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일의 결 – 목요일》

확장과 관대함의 날

by 이정민 Ophelia


매일은 오고, 또 지나갑니다.

어떤 날은 그냥 스치고,

어떤 날은 마음 한쪽을 꾹 눌러 놓고 가지요.


그 하루들의 이름에 귀 기울여 보고 싶었습니다.


이 글은 ‘요일의 기록’이기보다는,

‘나의 하루 사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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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은 신들의 이름을 품고 있는 날이에요.


로마에서는 유피테르(제우스)의 날 - Dies Iovis,

[로마에서는 ‘디에스 요비스(Dies Iovis)’ 라 불렀죠.

라틴어예요.]


북유럽에서는 토르의 날 – Thor’s Day.

우리가 지금 부르고 있는 “Thursday”는 바로 이 이름에서 왔다고 해요.


서로 다른 신화 속 존재지만,

제우스와 토르, 두 신은 모두 하늘과 번개, 그리고 질서를

상징하는 존재였죠.



*제우스 – 숨겨진 존재의 풍요


먼저, 제우스.

신들의 왕이자, 인간과 신의 경계에서

질서와 통찰을 지키던 중심의 존재입니다.


그는 태어날 때 아버지 크로노스에게 삼켜질 뻔했지만,

어머니 레아가 몰래 숨겨 키우며

염소 ‘아말테이아’의 젖을 먹여 살렸다고 전해지죠.


그리고 훗날, 제우스는

그 염소의 뿔 하나를 꺾어 ‘풍요의 뿔(Cornucopia)’ 로

만들어 인간에게 선물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문득 생각했어요.

그 뿔이… 사슴처럼 자연스레 떨어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젖을 주고, 뿔도 주고,

아무 말 없이 모든 것을 내어준 존재.

어쩌면 아말테이아는

오래전부터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원조였는지도요.


신화가 기억하지 못한 고요한 사랑.

그 마음까지도 함께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제우스는 단순히 힘과 번개의 신이기 이전에,

보살핌과 풍요를 받은 ‘숨겨진 존재’.

숨지 않으면 살 수 없었던,

운명과의 술래잡기 속에서 태어난 신.



**토르 – 감자와 천둥 사이


토르는..

거대한 망치를 휘두르며 악을 물리치고 백성을 지키던

정의의 수호자.


그런데도,

그에겐 감자를 좋아했다는 따스한 전설이 남아 있죠.


비 오는 북유럽의 어느 밤,

아이들은 감자를 숨기며 속삭였다고 해요.


“이건 토르의 먹이야.”


감자 냄새를 좋아하는 토르가

이 집엔 번개를 들이대지 않을 거라며

아이들은 그렇게 믿으며 감자를 숨겼다는 민간 전설!!


번개보다 감자의 향이라는

왠지 재밌지만 따스한…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나는 대목인 듯합니다.


***목요일의 사람, 괴테


그리고…

1749년 8월 28일 목요일.


문학과 자연과 인간을 통해 철학을 실천한

인문학의 거장,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태어난 날이에요.


괴테는 8월의 사람이었어요.

여름의 끝자락,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계절.


그 계절에 태어난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 창가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Mehr Licht.”

(더 많은 빛을!)


빛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는

자기 그림자를 만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사람.

하지만 그 그림자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예술철학자.


괴테는 하루 세 번의 커피를 마시고,

프랑스식 저녁을 즐겼으며,

친구 실러와는 매주 목요일

한 편의 시나 글을 주고받는 규칙을 세웠다고 해요.


심지어 둘 중 한 명이 병들어도,

“단 한 줄이라도 쓰자”는 원칙을 지켰다고 하죠.


그들은

예술과 우정을 겸비해 지켜낸, 목요일의 철학자들이었습니다.

해방의 목요일, 그리고 만델라


****그리고 또 한 사람, 넬슨 만델라.


1994년 5월 10일 목요일.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취임하며 말했어요.


“나는 자유를 향한 긴 여정의 작은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그날의 목요일은

단지 일주일의 하루가 아니라…

역사와 미래, 사람과 희망이 함께 걷기 시작한 날이었죠.


우리의 광복절도 같은 결,

같은 맥박으로 뛰는

‘해방의 목요일’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 그리고 오늘 }


목요일은 여전히 내게

생각의 틈을 건넵니다.


번개보다 감자,

오늘의 시 한 줄,

그리고 자유보다 ‘걸음’이라는 단어를 먼저 말했던 사람들.


그 틈 속에서,

조용히 한 줄을 써 봅니다.


“나는 지금 어디쯤 걸어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