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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스방 Jul 13. 2024

방독면을 쓰고 살 수는 없다.

어느 날 지방 출장길에 기차에 올라 차창밖으로 지나쳐가는 들판을 멍하니 내다보다가 어렴풋이...

환경오염으로 인한 자연 생태계의 변화를 안타까워하는 시인의 애달픈 시구절이 떠올랐다.


<들판이 적막하다>

가을 햇볕에 공기에

익는 벼에

눈부신 것 천지인데,

그런데,

아, 들판이 적막하다 ―

메뚜기가 없다!

오 이 불길한 고요 ―

생명의 황금 고리가 끊어졌느니……    

정현종 시인 - 출전《한 꽃송이》


들판 사이를 뛰놀며 메뚜기를 잡았던 어릴 적 재미있던 추억이 생각났다. 

이제는 환경오염으로 들판에 메뚜기가 점점 없어지면서 안타까운 마음만 가득했었는데...  며칠 후...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의 조성과 보전의 이야기’를 주제로 환경부에서 공모한 환경영화제에 대학원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하는 아들의 작품이 수상하게 되어 아내와 함께 시사회가 열리는 영화관으로 달려갔다.      


아들이 수상한 작품 <사는 게 먼지>는 SF 단편영화로 대기오염으로 인해 방독면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에서 환경에 적응하여 진화하는 인류를 그린 작품이다. 

아들은 ‘베이징 최악 대기오염에 방독면 등장’ 이란 뉴스를 보고 영화를 기획했다고 한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실제로 더위와 추위 그리고 습하고 건조한 기후 등 혹독한 환경으로부터 인간은 적응해 왔다. 


하지만 오늘날 지구는 또 다른 기후변화에 직면해 있는 상황이다. 미세먼지와 미세플라스틱으로 알려진 대기오염과 심각해져 가는 생태계 파괴는 오늘날 산업혁명과 과학 기술의 발전과 맞바꾼 지금의 현실이다. 

이 영화는 인류가 자연의 섭리로 인한 환경변화가 아닌 인간이 스스로 망친 환경에 적응한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물음으로 시작한다. 

오염된 대기로 가득 찬 세상에서 모든 사람이 방독면을 쓰고 다녀야 하는 환경이지만 방독면을 벗고도 적응한 주인공의 모습에서 환경을 배반한 진화의 역설을 표현했다. 


영화 상영이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에 나선 아들은 영화를 만들면서 알게 된 환경오염에 따른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말하면서 관객과 공감하며 소통했다. 

아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면서 고생한 아들의 선후배 스태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주차장으로 내려와 자동차에 올랐다. 

자동차 시동을 걸려고 키를 돌리는 순간 엔진 소리가 유난히 울컥거리면서 시동이 걸렸다. 

순간 머리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이 방금 보았던 아들의 영화가 떠올랐다. 


내 차는 16년이 넘은 노후 경유차였다.

 ‘자동차 10년 타기 운동본부’의 회원은 아니지만 10년이 넘게 자동차를 타고 있다는 뿌듯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대기 환경오염 감소 정책으로 노후 경유차를 조기 폐차하거나 배출가스 저감장치 설치하는 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 

나는 고민을 거듭하다가 최근 꽤 큰 비용을 들여서 자동차 수리를 했기 때문에 결국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설치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렇지만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설치한 후에 시내를 운전하다 가끔 저감장치의 고장으로 시커먼 매연이 뿜어져 나와서 당혹스러움을 종종 겪었다.     


집에 오는 차 안에서 아내와 영화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음속에 뭔가 찜찜한 응어리가 생긴 것 같았다. 

그 후로 차를 탈 때마다 내 차가 뿜어내는 배출가스로 대기오염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불편한 마음이 커져갔다. 그러던 중에 마침 배출가스 저감장치의 의무 장착 기간이 만료되어서 16년 동안 정들었던 자동차를 폐차하기로 마음먹고 새 차를 사려고 이것저것 알아보았다. 

그동안 덩치 큰 경유차에서 느꼈던 넓은 공간의 편안함 때문이었는지 경유차 모델을 계속 뒤져보다가 ‘아차’ 하며 생각을 뒤집었다. 


아들의 만든 영화를 보고 난 후로 대기오염의 주범인 자동차 매연을 내가 만들어 내고 있다는 생각에 늘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었다. 

