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하랑 Jun 27. 2024

당신들은 이 길을 걷지 마라


      

    근로복지공단이 내게 배려한 남편의 3개월간 입원기한이 곧 종료된다. 이번 퇴원은 좀 더 완성도가 좋아야 하고, 좀 더 오래 지속되어야 한다. 나는 나의 건강을 위해 할애할 시간이 필요하고, 남편 역시 남편의 세계를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나는 오만하게도 그것을 내가 다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물론, 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은 지속되는 실행이 아니었던 것이다.


    뇌환자와 오래 공존하는 방법. 보호자들은 그것을 좀 더 고민해야 한다. 그저 '요양병원은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단편적인 생각만으로 간병에 임한다면 결국 내가 고려장을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집에서 간병하든, 요양병원 생활을 하든, 시설에 가든, 더 많은 방법을 찾아 보아야 한다. 아쉬운 사실은 생각보다 그런 방법이 많지 않다는 것에 있다.


    이번에는 홀로 간병을 하는 미친짓을 하지 않기 위해 활동보조사를 구하기로 다짐했다. 사실, 이전에도 활동보조사를 구하려는 노력은 충분히 했다. 하지만 '거동이 가능한 젊은 치매 남성'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남편에게 활동보조사들은 찾아오지 않았다. 활동보조사들은 '거동이 되지 않아 국가에서 시간을 많이 배정해 주고, 나이가 많아 취급하기 수월한' 환자를 선호한다.

         

    젊은 외상성 뇌병변 환자인 남편을 간병하는 암환자인 배우자. 그리고 초등학생 아이가 한명. 말 그대로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우리가족. 바닥에서 허우적대며 부르짖었더니 동앗줄이 내려왔다. 국민연금공단에서 재심사를 할 수 있게 해 주었고, 가장 문제가 되는 인지적인 부분을 중점적으로 체크하여 겨우겨우 한 구간을 올린 지푸라기 동앗줄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적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일하겠다는 활동보조사를 수소문했고, 한 구간이지만 시간을 늘리니 일하겠다는 활동보조사가 나타나서 약간 맥이 빠진다. 2년동안 간절히 찾을 때는 개미똥꾸멍만큼 보이지도 않더니.


    하지만 여전히 활동보조사에게 일반인들에게 쥐어줄 수 있는 월급의 액수를 마련해줄만한 시간을 부여받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취직을 했고, 아주 적은 급여지만 내가 일할 수 있는 곳을 찾기위해 고심하고 선택하여 근로계약서를 동사무소에 제출했다. 이전, 직원에게 주보호자가 근로를 하면 추가시간을 받을 수 있다는 귀띔을 들었기 때문이다.

     

"주보호자의 근로로 추가시간을 받으려면 사용자가 초중증장애인이어야 해요."

     

    초중증장애인.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 거동조차 할 수 없고 기저귀케어까지 받아야 하는 초중증장애인을 두고 취직을 하러가는 미친 가족이 누가 있는가? 아, 가족이 한 다섯명이 한 집에 살면 가능하긴 하겠다.


    결국, 남편은 움직이기 때문에 초중증장애인에 해당하지 않아 주보호자가 취직을 해도 추가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움직인다 뿐이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린아이가 된 마흔살의 남성은 어디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든 남편과 함께 공존하며 살아내기 위해 굳이 취직까지 했던 나날이 헛수고가 되었다.      


    정말 미쳐버릴 것 같다. 내가 미치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로 이 상황들은 미쳐 돌아간다.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는데도 아무런 해결이 나지 않는다.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 내가 기대했던 그 많은 것들이 수포로 돌아간다. 그 끝을 조금이라도 잡으면 해결이 될 것 같은데 잡히지 않고 손에서 빠져나가버린다.


    공기관들은 공정을 이유로 매년 담당자들이 재배치 되고, 업무를 익히는데에만 몇개월을 소요한다. 제대로 업무를 이해하지 못해서 민원인들에게 된다는 말도, 안된다는 말도 애매하게 해서 제대로 알 수도 없거니와, 정작 서류를 완성해서 들고가면 거절당하기 일쑤다. 조건이 많다. 그 조건은 부정하게 수급하는 누군가를 위해 만들어진 제도겠지만, 뇌손상으로 인해 뭘 하지도 못하는 남편과, 유방암에 걸렸지만 일을 해야하는 아내와, 초등학생 딸아이는 대체 누가 보호해준단말인가.      






      크리스마스. 그러나 노 메리 크리스마스다. 하나뿐인 금지옥엽 외동딸이 독감에 걸렸기 때문이다. 코로나인가 싶어 키트검사를 해보았는데 다행히 코로나는 아니었다. 하지만 독감이라는 녀석은 다행이라고 말할 수 없는 강력한 녀석인지라 딸의 열을 40도까지 치솟게 만들었다. 기껏 고용한 활동보조사에게는 당분간 긴 휴가를 부여하게 되었고, 남편과 딸을 간병하느라 지칠대로 지쳐있는 내게 딸은 위로를 건넨다.


"엄마. 나는 괜찮은데 이상하게 춥네."     

     

    눈물이 고인다. 고작 아홉살 먹은 네가 뭐라고 나에게 괜찮다고 하는거니. 네가 뭘 알고 나에게 위로를 하는거니. 힘들면 힘들다고 해도 되는데 열에 들뜬 목소리로 말한다는게 괜찮다는 거니.      

     

    안쓰러운 마음과 동시에 문득 생각이 스친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생각해보니 나 역시 딸과 똑같은 생각을 하던 때가 있었다.


