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

#6

by 삼류작자


늦은 밤 인적이 끊긴 공장지대.

젖은 듯 칙칙한 아스팔트가 가로등 아래에서 흐릿하게 번들거렸다.

빛은 있었지만, 어디에도 닿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택시 한 대가 길가에 멈춰 섰다.

먼저 망치가 조수석에서 내렸다.

주변을 훑는 그의 눈빛은 잔뜩 경계로 굳어 있었다.

뒤이어 상훈과 정숙이 내렸다.

정숙은 움츠러든 채 옷가방을 꼭 붙들고,

영문도 모른 채 상훈의 팔에 바짝 매달려 있었다.


“여긴… 왜—”

상훈이 말을 잇지 못한 채 중얼거렸다.

망치는 흘긋 그를 바라봤다가 시선을 떼었다.

대신 손목시계를 잠시 확인하고는,

두 다리를 가지런히 모으고 두 손을 공손히 맞잡은 채

아스팔트 위에 단단히 서 있었다.

마치 이미 정해진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듯이.

정숙이 불안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오빠… 저 사람은 누구야. 여기서… 누굴 기다리는 거야?”

상훈은 정숙을 힐끗 볼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빠….”

상황은 분명 이상했다.

그럼에도 정숙은 상훈의 팔을 놓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

이 세상에서 정숙이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상훈 하나뿐이었다.

잠시 후—

길 저편의 어둠 속에서 봉고차 한 대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속도를 줄이며 다가온 차는 곧 망치 앞에 멈춰 섰다.

조수석 문이 열리고 덩치가 좋은 중년 남자, 팔계가 내렸다.

한눈에 봐도 왕년에 동네를 주름잡았을 법한 기운이 있었다.

뒤이어 뒷좌석 문이 열렸다.

마른 체구의 남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 한쪽에는 오래된 화상 자국이 흉하게 남아 있었고,

옷차림은 지저분했다.

눈빛은 유난히 차가워,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망치는 조수석에서 내린 팔계를 향해 두 손을 공손히 모은 채 고개를 낮게 숙였다.

그리고 그의 뒤에 선 화상 자국의 남자를 향해,

아주 짧게 정숙 쪽을 손짓했다.

남자가 정숙 쪽으로 움직이려는 순간,

팔계가 손바닥을 들어 가볍게 제지했다.

그가 먼저 다가왔다.

팔계는 상훈의 얼굴을 한 번 훑어보고,

곧이어 정숙을 바라봤다.

마치 어물전에서 생선을 고르듯,

시선이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내려왔다.

정숙은 그 시선이 닿자

본능처럼 상훈의 팔을 꽉 붙들었다.


“오빠…?”

나지막한 목소리였다.

상훈은 곧게 서서 아무 말 없이 그의 시선을 받아들였다.

잠시 정숙을 살피던 팔계가 툭, 짧게 말했다.


“괜찮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부하를 향해 턱짓했다.


“실어.”

그의 지시가 떨어지자

험하게 생긴 남자가 정숙을 상훈에게서 떼어냈다.

말 한마디 없이 다가와

한 손으로는 목덜미를 움켜쥐고,

다른 한 손으로 팔을 낚아채 거칠게 끌어당겼다.


“오빠—!”

정숙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상훈을 향해 소리쳤다.

도움이라기보다는, 아직 자신이 버려지지 않았다는 확인에 가까운 외침이었다.

그러나 그 남자의 손에는 자비도, 망설임도, 감정도 없었다.

봉고차 앞까지 끌려간 정숙이 버티며 몸부림치자,

남자는 짜증 난다는 듯 우악스럽게 주먹을 내질러 정숙의 배를 후려쳤다.

퍽—

숨이 턱 막히는 소리가 났다.

상훈은 그 모든 과정을 마치 이미 예정된 일처럼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정숙이 배를 맞는 순간을 보았다.

임신이라는 말이, 집 안 바닥에 떨어져 있던 테스트기가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는 본능처럼 몸을 앞으로 내밀 뻔했다.

그때—

팔계와 눈이 마주쳤다.

상훈은 곧바로 시선을 피했다.

움직이려던 몸도,

치밀어 오르던 숨도

그 자리에서 멈췄다.

팔계가 부하를 향해 타이르듯 말했다.


“살살해라 살살 좀..”

정숙은 그렇게 봉고차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문이 거칠게 닫혔다.

팔계가 공손히 서 있는 망치에게 다가왔다.

손등으로 그의 뺨을 툭, 툭 치며 웃었다.


“마… 이건 인신매매 아이가?”

웃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존나 찝찝한데.”

그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상훈 쪽을 힐끔 보고 말을 이었다.


“문제 생기면— 상철이도 무사 못 해. 씨바. 안부 전하고…”

말을 하다 말고, 팔계는 잠깐 멈췄다.


“…아, 시발. 말 몬 하지, 참.”

망치를 다시 한번 내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망치는 그저 장승처럼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새끼…”

조수석 문이 턱 닫혔고, 봉고차는 곧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전 05화여행 가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