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있는 반전, 생각 없는 진실 6)한 입의 기억, 한 입의 전쟁
이유 있는 반전, 달콤한 오후
지난 글에서 ‘드뷔시와 슈슈’를 이야기하며, 소리와 침묵이 서로를 감싸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나눴습니다.
이번에는 그 음악을 둘러싼 사람들과, 그들이 즐기던 중요한 문화, 티 타임으로 발걸음을 옮겨보려 합니다.
마르셀 프루스트 (Marcel Proust, 1871–1922, 프랑스 파리 출생)《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
프루스트가 마들렌 한 조각에 유년의 기억을 불러냈다면,
영국 귀족들은 오이 샌드위치 한 입에
“나는 이렇게 한가롭다” 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그 시절 오이는 값비싼 온실에서나 재배할 수 있었기에,
빵 사이에 넣어 먹는 것만으로도 은근한 과시가 되었지요.
오스카 와일드 (Oscar Wilde, 1854–1900, 아일랜드 더블린 출생)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행복한 왕자》의 작가.
한때는, 오스카 와일드가 농담 삼아 말하던 것처럼
오이 샌드위치가 결혼보다 더 중요한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애프터눈 티 문화 속에서, 이 고운 샌드위치는
언제나 3단 트레이의 맨 위,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놓였습니다. 영국의 애프터눈 티는 단순한 간식 시간이
아니라, 하루의 리듬을 잠시 멈추고 사교와 대화를 즐기는 의식 같은 순간이었고, 그 위의 오이 샌드위치는
‘한가로움의 상징’이자 그날의 대화를 여는
초대장이었습니다.
마카롱 전쟁 – 달콤한 설전
프랑스의 티타임은 겉으로는 우아하지만,
속에는 달콤한 고집이 숨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마카롱 전쟁이었죠.
프랑스 파리는 크림을 곱게 샌드한 파스텔톤 마카롱을,
프랑스 동북부의 낭시는 수녀님들이 만들던 소박한
아몬드 마카롱을 원조라 주장하며 오랫동안 맞섰습니다.
심지어 “마카롱은 파리 것이 아니다” 라는 책까지 나왔을 정도였습니다.
결론은 간단하죠.
“누가 원조든, 먹으면 행복하다.”
지금도, 파리는 여전히 자신들이 이겼다고 믿고,
낭시는 그런 파리를 귀엽게 웃어넘깁니다.
• 왼쪽 : 낭시 마카롱
(수녀들이 만들던 소박한 아몬드 기반의 전통 마카롱)
• 오른쪽 : 파리 마카롱
(가나슈나 버터크림을 샌드한,
파스텔톤의 현대 마카롱 초기 스타일)
구떼, 영국보다 먼저였던 프랑스의 오후
프랑스의 goûter는 사실 영국의 애프터눈 티보다 먼저였습니다. 17세기 귀족과 부유한 가정에서 오후에 과자나 빵을 곁들이는 간식 시간이 있었고, 이를 ‘맛보다’라는 뜻의
goûter라 불렀지요. 다만 영국처럼 정해진 시간과 격식을 갖춘 의식이 아니라, 훨씬 느슨하고 사적인 휴식이었습니다.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애프터눈 티가 유행하자 프랑스
상류층도 차를 곁들이는 goûter를 즐기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커피나 진한 쇼콜라를 더 선호했습니다.
차가 영국의 상징이었다면, 쇼콜라는 프랑스의 달콤한 자존심이었어요.
영국의 애프터눈 티는 티와 스콘, 빅토리아 스펀지 케이크 같은 빵이 중심이었고, 프랑스는 마카롱, 마들렌, 브리오슈처럼 달콤한 과자가 주인공이었습니다.
마법 같은 맛, 영국의 애프터눈 티
“Do you know what this tastes like?”
언제나처럼 습도와 특유의 으슬으슬함이 감도는 날,
도착해 버린 숲 속의 작은 찻집에서의 티타임.
다즐링의 첫 모금은 마치 봄 햇살이 혀끝에 내려앉는 듯 가벼웠고, 두 번째와 세 번째 잔에서는 복숭아와 머스캣 향이 깊었었어요. 해그리드가 당장 걸어나와도 어울릴 듯한 마당과 세월 묻은 집과 자연이 그 향기를 감싸 안고 있었죠.
스콘 위에 잼을 올리고, 그 위에 클로티드 크림을 듬뿍 얹었어요.
부드럽고 고소한 크림이 잼의 달콤함을 감싸는 순간,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습니다.
“아… 너무 맛있다.”
대서양 건너의 깜찍한 오해
이 달콤한 설전을 멀찍이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마카롱? 그거 코코넛 쿠키 아니야?”라고
묻는 이들이었죠. 사실 그건 macaroon입니다.
이름은 닮았지만, 쓰인 재료도, 담긴 세계도 전혀 다릅니다.