    아빠가 하늘로 소풍을 떠나고 엄마가 동생의 병간호에 정신이 팔렸을 때. 나는 결핵성 늑막염에 걸렸었다. 일주일을 조금 넘게 병원에 입원해서 등에 호스를 꽂고 폐에 고여있는 염증이 가득한 물을 빼내야했다. 그리고 제대로 일어나지 못해 화장실을 가기 위해 침대 난간을 붙잡고 안간힘을 쓰던 18살의 여름. 하지만 엄마에게 나는 괜찮으니 어서 동생에게 가보라고 등을 떠밀었다.


    그 이후에도 결핵균을 죽이기 위한 마약성약을 처방받아 먹으면서, 쉴새없이 몰아치는 졸음과 면역력과 싸우면서도, 나는 엄마에게 '괜찮다'고 일관했다. 그때의 나는, 그리고 지금의 내 딸은 현재 상황에 힘겨워하기보다 '괜찮다'를 선택했다. 그래서 찾아올 결과는 외로움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안다. 그래서 눈물을 삼키며 딸을 꼭 안아줬다.      


"엄마는... 안 괜찮으니까... 우리 딸 아프면 아프다고 해. 엄마는 네가 괜찮다고 말한다고 해서 안심하는 게 아니야. 어쨌든 딸이 아픈 건 아픈거니까. 열 어서 내릴 수 있게 엄마가 딸 옆에 꼭 붙어있을게."     


    내가 그때 듣고 싶었던 말. 간절히 바랬던 말. 꽁꽁 묶어두었던 보자기를 풀어 딸의 귓전에 쏟아부었다. 마치, 그때의 나에게 위로하는 것 처럼. 딸의 곁에 있겠다고 수 없이 되뇌었다. 지금의 나는 안다. 내가 아픈것보다 딸이 괜찮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 아프다는 것을. 이 고백이 당장의 치유가 되지 않겠지만 언제까지고 입 밖으로 고백해야한다는 사실을.




    


    남편의 산재 사고에 대한 민사소송은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이 떴건만 회사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배상금을 회수하기 위한 압류절차를 진행하게 되었다. 첫번째 압류 장소는 사업주의 집이다. 처음으로 제대로 사업주의 얼굴을 마주할것이다. 나를 보고 뭐라고 말을 할까.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집행관이 사업주의 집 앞에 도착했고, 집행관과 나, 증인 두명을 포함한 모두가 사업주의 집으로 들어갔다. 사업주의 집에는 다행히 사업주는 없었고, 그의 아내와 그들의 딸이 있었다. 집행관은 건조한 말투로 진행하겠다는 서두를 띄운 후 집안에 마련된 집기를 살펴보며 가격을 책정하기 시작했고, 사업주의 아내는 뜬금없는 우리의 닥침에 당황하더니 소리를 지르며 온갖 저주의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일인데!"     

"당신도 아이가 있으면서 이건 진짜 너무하지 않아요?"     

"자기 혼자 다쳐놓고 우리가 왜 배상해야하는데?"     

     

    내가 할 말이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내게 아이가 있는 걸 알면 당신들이 이렇게 나몰라라 하지 말아야 하는게 아닌가. 남편은 회사에서 일한 죄밖에 없는데 왜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걸까. 나는 남편이 다친것을 법적으로 정당하게 판결받아 보상받으려 하는 것 뿐인데 내가 왜 당신에게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 걸까.


    생전 처음으로 듣는 다른 사람의 저주의 말에 손부터 벌벌 떨린다. 바닥이 빙글빙글 돌며 공황발작이 올것 같았지만 벽을 잡고 쓰러지지 않도록 최대한 버텼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지는 것만 같다. 저들에게만은 결코 지고 싶지 않다. 나라도 이 자리에 서 있어야 남편이 열심히 일한 사실을 증명해내는 것만 같다. 하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눈물은 멈출줄은 몰랐고, 행여나 소리가 새어나올까 입술을 꼭 깨물었다. 하지만 내겐 울고 있을 시간 조차 없이 집행관이 내미는 서류에 사인을 해야했고 다음 일정을 건네 받았으며 이 날의 압류는 단 10분만에 끝이 났다. 하지만 10년치의 저주를 받은 것 마냥 뒤통수가 따갑게 울린다.


    집행관들에게 인사를 하고 얼른 차에 올라타 남은 눈물을 쏟아냈다. 이 현실이 슬퍼 울었다. 이 현실이 버겁고 괴로워 목놓아 울었다. 다 포기하고 싶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지어진 십자가는 너무 무거웠고, 그럼에도 나는 땅을 질질 끌며 걸어가야 했다. 홀로 한참을 울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친정엄마와 남편이 생각나 빨개진 눈을 팩트로 아무렇게나 두드리곤 집으로 곧장 들어갔다.  

    

"응. 별 일 없었어."     


    그리고 다음날부터 나의 공황증세는 더 심해졌다.                     




 


   이것이 회사에서 산재사고를 당해 겨우 목숨을 부지한 재해자의 현실이고, 배우자는 이 길을 걸어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걸어야 한다.

    하지만, 당신들은 이 길을 걷지 마라.


    혹여나 뒤따라오는 누군가를 위해 먼저 걸으며 이정표를 세우도록 하겠다.

    하지만, 당신들은 이 길을 걷지 마라.


    남들과 다르고, 힘들지언정 가야하는 길이라면 기꺼이 가기로 했다. 그것이 주어진 운명이라면 기꺼이 순명하기로 했다.

    하지만, 당신들은 이 길을 걷지 마라.


    보잘것 없는 글솜씨지만 누군가에게 이 지옥같은 현실이 전해져, 법이든 시행규칙이든 뭐든 바뀌어 숨이라도 쉴 수 있는 삶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절대로 이 길을 걷지 않길 바란다.


이전 25화 그것도 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