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속도위반 조심

by 오후세시


나는 정규직이 아닌 프리랜서로 상담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쉬는 요일에는 주말과 다름없이 내 시간을 보낸다. 쉬는 날의 하루 일과엔 몇 가지 루틴이 있는데, 육아/ 출산에 필요한 물품을 찾아보는 것과 이 주기에 내가 겪는 증상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다들 그런다고 느끼는지 서치 해보는 것 그리고, 앞으로 겪게 될 이슈들에 대한 유튜브를 찾아보는 것이다. 임신 중에는 호르몬과 신체적 변화로 인해 당뇨가 없더라도 쉽게 생길 수 있으며, 임신성 당뇨 이른바 임당이라고 한다. 임당이라고 확정이 나오면 꾸준한 식단 및 신체 관리를 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뱃속의 태아도 당뇨를 앓고 태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곧 임당 검사 날이 다가오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기엔 유튜브 브이로그가 제격이다. 인스타나 블로그와 다르게 날 것 그대로 영상에 담기기 때문에 최대한 정제되어 있지 않고 그것이 공감과 주의를 더 끌게 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임신과 출산에 대한 브이로그를 찍고 있었다. 찍고 편집하는 것을 육아와 병행하는 것이 가능한 일이었던가, 너무나도 부지런히 생활을 찍어내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 샤워를 하면서 생각했다.

“왜 나는 유튜브를 해볼 생각은 안 했을까” 내가 하고 있는 sns는 브런치와 블로그가 전부다. 인스타 아이디는 있지만 잘 사용하지 않아 삭제한 지 오래다.


“나는 왜 글 쓰는 게 좋지”


어렸을 적부터 글을 쓰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대단한 독서광은 아니었으나 8살 때는 전교생 앞에서 1학년 대표로 구연동화를 보였고, 중-고등학교 때는 꾸준히 산문과 글짓기 대회에 나가 상도 곧 잘 받아왔다. 고 3 때에는 방송작가가 되고 싶어서 학교 방송반에 지원하고 전공도 작가로 고민했었다. 현실적인 취업 문제로 다른 전공을 선택했지만. (동네 사람들 지금도 보세요. 전 상담사가 됐지만 아직도 글을 쓰고 있어요)

브런치와 블로그를 꾸준히 하는 이유도 내가 오픈하는 내용을 글로 풀어내는 것에 매력을 느껴서이다.


글로 풀어내는 것은 생각보다 성가신 일이다. 내 눈에서 머리에서 느낀 것을 찰나에 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읽히기 쉽도록 풀어내고, 내가 느낀 이 감정과 생각을 응축하여 정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머릿속에서 한번 느끼고 우선 정리된 내용을 활자로 나란히 하는 동안 다시 한번 정리하면서 거르고 꾸미고 다진다. 브런치에 쓰기 전엔 내 다이어리에 한번 쓰고, 브런치에 올리기 전에 다시 읽어보면서 다듬는다. 마음에 드는 단어를 추가하기도 하고, 불필요한 미사여구를 지우기도 하고. 꼭 시간과 온도에 맞춰 커피 내리는 것과 비슷하고, 정성 들여 요리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세상 빠른 사진과 영상이 있지만 이렇게 미련한 속도가 좋은 이유는 이게 내 적정 속도인가 보다. 적정 속도에 넘어서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딱 알맞은 속도가 찾았다 내 속도.

통화보다는 톡이 편하고, 톡보다는 문자가 편하고, 문자보단 편지를 애정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편지 써주는 할머니가 되어 늙어가고 싶다 우리 할아버지가 나한테 그랬던 것처럼.

https://brunch.co.kr/brunchbook/mygrandfa



내 속도를 내가 자신하고 나니 자주 앉았던 의자처럼, 자주 신었던 신발처럼 내 자리를 찾은 듯하다. 그리곤 그 감정을 다시 이곳에서 가지고 돌아와 오늘도 주저리주저리 글을 풀어낸다.

나는 이렇게나 느리고 성가신 일을 좋아하는 존재,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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