마카롱은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자란 디저트예요.
그 사이 대서양을 건넌 사촌은 코코넛과 함께 ‘마카룬’으로 살고 있죠.
• 마카롱(macaron) - 프랑스의 감각적·정제된 미학.
작은 예술품처럼 섬세하고,
살롱 문화 속의 우아한 정취를 지녔습니다.
• 마카룬(macaroon) - 미국의 가정적·따뜻한 정서.
코코넛 향과 함께 집에서 직접 구워 먹는,
‘홈메이드 감성’이 깃든 디저트지요.
우아한 파리의 살롱, 자유로운 미국의 식탁.
이름 하나로 두 문화의 향기가 교차합니다.
미국 마카룬, 변함없는 세월 속 세 가지 이야기
미국식 코코넛 마카룬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변함이 없어요. 이 ‘변함없음’ 덕에 평온과 안정의 상징이 되었죠.
1. 유대인 유월절의 단골손님
유월절에는 누룩이 든 곡물(밀, 보리 등)을 먹을 수 없기
때문에, 밀가루 없이 만드는 코코넛 마카룬이 단골 디저트가 되었어요.
“이건 내 할머니, 그 할머니, 또 그 할머니의 맛” 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2. 백악관의 ‘정정 요청’ 사건
1950년대, 백악관 만찬에 미국식 코코넛 마카룬이 디저트로 올랐는데, 외신에서 이를 두고 “대통령이 프랑스 마카롱을 즐겼다”고 보도하자, 프랑스 기자들이 발끈하며 “그건 마카롱이 아니라 마카룬!”이라고 정정 요청을 했다고 전해집니다.(정확한 대통령 이름은 기록에 남아 있지 않지만,
마카롱 vs 마카룬 혼동의 대표적인 ‘전설’이 되었습니다.)
3. 전쟁 속 위문품
2차 대전 시기, 미군 위문품 상자에 초콜릿과 함께 코코넛 마카룬이 들어갔어요. 설탕과 코코넛이 주성분이라 쉽게 상하지 않고, 여름에도 잘 녹지 않아 장거리 수송이 가능했기에
전선의 군인들에게는 ‘평온한 집의 맛’으로 기억되었습니다.
낭시 : 아몬드를 듬뿍 얹은, 전통을 살린 변형 마카롱
파리 :다채로운 색감과 독창적인 맛으로 확장된 현대 마카롱
미국 : 100년 동안 변함없는 코코넛 마카룬
드뷔시와 사티 – 가까웠던 만큼 멀어진
마카롱처럼, 드뷔시와 에릭 사티의 관계에도
‘결이 다른 달콤함’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음악계의 규칙과 격식을 깨고, 감각과 개성을
앞세운 새로운 음악을 만들고자 한 동지였습니다.
에릭 사티 (1866–1925) : 몽마르트르의 고독한 시인
1866년 5월 17일,
프랑스 노르망디의 항구도시 온플뢰르(Honfleur) 출생.
대표작: Gymnopédie No.1, Gnossienne No.1,
Parade, Trois Morceaux en forme de poire
사티는 간결하고 기묘한 멜로디로,
드뷔시는 색채와 여운이 가득한 화성으로
음악을 ‘해방’시켰습니다. 드뷔시는 친구의 대표작
짐노페디를 오케스트레이션하여 더 많은 청중 앞에 세웠고,
사티는 그를 두고 ‘ 가장 가까웠던 친구보다 더 좋은 사람 ‘
이라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음악관과 성격 차이가 두 사람을
갈라놓았습니다.
드뷔시는 주류 음악계의 중심에서 명성을 쌓았고,
사티는 관습을 거부하며 실험과 풍자를 섞은 자신만의 길을 걸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길을 걸었으나, 음악 속에서 서로의 빛을 알아본 동지였습니다.
그럼에도 드뷔시의 죽음 후,
사티는 그를 추모하며 이렇게 썼습니다.
“Il aimait les gens et il aimait être aimé.”
“그는 사람을 사랑했고, 사랑받는 것을 좋아했다.”
( Cimetière de Passy, Paris )
파리 파시 묘지의 한켠,
드뷔시의 묘비는 지금도 조용히 음악처럼 빛나고 있다.
의견은 달랐지만, 마지막은 존경과 애정으로 남았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이유 있는 반전’이 아닐까요?
작은 한 입의 힘
마들렌이든 마카롱이든 마카룬이든,
중요한 건 그 한 입이 건네는 순간과 마음입니다.
드뷔시와 사티가 음악으로, 프루스트가 문장으로 전했던 건 결국 ‘사람과의 연결’ 이었죠.
오늘만큼은 차 한 잔과 함께, 작은 과자 하나를
곁들여 보세요. 혹시 모릅니다.
그 한 입이, 당신의 기억 속 문을 열지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