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가방

#5

by 삼류작자


낡은 한옥, 방 한 칸짜리 집이었다.

입구를 열면 바로 작은 싱크대가 보였고, 신발을 벗으면 곧장 방으로 이어졌다.

상훈은 방 안에서 낡은 나무 장롱 문을 거칠게 열었다.

서랍을 빼내고 정숙의 옷들을 마구잡이로 끄집어냈다.

티셔츠와 바지가 바닥 위로 쏟아졌다.


“일단 니 옷 다 담아.”

방 한가운데에는 큼직한 천 가방이 벌어진 채 놓여 있었다.


“오빠… 왜 이래?”

정숙이 그를 말리듯 물었다.

상훈은 대답하지 않은 채 옷을 집어던졌다.


“밖에 있는 무섭게 생긴 남자는 또 누군데…?”

상훈의 손이 잠깐 멈췄다가, 이내 더 거칠어졌다.


“아, 좀 닥치고 좀 짐 싸라구.”

목소리가 갈라졌다.


“우리 어디 가야 해. 그냥 좀… 야, 그냥 좀 짐 싸주라.”

그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씨발.. 좀..”

정숙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더 묻지 않았다.

상훈이 던지는 옷을 하나씩 주워 가방에 넣기 시작했다.

그러다 무심코 상훈의 셔츠 하나를 접어 넣으려던 순간—


“야!”

상훈이 고함쳤다.

눈이 번들거렸다.


“니 옷만 담으라고 했잖아! 니 옷만!”

숨이 가빠졌다.


“제발 좀… 제발!!”

정숙은 그제야 상훈의 얼굴을 제대로 보았다.

정신이 반쯤 무너진 얼굴이었다.

눈물이 흘렀다.

이 상황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무언가 아주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느낌만은 분명했다.

정숙의 애원 같은 말에도 상훈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정숙의 속옷이 들어 있던 서랍을 열어,

안에 있던 것들을 집어던지듯 바닥으로 쏟아냈다.

그때, 바닥 위에 떨어진 작은 상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임신 테스트기였다.

상훈의 손이 그제야 멈췄다.

그는 그것을 집어 들고 살펴보다 따지듯 물었다.


“… 이건 뭐야?”

정숙이 대답하지 않자 상훈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이게 뭐냐고.”

정숙은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닌데.”

그 순간, 상훈이 광기에 사로잡힌 듯 정숙의 양 어깨를 거칠게 붙잡았다.

얼굴을 바짝 들이밀고 고함쳤다.


“뭐가 확실한 게 아니야? 도대체 뭐가!”

말은 숨이 끊어질 듯 이어졌다.


“언제 말하려고 했어. 애 낳고 말하려고 했어? 씨발…!”


“오빠, 제발…”

정숙이 흐느꼈다.

상훈은 그녀를 던지듯 놓아버리고 일어섰다.

방 한가운데서 멈춰 선 채,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생각의 정리가 끝난 듯, 상훈은 차분히 가라앉아 감정 없는 말투로 낮게 말했다.


“일단… 짐부터 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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