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적부터 책을 아주 좋아하던 소녀였다. 우습게도 내가 즐겨보던 책은 초딩때는 추리소설, 중딩때는 시집, 고딩때는 철학책을 봤다. 애기가 뭘 알고 읽었는지.
나는 에세이 작가지만 에세이를 그닥 읽지 않았다.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최근 서점에 갔다. 유독 ‘감정’을 주제로 한 책들이 많다. 그것도 너무 많다.
아무리 요즘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인들이 감정을 돌볼 시간이 없다고 하지만, 이렇게 까지 감정을 안내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지식이란 밝혀진 과학과 같은 것이고, 생각과 논리는 작가의 이야기라는 전제가 깔려있으므로 독자에게 개인적인 책임감을 부여한다.
그러나 감정은 개개인의 섬세한 경험과 기분이 아우러진 특별한 것이라 이것을 평균화할 수 없는데 마치 작가들은 ‘그게 이거야’라는 식으로 너도나도 이야기를 펴내고 있다. 독자들은 이에 ’맞아 이게 내 이야기야‘하고 공감해 버리며 작가의 감정을 따라가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감정을 다루는 에세이는 상당히 위험하다. 물상을 투영하여 감정을 스스로 선택하도록 만드는 시인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래서 나는 회고록이라는 에세이를 택하고 있고, ’나는‘ 이라던지 ’나의 경우에‘ 라는 단어들을 집어넣어 글의 호흡이 조금 불편해지더라도 독자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최대한 안내하고 있다.
작가는 누구인가. 글감으로 소반을 지어 예쁘게 차리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마치 요리사처럼 나의 글을 먹는 누군가가 어떤 영양학적인 영향을 받을지 생각해야 하는 사람이 작가다.
물론, 단순한 미식만을 추구할 수도 있겠지만 목적한 영양분을 전할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는 작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임무를 맡은 작가는 독자에게 감정을 안내하지 않아야 한다.
감정이라는 맛은 독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