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오전부터 대문이 열렸다.
렌조가 편의점 도시락 몇 가지를 비닐봉지에 담아 들고 들어왔다.
집 안 어딘가에서 사다리를 찾아낸 정숙은 처마 끝에 고여 있던 빗물을 손보고 있었다.
동백꽃이 떨어진 날 이후로, 해가 있는 시간에도 둘이 한 공간에 머무는 날이 더러 생겼다.
대화는 없었다.
어차피 말은 통하지 않을 테니까.
그렇다고 서로를 소통하려는 다른 노력도 없었다.
렌조는 그저 정숙을 바라보았고, 정숙은 그가 없는 사람인 것처럼 움직였다.
사다리 위에서 정숙은 아슬하게 몸을 기울여 우수관에 걸린 낙엽을 끄집어냈다.
막힌 곳이 풀리자 고여 있던 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다.
렌조는 사 온 물건만 내려놓고 그대로 돌아서려다,
처마 아래 툇마루에 앉아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았다.
작업 중 들린 스웨터 사이로 그녀의 살결이 잠깐 드러났다.
뽀얀 배가,
아주 조금 도드라지게 볼록했다.
렌조의 시선은 언 듯 언 듯 보이는 그녀의 배에 박혔다.
시종 무표정하던 얼굴이 점차 무언가를 깨달은 듯 변화했다.
그러다 무언가를 알아차린 사람처럼,
그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무릎을 한 번 쳤다.
확신에 가까운 동작이었다.
정숙의 발이 사다리에서 미끄러질 듯 흔들릴 때,
렌조는 몸이 튀어나갈 듯 앞으로 기울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잠시 후,
정숙이 일을 마치고 사다리에서 내려오자
그제야 렌조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는 대문 밖으로 나갔다.
그가 사라진 툇마루 위에 비닐봉지 하나가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안에는 도시락 몇 개와 새 모이가 함께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