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니 뭐니 해도 글과 사진으로 기록을 남겨두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생산 활동인 듯하다. 조금 더 부지런을 떨며 틈틈이 기록을 해두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아쉬움을 움켜쥔 채로 몇몇 순간을 기록에 남겨두며, 출산 이후에도 기록에 더 정진하라 스스로를 흔든다.
2022년 9월 중순, 기다리던 아파트 입주 이사 전날. 생리할 때가 다 되어가는데 배가 아프길래 진통제를 먹으려다가 혹시 몰라 테스트기를 해보았다. 그것도 이사 바로 전날 밤. 그전에도 임신을 기다리고 있는 입장에서 ‘왜 생기지 않지?’라는 질문에 우리의 뜻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을 인정하고 차분해진 상태였다. 테스트기를 전에도 여러 번 해보았기에 두 줄(임신 양성)이 뜨면 내가 어떤 반응일지 상상해 본 적이 있다. 환희에 차서 기쁨의 소식을 남편에게 들떠 전하는 어린아이 같을까, 감격의 눈물에 범벅이 되어서 주저앉는 모습일까. 둘 다 아니었다.
나는 내 눈에 보이는 시약선 외에 나머지 한 줄이 희미하게 뜬 것이 맞는지 어리벙벙해서 남편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 이거 시약선이야 두줄이야?
나의 말에 테스트기를 건네든 남편이 보자마자
- 두줄이잖아!
라며 기뻐했고, 누가 봐도 두줄이라며 얼떨떨했다. 나는 기쁨이 뒤늦게 파도처럼 몰려와 웃음이 가득 찼지만, 남편은 냉정함을 유지했다.
- 내일 한번 더 해보자, 일단 오늘 일찍 자야겠다
남편은 기다리던 소식에 기대하다가 실망할까 봐 애써 자신과 나를 달래며 가장노릇했다. 나중에 심정을 물어보니, 그 실망감에 자신과 내가 다칠까 무서웠단다.
어찌 됐든 다음날도 똑같이 두줄이 떴고, 남편은 나를 배려해서 최대한 움직이지 않게 이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갑자기 이삿날 임신했다며 친정집에 가있기도 뭐 하고, 나도 오버하고 싶지 않아 이사에 몸만 담겨 있으려 했다. 하지만 이사는 생각보다 고되었고, 밑이 빠질 것 같은 통증을 참아가며 하루를 어떻게 어떻게 보냈다.
사실 이사의 정신없음과 고됨, 몸의 녹록치 않음보다 전 날 소식을 알게 된 것이 기쁨이 컸기에 이 정도는 조금도 암시롱 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에게 찾아온 아이는 기쁨의 이름을 따 태명을 조이로 지었다. 마침 이사를 나온 전 집의 이름도 조이빌라였다.
우리가 우리의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난 뒤에 찾아온 행복은 더욱 달콤하고 신성했다. 그 행복도 잠시, 나는 폭풍 같은 입덧의 시기를 16주를 넘어서까지 겪었다. 마치 코가 네다섯 개가 더 달린 채, 목적지 없이 헤매는 바다 위에 있는 것처럼 울렁거리고 모든 냄새가 자극적이었다. 멀리서 남편이 설거지하려고 하면 안방에 들어가야만 했다. 설거지 세제 냄새가 너무나도 지독해서. 마치 코의 감각이 초능력을 받아 개처럼 특화된 기분이었다. 심지어 남편이 서프라이즈로 꽃다발을 준비해 베란다에 숨겨놓았음에도, 집에 들어오자마자 “무슨 풀냄새 나지 않아?”라고 했다.
단순히 냄새에만 민감한 것뿐이 아니라, 저녁식사 시간은 절망적이었다. 배가 고프지만 먹는 족족 얹혀서 게워냈다. 먹고 싶은 것도 없었지만, 굶고 싶을 만큼은 아니었다. 나도 먹고 싶은데 먹고 나면 꽉 막힌 속이 자리가 없다며 위로 밀어내었고, 기침하듯 올라와 다 토해냈다. 그러고 싶지 않아 억지로 참고 소화시키려 걷거나 탄산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다 토해내야만 잠도 편하게 잘 수 있었다.
예정일 한 달 전까지 일을 했기 때문에, 당시에 일을 했을 때가 가장 힘이 들었다. 옆 방에서 뭐라도 시켜 먹으면 그게 그렇게 죽을 맛이었고, 마스크를 쓰고 있는 덕을 조금 맛보았다. 도저히 참지 못해 병원에서 입덧약을 처방받은 후로는 적어도 식사다운 식사가 가능해졌다.
임신 기간 동안 가장 이슈를 뽑으면 이 기간이었고, 그 이후는 편안하고 평탄했다. 감사하게도 주변 많은 사람들이 축하해 주고 같은 마음으로 응원해 주었는데, 특히나 가족이 괜히 가족이 아니란 것을 느꼈다.
조이 옷과 신발, 필요한 물품을 참 많이 선물 받았다. 또 물려받기도 했다. 나에게는 이모 둘이 있는데, 그중 작은 이모는 그렇게나 우리 집으로 고기와 과일을 시켜 날 챙겼다. 한 달에 한 번꼴로 배달을 시켜 문을 두드린 덕에 우린 가족(나와 남편과 조이)은 참 복이 많구나, 사랑받고 있구나 느꼈다. 아빠는 평소에도 딸바보로 유명했지만, 더욱 딸바보가 되었다.
입덧이 가장 심했을 때 전화로 자기가 지금 먹은 식사메뉴를 자랑할 만큼 철도 없고 눈치도 없는 아빠였지만, 자식에 대한 애정만큼은 막무가내 수준이었다. 기어코 찾은 네 잎 클로버는 코팅을 해서 전해주었고, 술을 먹으면 보고 싶다고 전화오기 일쑤 그마저도 나중에는 눈치를 보는지 카톡이 왔다.
때로는 3일에 한번 꼴로 코피가 나기 일쑤였고, 허리와 골반 통증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이 태반이었다. 지금도 새벽 3-4시에 깨면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더 많다.
하지만 참 재밌는 나날들이었다. 직접 얼굴을 보지 못한 아이를 생각하면서 뜬 뜨개옷도, 나와 아이를 생각하면서 처음 시작해 본 요가도 새로웠고 재미있었다. 언제 또 내가 이렇게 생산성 있게 나의 하루를 채우려고 하겠는가. 그전에는 돈을 벌기 위해 이후에는 아이를 위해 그저 목적이 분명하게 하루를 살아가느라 지치겠지만, 임신 기간만큼은 내 안에 두 개의 심장이 뛰지만 곧 하나인 본체를 위하여 가치로운 일을 엮어내고 솎아내고 해낼수 있었다. 참 신비로운 경험이다. 나이지만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닌 몸을 갖는 다는 것이.
이제 다음날이 예정일이고, 난 지난주부터 아이가 언제 나올지 또 기다리고 기다린다. 초조하기도 했다가 이내 이것 또한 이 존재의 마음이겠구나 싶어 또 다시 차분히 내려놓는다. 임신기간동안 여러가지 일이 있었고 에피소드를 적자면 한두가지가 아니겠지만, 이 기록의 뿌리는 결국 한 존재의 탄생에 대한 신비로운 경험이 되겠다. 한 존재가 잉태되어 배 안에서 성장하고, 그 성장을 함께 참여한 사람으로써 임신은 정말이지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 존재가 보여준 그동안의 기간이 우리에게 여러가지를 가져다주었지만, 가장 큰 것은 단연코 기쁨이다.
기쁨이 되는 너의 존재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