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오를 때

#10

by 삼류작자

정숙은 상훈이 자신을 저버리고 팔아넘겼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믿기 어려울 만큼 긴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 생각은 정리되지 않은 채 마음속을 떠돌았다.

밀어내면 사라지는 듯했고, 사라진 줄 알면 다시 고개를 들었다.

현실은 그렇게, 조금씩 늦게 도착하고 있었다.

어창 한쪽에는 용변을 보라고 둔 하얀 플라스틱 페인트 통이 몇 개 놓여 있었다.

그곳에서는 누군가는 토했고, 누군가는 용변을 봤다.

어떤 통은 뚜껑이 반쯤 걸린 채, 제대로 닫히지도 않았다.

어둠 속에서 긴 이동 시간 동안 냄새들이 뒤엉켰다.

구토 냄새, 배설물 냄새, 눅눅하게 썩어가는 바닷물 냄새.

누군가 소변을 볼 때마다 플라스틱 통 안쪽을 두드리는 소리가

텅, 텅하고 울려 퍼졌고,

곧이어 신경이 극도로 날 선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야, 이 쌍년아. 바로 뚜껑 닫어.”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여자는 틈만 나면 어창 위를 향해 물었다.


“아직 멀었어요?”

시간 감각을 잃은 사람의 버릇처럼, 그 질문은 수시로 반복됐다.

대답은 늘 없거나, 있어도 거칠었다.

그 속에서도 정숙은 가방을 품에 꼭 끌어안은 채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마음 한편에서는 어딘가 고장 난 것처럼 같은 생각이 계속해서 밀려왔다.


‘그럴 리 없어.

뭔가 잘못된 거야.

오빠가… 오빠가 그럴 리 없어.’


그 악취 나는 어둠 속에서

정숙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려 애쓰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 생각은 파도처럼 밀려와 가슴을 두드렸다가,

곧 다른 파도에 쓸려 내려갔다.

믿고 싶은 마음과 이미 눈앞에 놓인 현실이

어창 안에서 서로 부딪히며 뒤엉켰다.

부서졌다가, 다시 엉겨 붙고,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같은 모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떠올려야 할 얼굴이 하나 있었던 것 같았는데,

그 윤곽이 자꾸 흐려졌다.

이름을 붙이려 하면 물속으로 가라앉았고,

붙잡으려 하면 손끝에서 미끄러졌다.

정숙은 그 사실을 의식적으로 확인하지 않았다.

확인하는 순간, 무언가가 완전히 사라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둠이 조금 옅어질 즈음,

공해상에 이르렀을 때였다.


“인자 올라와도 되겠다.”

팔계의 목소리가 갑판 위에서 떨어졌다.

여자들은 하나둘 사다리를 붙잡고 위로 올라갔다.

정숙이 갑판에 발을 딛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망망대해 위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수평선 끝에서 붉고 주황빛이 천천히 번지며 바다를 갈라놓았다.

물결은 그 빛을 받아 반짝였고,

밤새 검게 가라앉아 있던 바다는 처음 보는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바닷바람에 정숙의 머리칼이 흩날렸다.

묶지 못한 잔머리 몇 올이 뺨을 스치고,

금세 다시 흘러내렸다.

정숙은 그것을 정리하지도, 신경 쓰지도 않았다.

정숙이 살면서 보아온 것들 중,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그 찰나에야 모든 상황이 비로소 실감 났다.


도망칠 수 없다는 것,

돌아갈 수 없다는 것,

아니—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

정숙의 시선은 떠오르는 해를 향해 있었지만,

눈은 그 빛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보고 있으면서도,

정확히 무엇을 보고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얼굴이었다.

누군가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아니, 그저 바람 소리였을지도 모른다.

정숙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제서야 정숙은 품에 끌어안고 있던 가방의 힘을 조금 풀었다.

손가락 사이의 긴장은 느슨해졌다.

어째서인지 그 순간부터,

그녀는 가방을 들고 있으면서도 무언가를 놓아버린 사람처럼 보였다.

아주 조금—

편해진 손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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