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과거에 큰 홍수가 났었는데, 이름만 들으면 다들 아는 이슈만큼이나 큰 홍수였다. 건물이 물에 잠겨 고층이 아닌 웬만한 가정이 홍수 피해를 보았고, 나오는 다리도 물에 잠겨 차를 타고 이동할 수도 없었다. 당시 나는 엄마 뱃속에 있었고 엄마는 잠을 자고 있었단다. 때 늦은 비가 멈출 줄 모르고 쏟아붓는 것이 비상하다고는 생각했으나 이 정도일 줄은 모르고 세상모르게 자고 있었는데 뒤늦게 물이 차올라 위험한 수위가 되어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 대피했다고 한다. 집에 귀중한 물품과 옷가지 몇 개외에 챙길 겨를 없이 빠져나와 만삭의 몸으로 한참을 걷고 또 걸었던 엄마는 아마도 많이 놀랬을 것이다. 그 이후 지나가던 승용차 한 대가 엄마와 아빠를 친척집 앞까지 데려다 주어 안전히 대피하고 궂은 뒷일을 마무리하며 일은 그렇게 일단락되었는 줄 알았으나 내가 태어나고 보니 오른쪽 발가락이 이상하더란다.
오른쪽 둘째, 셋째, 넷째 발가락의 마디가 한 마디가 없어 짜리 몽땅하고 발톱도 정상적 발톱의 반도 안되게 작았다고 한다. 나는 희한하게 생긴 내 발가락 때문에 중학교 수학여행에서는 양말을 거의 벗지 않고 있었으며 씻고 나서도 아빠다리로 고묘히 숨겨 다녔다. 엄마 아빠는 아마도 홍수 때문에 놀란 영향으로 그런 것이라고 추측하며 이야기해 주었는데, 내가 임신을 하고 보니 23주 정밀 초음파로 이미 발가락이 형성되고 난 시기다. 물론 형성된 발가락이 덜 발달되었을 가능성도 있고, 조상 쪽의 유전자일수도 있고 무엇인지 알 수는 없으나 그렇게 나의 컴플랙스는 어렸을 적부터 발가락이었다.
이 글에서 꾸준히 쓴 적이 있는데 남편은 나의 모습 하나하나 귀여워해주고, 때로는 그것이 귀여워해주는 것인지 비웃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무슨 복에 겨운 소리냐고 할 수 있지만 가령 예를 들면 이렇다. 딸기가 콕콕 박힌 생크림이 가득 차 삐져나온 크로와상을 와구 와구 먹고 있을 때 그는 웃는다.
- 왜 웃어??
- 귀여워서 ㅎㅎㅎ
정색하며 묻는 내 말이 무색할 만큼 늘 귀엽다고 대답하는 그에게 '귀여워 보이는구나 아이고 기분 좋아라'라고 마냥 넘어가지지 않는 것은 내 성격이 꼬여서일까. 그런 그와 연애하는 동안에 처음 나의 컴플랙스인 발가락을 보여주었을 때도 그는 비슷했다.
- 아 너무 귀여워
- 아냐 나 이거 컴플랙스란 말이야
- 난 이 발가락 너무 좋아, 너무 귀여워
꾸준히 귀여워해주는 그의 근면이 너무나도 성실해서 '비웃는 건가'라고 생각의 틈이 점점 들어오지 않으며 나도 모르게 귀여움을 받고 그것이 익숙해져 있었다. 본디 컴플랙스는 아무렇지 않아 질 때 극복된다고 하던데 그렇게 이기게 해 준 그가 고맙기도 하고,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뱃속에 있는 아이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그의 말에 순간 나는 또 선택의 기로에 섰다.
- 우리 아이도 여보 같은 발가락이었으면 좋겠다. 너무 귀여울 것 같아
내가 그토록 나의 컴플랙스라고 말했던 이야기가 조금의 공감과 이해도 없는 극강의 T인간.... 그런 그의 진심이 나의 약점을 잡고 비웃거나 놀리는 의도가 전혀 없음을 그동안 겪었기에 나는 또 선택의 기로에 서있었다. 기분 나빠할 것인가, 넘어갈 것인가. 잠깐의 정적이 우리 순간을 훅-하고 지나가는 동안 나는 갈까 말까의 자세로 선택지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 여보, 귀여워 보여도 발가락의 마디가 없는 거여서 너무 불편해. 그리고 난 이게 컴플랙스였어서 우리 아기한테는 없었으면 좋겠어
자 개방한다, 나의 세계를. 극강의 T인간에게는 어렴풋이 짐작하도록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문을 활짝 열듯이 개방해야 하고 그것 또한 나의 선택이다. 7년 연애동안에 수없이 무시받는 나를 선택해서 기분 나빠하고 나의 기분이 왜 지금 나쁜지 알아차리도록 힌트를 몇 개 던져주면서 테스트하듯 나는 그를 괴롭혔고, 그동안에 나 또한 괴로웠다. 그런 후에도 여전히 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고, 그럴 때마다 나는 또 갈등한다. 마음이 나뭇가지 끝에 걸려든 개미마냥 가볍게 건드려질 때 잘 선택하기는, 상담공부를 그렇게 했어도 상담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어도 절대 쉽지 않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무시받는 존재와 귀여움 받는 존재를 왔다 갔다 선택한다.
내 귀여운 발가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