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얼굴

#2

by 삼류작자

1980년.

정숙이 고아원에 들어온 건 일곱 살 때였다.

그 계절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혼란스러운 과정과 시간을 거쳐 그녀가 던져지듯 도착한 곳이 ‘새 소망고아원’이었다는 것만 남아 있었다.

어른들의 고함, 화가 잔뜩 밴 목소리들. 누군가는 설명했고, 누군가는 재촉했고, 누군가는 짜증을 냈다.

그 모든 장면이 기억 속에서 ‘버려지는 과정’이라는 이름으로 기억 속에 뭉뚱그려져 있었다.

낯선 장소. 낯선 사람들.

고작 일곱 살 정숙이 한 번에 감당하기엔 벅차고도 넘치는 세계였다.

하지만 그 모든 일은 그녀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냥 그렇게 진행되었다.

그때부터 언제나 정숙은 가능한 한 구석을 택했다.

그리고, 이곳에 올 때 손에 쥐어져 있던 곰인형을 품에 안았다.

옆구리에서 솜이 조금 삐져나오고, 한쪽 눈은 느슨하게 매달려 있는 봉제 인형.

특별한 추억을 지닌 물건도 아니었다.

처음 고아원에 들어올 때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손에 쥐어져 있던 것이었다.

그곳에서 하룻밤이 지나자 호기심을 못 이긴 아이들이 다가왔다.

그건 마냥 우호적인 관심은 아니었다.


호기심이었고, 악의는 없었지만, 그 어디에도 예의나 친절, 배려 같은 것 역시 없었다.

정숙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이곳에 올 때 쥐어져 있던 그 인형을 더 꼭 끌어안는 일이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울지는 않았다.

울음을 터트리면 이곳의 모든 아이들이 몰려와서 자신을 구경할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 품 안에 있는 인형이 그녀가 세상에서 의지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열 살 안팎의 꾀죄죄한 서너 명이, 만지듯 훑어보는 시선으로 정숙을 둘러쌌다.

눌러두었던 호기심이 더는 참지 못하고 넘쳐났다.


“그거 뭐야?”


“야, 나도 만져보면 안 돼?”

말이 겹치더니, 금세 아이들 사이에 작은 말다툼이 섞였다.

이미 정숙의 의견은 필요 없이 서로 먼저 만져보겠다는 투로 변했다.


“가만있어 봐, 씨발.”

예고도 없이 퉁명스러운 말과 함께 지저분한 손이 불쑥 들어와 인형을 잡아당겼다.


“야, 그거 나줘.”

정숙은 눈을 질끈 감고, 그녀의 전부인 인형을 끌어안았다.

그 순간,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 하나가 끼어들었다.


“니들 그만해라.”

정상훈.

바리깡으로 멋대로 밀어버린 머리에, 까무잡잡하고 삐쩍 마른 아이였다.

그는 이미 그 고아원에 오래 있던 아이였다.

아마 세 살 때부터 이곳에서 자랐을 것이다.

그래서 울음도, 빼앗김도, 아이들 사이의 다툼도 모두 익숙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상훈은 인형을 빼앗던 아이의 손을 탁 쳐내자 반발했다.

“누가 뺏어간데~ 잠깐만 볼라 했는데 드러워서 안 본다.”

상훈이 진지한 듯 인상을 찌푸리자 아이들은 투덜거리며 흩어졌다.

상훈 역시 다른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겠지만, 얼마 전 담당 수녀가 그를 반장으로 세운 뒤부터는 그 역할에 충실한 편이었다.

정숙은 웅크린 채 있다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상훈을 올려다봤다.

그때 상훈은 해맑고,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웃어 보였다.

정숙은 그때 그 순간, 살면서 누군가의 웃는 얼굴을 처음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상훈은 그날 이후로도 늘 정숙을 그렇게 불렀다.


“너 공기 할 줄 아냐?”

정숙과 눈이 마주치자, 상훈은 잠시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다른 아이들 틈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유난히 하얀 얼굴이었다.

괜히 말이 늦어졌다.

상훈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야, 너 얼굴 되게 하얗다. 내가 보람반 반장이거든. 앞으로 내 부하해라.”

정숙이 고개를 아주 작게 끄덕이자,

상훈은 그녀 앞에 우뚝 서서 인심 쓰듯 손을 내밀었다.

정숙은 그 손과, 싱글거리며 웃고 있는 상훈의 얼굴을 번갈아 한참 바라보았다.


‘ 그 손... 잡으면 나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줄 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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