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

#28

by 삼류작자


대문 앞에서 정숙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발이 안쪽으로 굳어 있었다.


“おい。”

(어이.)

렌조가 짧게 불렀다.

답답함이 묻어 있었지만, 말끝은 흐릿했다.

어찌된 일인지 집에 데리고 오는 것보다 문밖으로 한 발 내딛게 하는 쪽이 더 진땀 나는 일이 되었다.

활짝 열려 있는 대문은 바로 앞에 있었다.

하지만 그 바깥으로 나가는 일은 이상할 만큼 멀게 느껴졌다.

정숙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번번이 몸으로 막아서는 렌조에게 가로막혔다.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려는 정숙과, 그걸 막는 렌조는 대문 앞에서 몇 번이나 막히고 엉켰다.

한동안 말없이 버티기만 하던 렌조는 이제는 안 되겠다는 듯 숨을 한 번 내쉬고 정숙을 번쩍 안아 그대로 대문 밖으로 나갔다.

대문을 닫고, 몇 걸음 내려간 뒤

그는 정숙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 순간

정숙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낯선 곳이었다.

마치 갑자기 전혀 다른 세계에 떨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의지할 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아니, 하나만 있었다.

정숙은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을 훑다 조심스럽게 렌조의 팔을 슬쩍 붙잡았다.

그러다 어느새, 망설임 없이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

렌조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고개를 돌려 자신의 팔에 의지한 여자를 바라보았다.

이 여자가 지금, 세상 모든 것에서 자신 하나에 기대고 있다는 게 이상할 만큼 또렷하게 느껴졌다.

그가 걸음을 옮기자 정숙도 말없이 함께 움직였다.

금새 이 걸음이 괜찮게 느껴졌다.

차 앞에 도착해 조수석 문을 열고 태우려 하자 팔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렌조역시 괜한 실갱이를 할 이유를 못느꼈다.


“車は……やめよう。”

(차는… 관두자.)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래서 걷기로 했다.

하늘은 맑았다.

구름은 높았고, 햇빛이 골목 깊숙이까지 내려와 있었다.

어느새 그의 팔이 그녀의 중심이 되어 있었다.

떼어 놓으면 방향을 잃을 것처럼 조심스러운 걸음이었다.

렌조는 걸음을 맞췄다.

의식해서라기보다는 그게 더 편했기 때문이다.

재촉하지도, 말을 걸지도 않았다.

동네는 한산했다.

낮은 집들이 이어졌고,

문 앞에 놓인 화분들 사이로 흙 냄새가 옅게 풍겼다.

어디선가 라디오 소리가 희미하게 흘러나왔다가

금세 끊겼다.


정숙은 가끔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표정은 비어 있었지만 눈은 골목을 하나씩 더듬고 있었다.

렌조는 그 시선을 굳이 확인하지 않았다.

팔에 전해지는 체온과 무게만 느끼며 걸었다.

길가에 세워진 오래된 자판기를 지나쳤다.

금속 표면에 햇빛이 반사됐다.

렌조는 잠깐 멈출까 하다가, 그대로 지나쳤다.

그의 걸음에 맞춰 정숙도 아무 말 없이 발을 옮겼다.

걸음 하나하나가 마치 원래부터 그렇게 이어져 있었던 것처럼

이상할 만큼 어색하지 않았다.

서로에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최소한 렌조는 그렇게 느꼈다.




골목을 빠져나오자 큰 길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차 소리와 사람들의 기척이 조금씩 섞여 들었다.

렌조의 팔에 닿은 감각으로 그녀의 긴장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는 괜찮다는 듯,

매달리듯 붙들고 있던 그녀의 손을 풀어 자연스럽게 어깨를 감싸 안았다.

멀리서 보면 어쩌면 지나치게 다정한,

한 쌍의 부부가 나란히 걷는 모습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조금 더 그렇게 걷다가 둘은 도로 옆에 자리한 작은 사진관으로 들어갔다.

사진관 안에는 나이가 지긋한 사진사가 그들을 맞이 했다.

정숙은 낯선 공간이 불안한 듯 렌조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노인은 그 모습을 잠깐 의아하게 바라봤지만 굳이 묻지도, 신경 쓰지도 않았다.

렌조는 곧장 증명사진을 찍으러 왔다고 말했다.


“お二人のうち……どちらが撮るんですか?”

(두 분 중에… 누가 찍을 겁니까?)

노인의 시선이 두 사람을 천천히 오갔다.

렌조는 여자를 가리켰다. 짧은 말이 오갔다.

노인은 더 묻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준비된 자리로 그들을 안내했다.

정숙을 세워두려 했지만,

정숙은 끝내 렌조에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는 듯 렌조가 그녀 옆에 함께 섰다.

손은 놓지 않은 채 그대로 잡고 있었다.

몇 차례 플레쉬가 터지고 촬영이 끝났을 때였다.

노인이 카메라 너머에서 불쑥 말했다.


“そこのお二人、もう少しだけ近づいてください。もう一枚撮りますよ。”

(거기 두 분, 조금만 더 붙어주세요. 한 장 더 찍어드릴게요.)

렌조는 잠깐 멈칫했지만 군소리 없이 한 걸음 다가가 정숙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둘은 그대로 카메라를 마주했다.

구식 플래시가 찌잉— 핑— 하고 터졌다.

필름 속에는 어색하게 굳은 두 사람의 표정이 그대로 남았다.

노인은 그 모습이 내심 재밌는지 한 장 더- 라며 손 짓을 했다.


플래시가 다시 한 번 에너지를 쥐어 짜 모으듯 찌잉—

그때 정숙의 머리가 렌조의 어깨에 기대어 졌다.

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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