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Oct 14. 2023
한때
아들이 우선이었다
계속해서
딸만 여섯이다
지친
시어머니
애 낳느라
애쓴
며느리
쳐다보지도
않고
돌아 앉는다.
해서
마지막 딸 이름을
'말자'
'말숙'
'끝년이'
'귀남이' 등으로 짓는다
이제
딸을 그만 낳으려는
셈법이다.
그
사랑받던
아들들은
과연 효도했는가?
지금은
다르다.
오히려
아들을 낳으면
실망한다.
ㅡ
과거의
한국 사회에서는
가족의
계승과
재산 상속,
그리고
가문의 이어감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아들.
아들의 탄생은
큰 기쁨과
축복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 가운데,
여러 번의 출산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태어나지 않으면,
부모의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딸만 계속 태어난다면,
그 무게는
굴곡진 감정의 산으로
번져갔다.
'말자',
'말숙',
'끝년이'
'귀남이'라는 이름은
그 무게와 감정의 직접적인 표현이었다.
아이들의 존재가 아닌
가문의 기대치와
사회의 압박에 의해 부여된 이름들.
그럼에도,
태어난 아들들은
과연 그 기대와 압박 속에서
진정한 효도와 사랑을 보여줄 수 있었는가?
아들의 탄생만으로도
그들은 무수한 기대와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아들이라는 타이틀로
인해,
그들의 삶은
항상
평범하지 않았다.
허나
시간이 흘러
지금은
그 모습이 크게 변해있다.
아이의 성별에 따른
기대와 압박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오히려
아들을 낳는다는 소식에 실망하는
부모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세상은
점점
더 개방적으로 바뀌며,
아이의 성별보다는
그 아이의 건강과
행복이 중요하게 생각되기 시작했다.
과거와 현재,
두 시대의 차이는 크다.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은
부모의 사랑이다.
성별에 따른
사회의 기대와 압박은
변할지언정,
아이를 향한
부모의 진심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ㅡ
또
아들을
낳았다.
벌써
세 번째다
남편도
애 낳은 아내도
한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