저히 믿고 한 이야기는
결코
발설하지 않겠다!'
자못 비장했다.
말의 진실과 상대 존중의 중요성을 알리는
메시지였다.
순간
글자들은
제각기 아버지의 목소리가 되어
내 귓전을 맴돌았다.
'아, 아무 때나 회초리를
마구 휘두를 아버지는 아니구나.
이것이 나의 아버지구나.'
상상 속 엄한 아버지는
순간
산산이 부서졌다.
그러고 보니, 나는
줄곧 이와 비슷한 말을
쏙 들으며 자랐다.
"입은
세 번만 사용해야 한다.
첫째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둘째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때,
셋째 남의 칭찬을 할 때,
그러나
남의 흉을 보고 싶어
입이
근지러울 때에는
목구멍으로 꾹 삼켜 똥으로 빼내거라!"
이는
할머니께서 생전에
화롯가에서 들려주신 말씀이다.
'말을 먹고
똥으로 빼내는 것'에만
귀 기울여 까르르 웃었던
모습에 미소가 감 돈다.
이러한
가르침이 할머니에서
아버지에게,
아버지에서
나에게로 전해졌을 것이다.
할머니는
한평생
아들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낸 한을
품고 사셨다.
그야말로 자녀를 먼저 보낸
'참척 慘慽'이다.
슬픔과
한을 드러내기보다
가슴으로 삭이며
입을 무겁게 하셨기에
모진 세월을 버틸 수 있었는지 모른다.
ㅡ
나는
두 사람의 지혜를
두 아들에게 전하려 한다.
아들은
또
그 자녀에게 전할 것이다.
아버지와 할머니의 가르침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언제나
'지금,
여기에'
존재할 것이다.
인생의 길목에서 헤맬 때에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고개 들어
허공을 본다.
오늘따라
하늘이 유난히
푸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