10년을 넘게 편리함을 좇아 대기 환경을 오염시키는 배출가스를 뿜어냈었던 미안한 생각에 배출가스가 없는 친환경 자동차를 사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그때 연일 매스컴에서 대기 환경오염의 원인인 화석연료 중심의 현재 에너지 시스템에서 친환경적인 에너지로 수소 경제의 효율성을 알리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었다. 


나는 수소라고 하면 언뜻 수소폭탄이 연상되어서 자동차 연료로 어떻게 사용되는지 궁금했다. 

여기저기 찾아보고 뒤져보니, 수소 자동차는 수소와 산소가 결합하여 전기를 만들어 자동차를 움직여 이산화탄소와 같은 공해 물질이 전혀 나오지 않는 친환경 자동차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수소자동차를 사기로 결정하고는 큰 고민거리를 만났다. 

친환경 자동차를 타는 것은 좋은데 수소충전소가 몇 개 없어서 수소 충전의 불편함으로 선뜻 수소자동차를 사는 것이 망설여지게 되었다. 


지난겨울 뉴스에서 폭설에 갇혀서 막혔던 눈길이 뚫리는 동안 반나절을 자동차 안에서 히터를 켜고 추위를 견디었다는 뉴스도 들었다. 

수소자동차는 수소충전소에 가야만 연료 공급을 받을 수 있어서 추위를 견디기 위해 히터를 틀어 연료가 다 소모되면 그 자리에서 꼼짝달싹 못하게 된다. 

주변 지인들도 아직은 충전소가 부족해서 불편할 거라며 수소 자동차보다 전기자동차를 권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저런 고민 끝에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찜찜함을 털어낸다는 생각으로 수소 충전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결국 수소자동차를 선택했다. 

요즈음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차량 안내판 모니터를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오늘 하루 차를 타면서 어른 다섯 명이 하루 동안 숨을 쉴 수 있는 만큼의 양의 공기를 정화했다는 메시지를 보았기 때문이다. 하루에 잠깐 차를 타더라도 공기를 정화하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감축한다고 하니 움직이는 공기청정기를 타고 다니는 환경운동가라도 된 것 같아 마음이 뿌듯했다.  


어느 뉴스 보도에서 세계의 허파로 알려진 브라질의 아마존 숲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것보다 내뿜는 것이 더 많아졌다고 했다. 아마존에 경제적 이득의 목적으로 나무 벌채가 늘어나면서 불이 나고 죽은 나무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세계의 허파로서 역할을 해왔던 아마존 숲을 지키는 것은 전 세계가 함께해야 할 것이다. 아마존의 숲을 벌목해서 적은 경제적인 이득을 얻는 것보다 이산화탄소를 흡수해서 지구의 대기 환경을 보전하고 지키는 것이 훨씬 큰 이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단순히 환경오염에 따른 기후변화가 아니라 기후위기에 처해 살고 있다고 한다. 

환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지구온난화는 온실가스 배출 증가와 그로 인한 복합적 반응으로 온난화 정도가 심해지면서 이상기후가 더욱 자주 발생하고 점점 강해진다고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세계 유명한 기상 관련 기관들이 발표한 이상기후로 발생한 사건을 보면 갈수록 그 정도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중에서도 지구의 대기 환경문제가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세계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다. 


이렇듯 전 세계의 나라가 기후위기 시대를 대처할 돌파구를 찾으며 기후위기와 관련한 담론들이 넘쳐난다. 

세계 여러 곳에서 열리는 국제회의에서 기후위기가 주요 의제가 될 만큼 기후위기는 우리가 당면한 가장 심각한 일이다. 대기 오염물질은 우리가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해 가동하는 공장과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화석 발전을 하는 발전소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도 발생한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지구환경을 지키는 쓰레기 줄이기, 대중교통 이용하기, 식물 보호하기, 에너지 사용 줄이기 등 작은 실천을 함께 해야 한다.   


환경 단편영화 <사는 게 먼지>의 결말에 주인공이 오염이 가득 찬 환경에 적응하려고 방독면을 벗어가며 훈련한 대가로 마침내 방독면 없이도 호흡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대기오염에서 생존하려고 노력했던 결과로 필터 모양의 호흡기가 목까지 번져 흉측한 아가미로 진화한 주인공의 기이한 모습이었다. 


누구도 그런 모습으로 변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방독면을 쓰고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환경오염을 줄이는 생활 속 실천을 하나둘씩 해가며 우리가 재미있게 뛰어놀았듯이 푸르른 벌판에서 메뚜기와 함께 즐겁게 뛰어노는 아이들의 해맑은 목소리가 들판을 떠들썩하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들 스스로에게 반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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