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일의 결 – 화요일》

불꽃이 오래가려면, 사유가 필요하다

by 이정민 Ophelia


사유와 불의 깊이


사유(思惟)란, 눈앞의 것을 서둘러 판단하지 않고

오래 바라보는 일이에요.

‘생각할 사(思)’와 ‘생각할 유(惟)’ 두 글자가 만나

만들어진 단어죠.

불이 오래가려면 태울 재료와 산소의 흐름이 필요하듯,

생각도 오래가려면 시간을 들이고 머물러야 합니다.


화요일은 전쟁의 별, 화성(Mars)이 지배하는 날입니다.

로마 신화 속 마르스(Mars)는 단순한 별의 이름이 아니라,

용기와 힘, 전략을 겸비한 전쟁의 신이었어요.

그의 이름에서 행성 ‘화성’이 탄생했고,

화요일은 그 불꽃같은 에너지를 품게 되었죠.


영어 Tuesday 는 또 다른 전쟁의 신,

북유럽 신화의 티르(Týr) 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티르는 싸움만 하는 신이 아니라,

법과 약속, 정의를 지키는 수호자였죠.


그의 용기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거대한 늑대 펜리르(Fenrir) 는,

태어날 때부터 세상을 파괴할 힘을 지녔다고 예언된

존재였습니다.

신들은 그를 곁에 두고 길들이려 했지만,

펜리르의 힘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습니다.

결국, 그를 묶어야만 세상을 지킬 수 있었죠.


그러나 영리한 펜리르는 속박을 의심했고,

신들이 다가오면 날카로운 눈으로 그들을 살폈습니다.

그 의심을 풀기 위해, 티르는 자신의 오른손을 펜리르의

입에 넣었고, 사슬이 채워지는 순간, 펜리르는 분노하여

그 손을 물어뜯었습니다.

하지만 그 희생 덕분에 신들과 세계는

잠시나마 안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펜리르는 마법의 사슬 ‘글레이프니르’ 에 묶여

지금도 힘을 쓰지 못하고 있지만,

예언에 따르면 언젠가 그 속박을 끊고

세상에 다시 혼란을 불러올 존재였습니다.


티르는 오른손을 잃은 채로도

여전히 전쟁과 정의의 신으로 남아

세상의 균형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스트라빈스키 – 원시적 리듬의 폭발


1913년, 발레 《봄의 제전》 초연.

스트라빈스키는 전례 없는 원시적 리듬과 불협화음을

무대 위에 쏟아냈습니다.

우아함과 고상함을 추구하던 발레와는 정반대의 공연이었죠


청중은 충격과 분노로 고함을 질렀고, 서로 말다툼을

벌였습니다.

결국 경찰까지 출동하는 소동으로까지 번졌습니다.

그 무대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그야말로 ‘화(火)의 제전’이었습니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초상(1920년대)

: 20세기 음악 혁신의 상징인 작곡가 스트라빈스키.

발레 봄의 제전과 * Pulcinella * 로 기존 음악 질서를

뒤흔든 거장.



피카소 – 형태를 부수고 새로 짓다


피카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아이는 예술가로 태어난다.

문제는 커서도 예술가로 남아있는 것이다.”


예술가로 태어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눈과 손,

마음을 평생 지켜내는 일은

어려운 도전입니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끈기,

세상과 맞서는 용기,

그리고 어린 날의 순수를 잃지 않는 의지.

그것 없이는

어린 시절의 빛은 금세 사라져 버립니다.


그래서 그는

형태를 부수고 새로 지으며,

세상 속에서 끝내 예술가로 남았습니다.




파블로 피카소,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초상」. (1920)

: 피카소가 발레 Pulcinella 협업 시기에 그린

스트라빈스키의 측면 초상화.

간결한 선으로 음악가의 성격과 긴장감을 포착한 작품.



두 거장의 만남


피카소는 1917년, 나폴리에서 이탈리아 전통 즉흥극

*코미디아 델라르테 * 를 직접 보았습니다.

배우들이 가면을 쓰고 과장된 몸짓으로 연기하며,

풀치넬라처럼 독특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무대는

화려한 의상과 자유로운 에너지로 가득했죠.


그때 받은 영감은 1920년, 발레 <Pulcinella>의 무대와

의상 디자인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작품의 음악을 맡은 이는 스트라빈스키였습니다.


