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욕구들’

평론과 독서감상문 사이에 있는 글

by 오후세시



캐럴라인 냅을 알게 된 것은 우연히 표지와 제목에 반해 책 [명량한 은둔자]를 구매하게 되었을 때이다. 단순히 표지에 이끌려 산 책치고는 필력이 살아꿈틀대 책장을 넘길 때마다 반짝였다. 에세이로 묶어진 글들은 자기성찰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뤘고, 풀어내는 문체가 지금껏 잘 보지 못했던 방식이었으며 나에겐 저릿한 느낌마저 주었다. 정신분석가인 아버지와 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쌍둥이로 태어난 그녀는 기자와 평론, 작가로 활동했다. [명랑한 은둔자]를 읽고 나서 그녀의 또 다른 책이 궁금해서 검색을 하다가, 본래 더욱 알려져있던 [욕구들]을 읽기 시작했다.


[욕구들]은 전 책과 비슷하게 잘 읽히지 않았다. 글의 무게가 가볍게 툭툭 읽히지 않았고, 그러한 이유로 담겨있는 내용은 나에게 파도와 같은 영향력을 행사해 아찔 아찔하게 했다. 예를 들면 책의 챕터중 ‘어머니와의 관계- 허기 그리고 자유의 대가’라는 대목에서 냅은 어머니가 자신의 직업을 포기하고 주부로써의 생활을 살면서 여자로써 마땅한 직업을 이루고 자신의 삶을 살아갈 가치에 대해 무언의 압박을 끊임없이 느꼈다고 설명한다. 직업을 잃고 주부로 살아가는 자신의 삶에서 투사되어 온 ‘직업의 효율성과 가치성’은 냅에게 계속해서 영양제처럼 부여되었고, 냅은 그 반대의 생활(나태하거나 늘어지거나 혼란스러운)을 살때마다 자신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시선을 알아차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는 비단 냅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나 또한 엄마 자신의 가치를 투사하여 나를 바라보고 양육하던 자국들이 온 마음과 몸에 묻어나며, 냅은 그것이 마치 ‘골수이식’처럼 자기 몸 어딘가에 여전히 흐르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무거운 내용, 정확히 말하면 내 삶에 잊고 살고 싶은 무언의 압박감과 두려움을 끄집어내는 내용은 단 한순간의 읽히는 소설과 다르게 축축 늘어지기도 하고 찔려 아파하기도 하며 생명력을 드러낸다. 그래서 이 책을 도서관에서 대출하고 반납하고 또 대출하고 반납하기를 반복, 얼마전에도 도서관에서 마저 읽다가 다시 대출해왔다. 드디어 이 책을 다 읽었는데 그 여정이 개인적으로 꼭 마라톤과도 같아서 도착지에 점처럼 글을 찍고 싶다. 두서 없이 느낀 바를 나열하고, 챕터에 대한 구체적인 소개가 없이 불친절하게 나열될 것이라, 이 글은 독서 감상과 평론 그 사이 어디쯤일 것이다. 그럼에도 기록해두고 싶었던 이유는 이 책이 주는 반짝임과 생명력 때문일 것이며,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냅의 필력에 처음 반하게 될 것이고, 그 내용에 대해 중압감을 느끼게 되지만 그 중압의 방향이 곧 내 안에서 나온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살아오면서 놓쳤지만 여전히 내 안에 흐르고 있는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쯤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그것은 필자와 같이 시간이 걸리는 문제일 수도있다.


가장 이 책에서 두드러지는 특성은 여성주의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 이 책을 도서관에서 찾을 때 그 때부터 알게 됐다. 여성주의 칸에 분류되어 있어 의아해하며 찾았던 기억이 난다. 여성주의는 흔히들 페미니즘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페미니즘은 우리나라에 기존에 많이 없었던 가치였기에 아직 이에 대한 견해는 분분하다. 외국은 페미니즘에 관한 운동과 인식이 꽤나 깨어있고 활발한 반면에 우리나라는 여성주의적 관점을 제시하는 것부터가 외국에 비해 느렸으며, 미-투 운동이라는 피해자적 관점에서 출발하기도 하다. 그 정도로 인식이 많이 느린 편이고, 이 줄다리기 사이에서 여성을 사회에서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가까운 예로 센터 내 지정 슈퍼바이저가 ‘자신은 여성주의인 사람이랑 이야기하지 않는다’며 여성주의를 가진 어떤 이와 이야기한 경험을 이야기해주고는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는 여성주의에 사로잡혀 소통이 잘되지 않으며 배척적이다라고 말했는데, 당시 여성주의에 대해 잘 몰랐던 나로써는 그도 동시에 여성주의를 배척하고 있다는 느낌에 아이러니 했었다. 이렇게 힘겨루기를 하기 위해서 여성주의를 논하자면, 끝도 없이 편가르기가 될 것이지만 이 책은 그러한 의도가 없이 자신이 느낀 여성으로써 이 문화에 살아갈 때에 생기는 것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것은 남성에 대한 혐오가 아니었으며, 굳이 따지자면 여성이라는 성이 자유롭지 못하게 갇혀있었던 여러가지 것들에 대한 설명이자 혐오이다.


