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비도 오고 날씨도 우중충해서 아내에게 부침개를 해달라고 졸라댔다.
빨리해 달라며 보채는 나에게 아내는 아이들 같다며 마지못해 냉장고를 뒤져 부침개 재료를 찾아냈다.
나는 거실 소파에 파묻혀서 아내가 만들어준 부침개를 먹으면서 리암 니슨 주인공의 영화 ‘테이큰’에 푹 빠져들었다.
유럽여행을 떠난 딸이 납치를 당해 인신매매를 당할 위기에 놓이게 되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가 위험한 사투 끝에 딸을 구해내는 과정을 숨 가쁘게 그린 줄거리이었다.
납치된 딸을 구하려는 아버지의 처절한 사투를 보면서 나는 순간순간 전율을 느끼며 내가 마치 영화 속 주인공처럼 흉악한 범인을 응징하는 통쾌함 가져다주었다.
영화에 나오는 아버지의 모습은 믿음직스럽고 악당들과 맞서는 액션은 대단히 놀라웠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주인공 역에 리암 니슨처럼 과감한 액션은 할 수는 없지만 내 가족을 지키려는 마음은 동병상련으로 한결같을 것이다.
나는 영화에서 본 리암 니슨의 과감한 액션은 아니더라도 직장 후배에게 억울한 상황의 환경을 준 것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과감하게 사직서를 내고 실업자 신세가 되었다.
그렇지만 나만의 고집과 이기적인 마음에서 낸 사직서에는 가족에 대한 배려나 책임감이 없었다.
사직서를 내고 아내와 함께 조조할인 영화도 보고 동네 공원을 산책하면서 자유로운 일상을 살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늘 허전함을 달고 다녔다.
그렇게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을 되풀이하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어제와 똑같이 닮은 아침을 맞고 커피 한 잔을 들고 베란다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휴대폰 진동이 요란하게 울려댔다.
그만둔 직장의 인사팀장이 내가 낸 사직서는 퇴직 처리가 되었지만 다시 복직할 의사가 있는지 물어왔다.
그 순간 반가움도 들었지만, 다른 직원들은 구조조정으로 자기 의사에 반하여서 직장을 떠났는데 내가 스스로 선택한 사직을 번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억울한 후배가 힘들게 희망퇴직의 압력을 받고 버티고 있는데 내가 버젓이 복직한다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도리가 아닌 것 같았다.
전화를 끊고는 마시던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을 때 아내가 무슨 전화냐고 묻길래 그냥 친구의 안부 전화라고 에둘러댔다.
하지만 남편으로 또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무책임한 내 모습에 실망감이 들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며칠 후에 또 전화가 왔고 똑같은 대답을 했다.
두 번째 복직 제안을 거절하고 일주일이 지나서 복잡한 머릿속을 펴고 일상의 자유로움을 애써 느껴보려고 아내와 함께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데 세 번째 전화가 왔다.
직장의 구조조정이 마무리되고 희망퇴직 압력을 받던 후배도 구조조정 대상에서 제외되었다며 다시 한번 복직 의사를 물어왔다.
게다가 내가 살고 있던 인천지역 책임자로 인사명령을 내려고 한다며 한 시간 이내에 복직 의사를 말해 달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물었다.
아내는 그동안 두 번의 통화를 귀 너머로 들었는지 내 말을 금방 이해하고 후배의 어려운 상황도 해결되고 했으니 실업자 신세를 면하면 좋겠다고 했다.
아내의 말을 듣고서 인사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복직 의사를 밝히고 인천지역본부장의 직책을 맡게 되었다.
인천지역본부에서 함께 일하게 될 직원 중에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 직원도 있었다.
직장의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인사구조로 직원들 간에 서로 배려하고 협력해 나가야만 했으며 그만큼 내 역할이 컸었다.
더욱이 내가 신규직원으로 첫 발령을 받았던 인천지역본부에 책임자인 본부장으로 다시 오게 되니 감회가 새롭기도 했지만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중압감도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 전국에 12개 지역본부 중에서 인천지역의 경영평가는 끝에서 맴돌고 있었다.
다른 지역의 본부장들은 모두 직장 선배였으며 나이도 나보다 십여 년 이상 많기도 했고 조직운영에 경험을 두루 갖춘 역량 있는 분들이었다.
그런 선배들과 본부장의 직책으로 같은 줄에 서 있으니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었다.
어느 날 밤 10시가 넘어서 직장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민 본부장님 늦은 시간에 정말 죄송한데 몇 년생이세요?”
서울본부에 근무하는 후배가 거듭 죄송하다고 하면서 물어왔다.
휴대폰을 통해 사람들 말소리와 음악 소리가 섞여서 들리는 것을 보니 술집인 것 같았다.
그 후배는 동료들과 술집에서 나를 화제 삼아 이야기를 하다가 내 나이를 맞추는 것을 술값 내기로 걸었다고 했다.
한밤중에 겪은 에피소드이지만 내 나이 40대 초반에 맡은 본부장 직책이 직원들 사이에서는 궁금증으로 이어졌고 그만큼 본부장의 역할을 잘할 수 있을지 의심의 눈초리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천지역본부는 인천지역의 50여 개의 신협의 금융업무를 지도하고 감독하며 한편으로는 금융업무와 보험업무를 서로 협력해서 재무적인 성과를 내는 일이 주된 업무였다.
나는 먼저 재무적인 성과에 앞서 개별 독립법인으로 운영되고 규모가 서로 다른 신협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공통된 동료 의식을 심어 주고 싶었다.
그런 생각으로 주말을 이용해서 인천지역 신협의 250명 남짓한 직원들이 참가하는 대천 바닷가 갯벌 극기훈련 체험 캠프를 1박 2일로 실시하기로 했다.
