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Sep 24. 2023
꿀벌의
날갯짓과
꿀벌의
노래를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
ㅡ
언제부터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날부터
꿀벌의
노래가
우리의 귀에 들리지 않게 되었다.
꿀벌은
그들만의 소박한 날갯짓과
아름다운 노래로,
우리의 삶과
함께했다.
헌데
인간의 탐욕과
무지함이 그 노래를 조용히 잠식해 갔다.
고요한
아침,
활짝 핀 꽃들 사이를 번쩍이며
날아다니던 꿀벌은
자연의 순환을 이어가는 작은 노동자였다.
그들의 부지런한 날갯짓에는
자연과 인간,
그리고
무수한 생명들과의
조화로운 관계가 담겨 있었다.
어느 순간,
인간은 그들의 부지런함에
질투를 느꼈는지,
더
큰 수확을 얻기 위해
화학 농약을 도입하게 되었다.
인간의 이기심은
꿀벌의 순수한 노래를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농약의 냄새에 찔려
두 눈 감던 꿀벌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더 이상
인간의 무지함과
욕심에 시달리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농부는
그들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오로지
수확량만을 생각했던 것일까.
꿀벌이
떠난 뒤,
꿀벌의 무게를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그들의 무게는
훨씬
더 무거웠는데,
그것이
우리의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우리는 몰랐다.
아니
무시했는지도 모른다.
지금,
농부는 이 땅에 무엇이 부족한지,
무엇이
틀렸는지를 깨달아야만 한다.
꿀벌의 부재는
자연의 비명이며
아픔이다.
인간의 무지와
탐욕이
가져온 결과다.
꿀벌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들의 노래를
다시
들을 수 없다.
그 노래 없이는
우리의 세계가 어떻게
변할지 상상조차 하기 싫다.
아직도
꿀벌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는 남아 있을까.
농부의 잘못된 선택과
탐욕을
반성하며,
꿀벌이 돌아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만 한다.
그들의 노래가
다시 울려 퍼지는 그날까지,
우리는
그들의 부재를
슬퍼하며 기다리는 것밖에는.
ㅡ
늘
있을 줄 알았다.
너무나
가까이에 있기에
항상
그 자리에
그렇게
있는 줄 알았다.
이것이
꿀벌만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