그 중에 두드러지는 것은 살이다. 여성으로서 살찌는 것이 죄악이다라고 느끼는 문화에 대해서 단순히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만은 아니다. 여성이 살에 대해서 이토록 투쟁적인 관점을 가져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서 자신의 문제를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에 쉽게 피할 수 있는 것은 대체적으로- 누구나 그게 좋아보이지-라고 말하는 가치를 피난처로 삼는 것이다. 내 성격의 단점을 개선하는 것보다 누가보아도 ‘우와 쟤는 어떻게 살을 뺐데’라고 느끼는 가치에 스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며 따라오는 것이 많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반복할수 밖에 없고, 고질적이고 질척거리며 떼어놓을 수 없다. 심지어 그것을 부모-자녀-친구가 가르치고 전승해주기도 하며, 나아가 매체에서 사용하는 전형적인 무기이다. 관계에서 자신을 바라보기는 괴로우나, 한 포로 식단을 조절할 수 있다는 광고에 현혹되는 것이 훨씬 더 매력적이고 위기감이 덜 들고 생산적이란 느낌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다이어트가 아닌 피난처로써- 자신을 자유롭게 한다고 느끼지만, 실제론 더욱 억압하는 수단으로써- 다이어트에 회피하게 되는 여성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를 남성의 웨이트에 대입해도 비슷할까는 내가 공감할수 있는 영역이 좁기에 잘 대답할수 없다.


최근에 임신 30주가 넘어, 조리원에 예약되어 있던 산전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산전 마사지의 본래 목적은 태아가 성장함에 따라 눌리는 산모의 몸에 쉽게 부종과 늘어난 지방 및 골격의 순환을 돕는 것이다. 하지만 이상한 기분을 느낀 것은 집으로 돌아와서이다. 난 사회 초년생에 스트레스로 인해 10키로가 넘게 찐 뒤로 빠지지 않았다. 결혼 초반에는 그 위에 10키로 가까이 또 찌게 되었는데 둘의 일탈이 야식이었기 때문이다. 야식을 줄이고 원래 생활로 돌아와 균형잡힌 식사를 하기 위해 노력하니 다시 10키로가 빠졌다. 그 상태에서 임신을 하고 현재 6키로가 찐 것이다. 그러니 어찌보면 임신을 하고 나서 최고 몸무게를 본 적은 없으며, 전혀 훨씬 많이 쪘기에 지금 찐 이 살에 대한 후회나 걱정도 크게 없다. 하지만 마사지사는 통통한 체격인 나를 보며 살이 몇키로가 쪘는지 먼저 물어보고, 생각보다 적은 키롯수인 걸 알고는 그럼 결혼초반에 찐 것이냐고 물어보았다. 지금 생각하니 마사지사의 언지가 참 무례했구나 싶어 웃음이 나는 헤프닝인데, 당시엔 이 대화가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이를 깨닫지 못했다. 결혼 초반에 많이 쪘다라고 대답을 하고 나니 그녀는 준비해왔던 말을 내보이듯 아이 낳고 더 많이 빼셔야된다고 덧붙였다. 난 아이를 낳으면 더 안빠지지 않나요라고 질문했는데, 그쵸라며 흐리는 말끝을 흐렸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살찌는 것은 참으로 별로인 일이니 산후조리는 잘 모르겠지만 많이 빼야 너의 심산에 좋을것이다’라고 말하는 할머니에게 왜요라고 질문하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했던 것 같다. 그러고보니 조리원임에도 마사지를 들어가기전 마사지 실장이라는 사람이 상담을 해줬는데 지방을 분해해주는 고주파라는 탈을 쓰고 살 찌는 것은 최악이다라는 팻말을 들고 영업을 해댔다. 참으로 우습다. 엄마가 되기도 전에 여성으로써 살이 늘어지고 푹푹 쪄서 어떡할래라며 목에 칼을 들듯이 협박하는 모양새가 조리원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아마 비단 조리원뿐만이 아니다.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는 결혼후 살이 급격하게 찐 동료를 향해 웃음을 날리던 동료는 서로 친한 무리였으며, 몇몇은 지나가는 모르는 사람에게도 쉽게 종이비행기 던지듯 비난을 던져댔고 나는 같이 웃음으로 동조한적도 있었다. 이런 일상이 흔하게 일어나는 것이 진정한 공포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이 책은 여성이라는 동그라미에 안에 그렇게 만들어진 여러가지 풍습과 문화를 설명해주고 있다. 가장 공감이 갔던 것은 살 찌는 것과 엄마에게 부여받는 가치였고, 그 밖에 성문화와 쇼핑등이 있다. 이 책이 반짝이는 이유는 단순히 여성주의적 운동의 시선으로 이를 시사하고 있는 것이 아닌 냅의 자서전적 해석으로 풀어내는 것이 꼭 십자말 풀이를 구경하는 놀라움과 재미가 있지만 이내 나를 향한 씁쓸함으로 마친다는 점에서 여러가지 맛이 나는 초콜렛과 같다. 아마 여성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도 충분히 공감할만한 부분이 많을 것이다. 책의 제목이 [욕구들]인 것은 냅의 진정한 욕구를 그녀의 일생토록 찾는 여정을 소개함에 있어서 오는 것이라 짐작한다. 이는 읽는 이로 하여금 나의 진정한 욕구를 조망하게 도와주는 선생과도 같다. 나는 현재 마사지사의 걱정과 다르게 나의 투사를 덜하여 독립적으로 아이를 키워내고 싶은 욕구가 충만하다.

욕구를 느끼는 모든 존재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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