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을 하고 나서 사람들이 이렇게나 오지랖이 많은지 경험하고 있다. 아들인지 딸인지, 태동이 심하면 심해서 없으면 없어서, 자연분만을 하면 이래서 제왕절개를 하면 저래서 이유를 꼬집어다가 나의 선택의 적절성을 대신 판단해주려 든다.
안 그래도 사소한 것 하나에도 생각이 많은 인프피 재질인 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따라 파도를 타고 내려갔다 올라간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대화로 주제가 흘러가면, 자동 방어적으로 나가게 된다. 단점을 꼬집어 이야기한다면, 이렇게 얘기해야지 속으로 마음을 먹는다. 나에게는 내 생각과 줏대를 야무지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상시 구비를 해두는 방어 도구와도 같다.
어느 날 남편과 어느 때와 같이 정기 검진을 가면서 대화를 하다가 우리는 애초에 모든 것이 우리 뜻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 남편: 생각해 보니까 이사 전날에 임신을 알게 됐잖아
- 나: 그치 어떻게 그것도 이사 바로 전날 밤에 ㅎㅎ
- 남편: 맞아 이사를 하기 전이었으면 원래 생각해 두었던 병원으로 갔을 텐데, 이사 가니까 우리가 이 병원으로 가게 됐네
- 나 : 어 그러네
우리가 다니는 병원은 오래된 곳이라 시설이 안 좋다는 단점이 있으나, 의사 선생님이나 간호사 선생님들이 다른 곳보다 덜 상업적이고 안정적이었다. 좋은 시설과 과한 친절보다 늘 그래왔듯 일하는 사람들의 근면과 경력이 더 좋았던 나와 남편은 현재 병원에 꽤나 만족스러웠다. 아 아니나 다를까 최근에 한 언니와 대화 도중, 병원을 알고 나서 언니는 ‘아 거기 병실이 좀’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근데 놀랍게도 그닥 타격이 없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한 장점에 충분히 만족 중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이후 남편과 대화에서 이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 나: 이런 일이 있었다.
- 남편: 그렇게 병실이 안 좋은가(핸드폰으로 찾아보면서)
- 나: 오래됐으니까 그럴 수 있지
- 남편: 그래 그래도 우린 만족하니까. 너무 안 좋으면 그전에 바꾸면 되는 거고~
생각해 보면 세상에 가장 완벽한 선택이란 있을 수가 없다. 내게 적절한 선택만 있을 뿐.
나만 해도 유치원 교사에 회의감을 느낄 때, 상담대학원을 갈지 몰랐다. 대학원도 당시 지진사태로 인해 수능이 미뤄진 영향으로 어느 곳은 동일하게 진행하고, 어느 곳은 그에 따라 한주 미뤄지는 바람에 일정이 겹쳐져 한 곳을 선택할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곳에 떨어졌으나 추가합격으로 갈지도 몰랐다. 대학원 다니면서 부당한 센터를 만날 줄도 몰랐고, 그 이야기를 담당 교수님과 하다가 동네 10분 거리에 있는 지금의 센터를 소개받을 줄도 몰랐다. 그 센터에서 인턴을 넘어 실장까지 4년 넘게 일할 줄도 몰랐고, 때 맞춰 이사와 임신을 동시에 할줄도 몰랐다.
정말이지도 나는 세상을 굴릴 수 있는 힘이 조금도 없다. 내 마음대로 뜻대로 흘러가지 않기에 굴러가는 갈래 속 선택만이 주어진다. 그 선택들도 돌이켜보면 옳았는지 틀렸는지 알 수 없다.
두 번의 환승이별을 한 첫사랑은 나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지만, 지금의 남편과 7년의 장기연애를 하게 되었다. 갑질과 오지랖의 상사를 참고 그 직장에 3년이나 있었던 것을 여전히 후회하지만, 그렇게 모은 돈으로 대학원 학비에 지출했다. 아들이 전부였던 시어머님의 과거 언행은 여전히 내게 남아있지만, 남편 없는 삶은 생각해 볼 수 없을 정도로 남편으로 인해 나는 더욱 성숙하고 안정적인 사람이 되었다.
오늘도 내게 적절한 선택만이 주어진 삶에, 어떠한 선택이 옳고 틀림은 없다.
그러니 가슴을 피고 당당히 굴러가자, 오늘도 열심히 굴러가는 존재들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