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주 다수의 원형에 들어가 중심이 되는 것을 원한다. 그래서 때로는 스스로 생각해도 못나게 대답하는 경우들이 있다. 뱃속의 아이가 남아라는 것이 확실해진 뒤, 친한 친구에게 “너는 체력을 길러야겠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친구는 돌이 될 무렵의 여아를 키우고 있었으므로, 체력에 대한 야무진 충고가 곧 내가 인정받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아 난 그래도 아들이 좋아, 딸은 예민해서”라고 뾰족 거린 답을 했었다. 나는 왜 그럴까
집에 지인들의 집들이 일정을 정하는 톡방 안은 미어캣처럼 예민해져서 누가 오는지, 안 오는지를 찾곤 했다. 다들 아이를 키우는 언니들이라 오기 힘들 수 있는 것이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만, 그조차도 내가 그들의 관계 속에서 원형 가운데 서지 못한 기분이 든다. 그 기분은 곧 되찾아야 하는 하나의 보물찾기 게임처럼 나의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찾으려 한다. 즐겁지 않은 게임.
우리 집 올리브는 오늘도 물만 주면 멋대로 뻗어 나아가 쑥쑥 큰다. 올리브는 자기의 속성대로 몇 날 며칠을 하늘을 향해 솟아 뻗친다. 나는 과연 어떤 자양분으로 시작했길래 그렇게 내게 덩그러니 주어진 시간을 다수의 원형에 들어가는 것에 힘을 쓰기 시작했을까. 게슴츠레 눈을 닫아가며 알 것 같은 원인들을 다시 흙 속에 재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