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 이파리로는 나를 막을 수 없었다
도토리에 머리 맞을 확률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Sep 15. 2023
가을 아침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나올 때만 해도
비가 오지 않았다.
도토리
나무밑에 섰다.
잎새가
비를 막아준다.
다행이라
생각했다.
점점
굵은 비가 내리면서
이파리에
맺혔던 빗방울이
서너 배 크기로 머리를 친다.
낭패다.
그 시간에 발걸음을 옮겼다면
그래도
조금 더 갈 수 있었을 텐데
일순간의 모면이
더 큰 화를
불렀다.
ㅡ
머릿속엔
나올 때의 푸른 하늘이 있어,
뜻밖의 비에
다소 당황스러웠다.
하늘에
구름이 없다고 해서
비가 오지 않을 것이란
착각을 했던 것이다.
산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비가 오는 것도
나름의 즐거움 중 하나였다.
오늘처럼
갑작스레 내리는 비에는
대비하지 못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도토리나무가
하늘을 향해 푸른 잎으로 팔을 펴고
서 있었다.
그리로
발걸음을 옮겨 나무
아래에 서보니,
처음에는
나무의 푸른 잎이 비를 막아주었다.
그 안정감에
한 순간 잠시 머물렀다.
안도의 순간도 잠시,
비는
점점 더 세지기 시작했다.
나무의 잎사귀 사이로
굵은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고,
빗방울은
더 크게,
더 세게
내 머리를 치기 시작했다.
한순간의 안주와
머물러 있던 시간이
결국
나를 더 큰 화에 빠뜨렸다.
더 일찍
나무 밑을 떠나서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면,
지금처럼
흠뻑 젖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흠뻑 젖은 옷과
머리에서 느껴지는
비의 청량함,
도토리나무
아래에서의
짧은 휴식은 즐거운 경험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그날의 경험은
나에게 한 가지 교훈을 주었다.
때로는
미련 없이 상황에 따라
빠르게 결정하고 움직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어쩌면,
이것이
삶에서도 중요한 원칙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ㅡ
굵은 빗방울이
머리를
친다고만
생각했다.
아니었다.
빗방울 맺힌 도토리였다.
확률 없는
도토리에
머리를 맞아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