서로 다른 언어로 창조하던 두 거장은

같은 무대 위에서 서로의 불씨가 되어 반응했고,

회화와 음악이 어우러진 하나의 경이로운 예술을 완성했습니다.




뱅 쇼(Vin Chaud)

: 레드 와인에 시나몬, 정향, 오렌지, 설탕을 넣어

천천히 데운 프랑스식 겨울 음료.

손끝에서 심장으로 전해지는 불의 온기.



프랑스의 뱅 쇼(Vin Chaud) – 불의 향을 품은 한 잔


프랑스 겨울의 공기에는 유난히 따뜻한 향이 배어 있었어요.

크리스마스 마켓의 나무 부스,

알프스 스키 리조트의 노천 테이블 위.

작은 냄비에서 김을 뿜으며 데워지는 것이 바로 뱅 쇼였죠.


레드 와인에 시나몬과 정향, 오렌지 껍질, 설탕을 넣고

약불에서 천천히 데우면,

알코올의 날카로움은 사라지고

향과 맛은 한층 둥글어집니다.


그 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면,

불의 온기가 손끝에서 심장으로 스며드는 듯했죠.



독일의 멀드 와인(Mulled Wine)

- 겨울의 불꽃을 머그에 담다.


독일의 크리스마스 마켓에서는

머그잔 속에서 피어오르는 멀드 와인을 만날 수 있었어요.

시나몬 스틱이 잔 속에 살짝 기대어져 있고,

그 위로 오렌지 조각이 노랗게 떠 있었죠.

한 모금 머금으면, 은은한 향기가 입 안 가득 번지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1995년, 영국에서 처음으로 와인의 풍요로움을

체감했어요. 그 시절 한국에서 와인은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 살 수 있었지만, 영국에는 와인을 파는

작은 샵이 골목마다 있었습니다.


가격은 훨씬 저렴했고,

병의 모양과 라벨 디자인이 얼마나 예쁘던지…

그 자체가 작은 미술관 같았어요.


뱅 쇼의 따뜻한 향을 맡을 때마다,

그때 그 유럽의 겨울 거리와

작은 와인샵 진열대의 와인병들이..

그 냄새들이 기억납니다.



디킨스와 영국식 와인


그리고 오래전,

찰스 디킨스도 이와 비슷한 향을 사랑했던 사람이었죠.

그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에는

뱅 쇼와 거의 닮았지만 영국식인 Smoking Bishop이

등장합니다.


크리스마스의 밤,

에베네저 스크루지와 밥 크래칫은 작은 난로 곁에 앉아

이 따뜻한 와인을 나눠 마셨어요.


그것은 단순한 술이라기보단,

서로를 향해 미소 짓게 하고,

지난 오해와 서운함을 녹이는

마음의 온기였을 테죠..


그 덕분에

빅토리아 시대의 겨울 속에서,

뱅 쇼의 따뜻한 영국 사촌형 스모킹 비숍은

크리스마스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스트라빈스키와 피카소는

화요일이 품은 심장 소리에 가장 잘 맞춰 걷는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불꽃처럼 타올랐고, 용기처럼 나아갔으며,

세상 앞에서 늘 새로운 싸움을 시작했으니까요.



화요일은 붉은 튤립과 빨간 카네이션처럼

사랑과 용기를 꽃피웁니다.


루비처럼 강렬하고,

시나몬처럼 오래 남는 여운을 남기죠.


화요일은 불꽃이 핏속을 흐르는 날,

심장이 먼저 걷고 발걸음이 뒤따르는 날입니다.


오늘도 당신 안의 불꽃이

따뜻하게 오래 타기를 바랍니다.



* 주석 *

1. 《Pulcinella》 풀치넬라

17세기 이탈리아 나폴리의 즉흥극 전통인 코메디아

델라르테에 등장하는 익살스러운 인물로, 뾰족한 모자와

하얀 옷, 검은 가면이 특징입니다. 꾀가 많고 유머러스하며, 상황을 교묘히 빠져나가는 캐릭터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2. 코메디아 델라르테(Commedia dell’arte)

16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즉흥극 형식의 연극으로,

배우들이 정형화된 캐릭터와 가면을 쓰고 대본 없이 상황에 맞게 연기합니다. 사랑, 속임수, 풍자 등이 주된 소재이며,

유럽 전역의 연극과 오페라, 발레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