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양, 그 꼴
전에 집들이에 선물 받은 몬스테라 화분에 새 싹이 돋아나고 있다. 몬스테라는 이미 자란 줄기 옆에 붙어 새로운 싹을 키우는 외떡잎식물이다. 서서히 싹에서 돌돌 말린 잎이 찌르듯이 나오고, 그 잎이 나오면서 펼쳐지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참 신비롭다. 이 작은 싹에서 막 펼쳐낸 잎은 누가 봐도 남다르다. 충분히 자란 몬스테라 잎은 짙은 초록색이 광이 전혀 없지만, 지금 막 난 몬스테라 잎은 연두색에 빛깔이 차르르 흐르는 것이 ‘보살펴주고 싶어’라는 마음이 저절로 들게 한다.
이래서 많은 사람들이 신상에 열광하는 것인가. 새로이 난 것은 왜 이리 사람의 마음을 붙잡아두는 것인가.
나의 뱃속에도 새로이 자리 잡은 녀석이 있고, 세 달 뒤면 세상 밖으로 나온다. 잠시 내 안에 집을 튼 이 존재를 간혹 잊고 살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모를 수 없다. 본인의 존재를 직접 알리기도 하고, 내 신체도 이 존재를 따라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굴도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지만 항상 이에 대한 잡념으로 내 머리는 가득 차있다. 무엇을 필요로 할지, 그렇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할지, 지금 시기에는 어떻게 해주어야 하는지 겁을 내며 자잘히 대비한다. 골반을 충분히 풀어주면 좋다길래 짐볼은 진작에 준비해 두었고, 우리에게 없어선 안될 이웃 당근에서 때마다 필요한 육아템을 확인하고 있으며, 구매해야 하는 용품도 수시로 사이트에 들어가 확인하고 있다. 세상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지만 우리는 이 존재를 잘 보살피기 위한 의무와 책임감으로 유난과 부지런 떤다.
언젠가 신애라가 입양가족 중 신생아 입양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자세한 내용은 해당 유튜브를 찾아보자). 인상 깊었던 부분이 신생아 입양은 부모가 할 수밖에 없는 형태라는 말이었다. 아이가 먹여주지 않고, 재워주지 않고, 보듬어주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이기 때문에 부모가 이 존재에 가까이 붙어서 무어라도 할 수밖에 없다고- 자신의 입양이 엄청난 공헌과 헌신이 아니라는 것을 겸손히 표현했다. 그에 비해 아동-청소년-성인 입양은 이미 세상에 향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미 형성된 존재를 품기 위해서는, 해주지 않으면 생사가 달려있는 신생아에 비해 더욱 많은 신경과 헌신과 애정이 필요하다. 그를 하고 있는 가정의 부모님들은 정말 대단하시다고- 대략 이런 내용이었던 듯하다.
생각해 보니 그러하다. 새로이 난 것에 자연스럽게 생기는 관심과 애정에 비해, 이미 어떠한 모양으로든 세상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너는 왜 그 모양, 그 꼴이냐’라고도 하다가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어?’라고도 한다. 그 모양에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든 아니든, 자기가 그렇게 태어났든 아니든 간에 우리가 다시 반죽할 수도 그럴 권리도 없다. 그럼 우리가 무얼 어찌할 수 있겠는가. 어찌 보면 보살핌은 그렇게 생겨난 모양을 더 잘 품는 것에서 필요한 자질일지 모른다.
심리상담을 시작한 지 2019년, 올해로 5년 차로 접어들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있다. 그들의 각 모양새는 자신도 모르게 자라나기도 하고 안 보이는 곳에 소생했을 뿐 아니라 변형되고 작아지고 커진다. 본인이지만 이유를 모르고 오는 경우가 태반이다. 보통 나를 만나러 용기를 내기까지는 그 모양새가 괴롭고 싫었을 것이다. 이러한 실태에서 일을 하는 사람의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사실 그 모양은 크게 중요치 않다. 밤마다 정해진 시간에 나와 몰래 일을 하는 요정마냥, 오늘도 자신도 모르게 본체는 자신의 모양을 빚어낸다. 본체가 바뀌지 않는 한 모양은 계속 그 모양일 것이다. 아 오늘 제목을 ‘그 모양’이라고 할걸 그랬나.
모양보다는 본체 ‘너’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그 모양, 그 존재 자체로 사랑하기엔 난 여전히 사랑이 부족한 사람이다. 난 새로이 내 배에 꿈틀거리는 이 녀석을 지금보다, 밖에 나와 자기 모양을 자리 잡고 있을 동안 근면하게 사랑해 줄 수 있을까. 아마 지금보다 후에 그 모양을 받아주고 품어주며 사랑해 주는 것이 훨씬, 훨씬 어려울 것이다.
얼마 전 알쓸인잡에서 소개된 일화로, 사이코패스 뇌를 연구하던 한 박사가 사이코패스들의 뇌에게서 자신의 뇌의 형태와 유사한 점을 찾았단다. 그를 시작으로 조사해 보니 자신의 조상 중 흉악한 범죄자가 다수 있었으며, 자신에게도 비슷한 면모가 있었다고 한다. 타인의 감정에 쉽게 공감을 못한다는 점과 연대를 쌓는 것에 어렵다는 점등은 자신의 두드러진 특징이었다. 그럼에도 자신이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자신의 모양을 받아주고 사랑으로 지도해 준 부모의 환경이라고 밝혔다.
그러니 우리는 오늘도 가야 한다 끈질기게. 우리가 품어줄 존재를 위하여, 매일은 못 가도 길을 잃어도 방향을 아는 이상 끈질기게 가야 한다. 그런 김에 이미 왕성히 자라난 몬스테라의 잎들을 닦아줘 본다. 새로이 난 것만큼이나 자리 잡고 있는 것들을 위하여, 네 존재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