그런데 캠프를 시작도 하기 전에 직원들 사이에서 극기훈련 체험을 해야만 하냐는 볼멘소리도 터져 나왔지만 잘 설득해서 대천 앞바다에 함께 나섰다.
신협이란 이름으로 한 직장에 근무하고 있지만 개별 신협마다 채용 등 인사가 따로따로 이루어지다 보니 같은 일을 하면서도 직원들 간에 서로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활동하기 편한 훈련복으로 갈아입고 물이 빠져 광활해진 대천 앞바다 갯벌에 20대의 신규직원에서부터 내일모레 정년퇴직을 앞둔 60대가 다된 실무책임자까지 시쳇말로 계급장 다 떼고 명령을 기다리며 갯벌에 섰다.
당시 방송인 유재석이 진행하던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털보 교관’의 거친 목소리에 일사불란하게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갯벌을 기어가고, 뛰어가고 뒹굴고를 반복했다.
얼굴도 서로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온몸이 갯벌의 흙으로 뒤범벅이 되는 지옥 훈련으로 지쳐갈 때 털보 교관은 뒤로 취침을 명령하고 눈을 감으라고 했다.
갯벌에 누어서 눈을 감고 편안함을 느끼고 있을 때 아득하게 들려오는 비행기 소리와 함께 털보 교관은 눈을 뜨라고 명령했다.
비행기 엔진소리가 가까워지더니 갯벌에 누워있는 우리 눈앞에 경비행기가 나타났다.
‘우리는 하나다’
비행기 꼬리에 선명한 글씨의 꼬리표를 달고 하늘을 날면서 갯벌에 누워있는 우리들을 격려해 주었다.
나는 누운 채로 고개를 돌려서 갯벌에 누워 경비행기의 격려 비행을 보고 있는 직원들을 보았다.
갯벌 흙으로 범벅이 된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려서 얼굴 양쪽에 눈물 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힘들고 지친 그 순간 함께 있다는 생각에 감동의 눈물이 동료애로 묻어나고 있었다.
감동했던 체험의 눈물을 닦아내고 숙소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대천해수욕장의 대형 포장마차 서너 개를 연결해서 250여 명이 한자리에 앉았다.
갯벌 극기훈련에 대한 평가와 소회를 나누고 격려와 구호를 외치고 서로의 얼굴을 익히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신협 별로 앉은 직원들을 찾아가 술잔을 주고받으며 격려하고 다음 날 아침 ‘우리가 만드는 미래’라는 주제로 특강을 하고 1박 2일의 갯벌 극기훈련 캠프를 마쳤다.
직원들은 처음에 가졌던 볼멘소리는 쑥 들어가고 살면서 이런 체험을 할 수 있어서 좋았으며 직장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이웃 신협의 직원들을 잘 알게 되었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넘쳐났다.
이런 긍정적인 생각들이 늘어나면서 지역본부의 사업도 시너지를 얻어서 재무적인 성과로 나타났다.
한편으로 지역본부는 이런 연계된 금융 사업과 달리 신협의 전반적인 업무를 법과 규정에 따라 감독하면서 마찰이 빚어지기도 하고 감독에 대한 책임도 지는 일도 발생했다.
재무구조가 취약해진 신협을 감독하면서 지역본부의 담당 직원이 해당 신협의 실태를 파악하고 적절하게 장단기적인 개선 조치를 하게 된다.
하지만 해당 신협의 적극적인 의지와 실천이 부족했고 지역본부의 담당 직원이 업무가 변경되면서 인수인계가 매끄럽지 않아서 결과적으로 재무구조가 나빠진 사례가 발생했다.
신협중앙회가 전국의 지역본부를 두고 지역에 있는 신협을 감독하지만 전국에 있는 신협은 금융감독원의 감독을 받고 있으며 그 당시에는 지역본부도 금융감독원의 직접 감사를 받았다.
인천지역본부에서 해당 신협을 감독하면서 법과 규정에 미비했던 내용에 대한 책임을 물어왔다.
감사를 나온 금융감독원 검사반장은 감독의 책임을 묻는 질의서를 내 앞에 놓고 하나하나 질의했다.
질의의 내용은 본부장인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보고를 못 받았다 잘 모르겠다고 한들 내 책임이 벗어나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직원에게 보고 받고, 알고 있었고, 적절한 지시를 내리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한마디만 덧붙였다.
나는 직장에서 본부장까지 올라왔기에 어떤 징계를 받아도 괜찮으나, 후배 직원들은 직장에서 인사상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선처를 부탁했다.
내 말을 들은 검사반장은 이러시면 혼자 책임지셔야 한다고 하면서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보면서 깊은 한숨을 쉬었다.
감사일 이후 한참이 지나도록 감사결과에 대한 조치가 없어서 서울본부로 확인해 보니 인사상 징계는 없고 주의적 경고 조치가 되었다고 했다.
그때 상황을 더듬어 보니 검사반장의 질의에 내 책임을 면하기 위해 부인하거나 보고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면 나는 물론 담당 직원들도 줄줄이 징계로 이뤄졌을 것이다.
솔직하고 때로는 내가 손해 본다는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옳음을 이 일을 통해서도 경험하게 되었다.
‘테이큰’ 같은 영화는 가상의 이야기를 스릴 있게 꾸며 내어 권선징악의 결론을 낼 수 있지만 현실의 삶에서는 일부러 꾸며지는 거짓된 일은 진실성을 얻기 힘들다.
진정 올바른 것을 주장하며 바른길을 걸어가는 착한 행동은 반듯이 대가를 바라는 마음이 아닐 것이다.
선한 힘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해서 사악한 기운을 막아내고 착하면 손해 보는 일이 없는 상식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누구든 세상살이 착하면 손해 보나요?라는 질문에 세상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자신 있게 대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