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있는 반전, 생각 없는 진실 8) 럭비와 음악, 다시 일어서는 삶
승부보다 먼저 배운 건, 서로를 믿고 서는 법이었다.
달리기 전, 숨을 고르는 이 순간은 이미 음악 같았다.
All for one, one for all ,
럭비와 음악,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이야기
〈트라이〉는 언제나 뒷전이었던 럭비를 꺼내온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 점이 더 신선했어요. 경기의 룰을 다 몰라도, 공을 옆이나 뒤로만 패스해야 한다는 단 하나의 규칙만으로도 알 수 있었습니다. 동료를 믿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였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따뜻했던 건,
승부보다 성장과 회복을 보여주려는 시선이에요.
다리가 떨리고, 온몸이 아파도 끝까지 버텨내는 그 순간은 단순한 경기의 한 컷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닮아 있었습니다.
“웨일스 럭비의 붉은 용,
관중과 선수들이 만들어낸 하나의 목소리”
실제로 럭비 경기장에서는
음악이 사람들을 하나로 묶습니다.
웨일스의 합창, 아일랜드의 포크송이
경기장을 합창무대로 바꾸듯,
드라마 속 응원과 감동도 음악처럼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이 드라마를 보며 다시금 느꼈어요.
스포츠와 음악은 단순한 경기와 음표를 넘어,
삶을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을 일으킨다는 것을.
오네게르 : 경기장을 악보로 옮기다
Arthur Honegger, Rugby (1928) ,경기와 음악 사이
그의 시선은 럭비의 충돌과 호흡을 오케스트라의 언어로 바꾸어 놓았다.
프랑스 작곡가 아서 오네게르는 “나는 축구보다 럭비를 더 좋아한다(Je préfère le rugby au football)”고 말했습니다. 그는 개인의 기량보다 충돌과 호흡이 만들어내는 집단의 에너지를 사랑했고, 그 힘을 음악으로 기록하고자 했습니다.
1928년 발표된 〈Rugby〉는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속도와 충돌, 역동의 리듬을 압축한 곡이었어요.
현악기의 빠른 질주는 패스처럼 튀고,
금관의 포효는 충돌처럼 울렸습니다.
음악은 곧 필드의 숨결이 되었지요.
“No player is greater than the team, and no coach is greater than the team either.”
“선수도 감독도 팀보다 앞서지 않는다. 모두가 하나일 때 진짜 힘이 나온다.”
이 메시지는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가 하나의 교향곡을 이루는 순간과 닮아 있지요.
흥미로운 건, 이 곡에는 작품번호가 없다는 사실^^
〈Rugby〉라는 단순한 제목 하나만으로,
이미 음악은 경기가 되어버린 셈이었으니까요.
홀스트 : 〈목성〉에서 World in Union으로
구스타프 홀스트(Gustav Holst)의
모음곡 《행성》 (The Planets, Op. 32)에서는
다채로운 우주의 모습이 음악으로 펼쳐집니다 .
그 중에서도 ‘목성(Jupiter, the Bringer of Jollity)’ 은
장엄하면서도 따뜻한 선율을 담고 있는 곡이에요.
구스타프 홀스트(1874–1934),
별에서 경기장까지 이어진 선율의 여정.
그 한가운데,
잔잔히 흐르는 중간부.
후일에는 찬송가 〈I Vow to Thee, My Country〉[1] 로 불리며, 예배당의 기도로 울려 퍼졌지요.
홀스트는 그 선율을 자신의 마을 이름을 따
‘Thaxted’라 불렀습니다.
〈목성〉의 선율, ‘Thaxted’로 불리며 찬송가에서 경기장으로 .
그러나 이 곡이 럭비의 얼굴이 된 건, 1991년이었습니다.
세계가 하나로 호흡하는 노래를 원하던 럭비 월드컵.
작사가 찰리 스카벡이 새 가사 〈World in Union〉 을 붙였고, 뉴질랜드 소프라노 키리 테 카나와 ( Kiri Te Kanawa )의 목소리로 첫 무대에 올랐습니다.
그날 이후, 이 곡은 월드컵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왜 매번 다른 목소리일까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개최국의 얼굴을 담기 위해서지요.
1995년 남아공, 인종 화합의 화음.
2011년 뉴질랜드, 마오리어의 울림.
2019년 일본, 아시아의 자부심.
그리고 2023년 프랑스, 전통과 크로스오버의 조화.
같은 선율이지만,
매번 새로운 목소리로 다시 태어나며
“연합(union)”의 메시지를 더 크게 확장했습니다.
원래는 교회의 찬송.
지금은 경기장의 합창.
“어디선가 들어본 듯하지만, 매번 다른 색깔.”
이것이 바로 World in Union이 가진 힘이었습니다.
윤계상님의 대사,
”Let’s be a miracle.”
우리 모두가 함께 기적이 되자.
한 선율, 그러나 늘 새로운 목소리.
한 팀, 그러나 늘 새로운 기적.
홀스트의 선율은 별에서 시작되었지만,
전 세계 팬과 선수들 위에 울려 퍼지는
연대의 선율로서 특별함을 지닌 램프처럼
럭비의 정신에 새로운 빛을 더했습니다.
Invictus - 스포츠가 국가를 하나로 묶을 때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Invictus》(2009).
모건 프리먼이 넬슨 만델라 역을 맡아 화해와 통합의 메시지를 전함.
남아공의 럭비팀 ‘스프링복스’는
한때 백인들의 상징이었습니다.
아파르트헤이트, 즉 인종차별 정책 아래에서
흑인들에게는 상처 같은 존재였지요.
경기장에서 흰색과 초록 유니폼이 뛰는 순간,
많은 흑인 관중들은 등을 돌렸습니다.
만델라 , 분열을 넘어 하나 됨을 이끈 지도자.
하지만 대통령이 된 넬슨 만델라는
복수 대신 화해를 선택했습니다.
그는 럭비를 버리지 않고 오히려 끌어안았습니다.
흑백 갈등의 상징 같던 ‘스프링복스’를
국민 통합의 도구로 바꾸어낸 것이지요.
영화 속 만델라를 연기한 모건 프리먼.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며, 내 영혼의 선장이다.”
이 한 줄이 영화 전체를 지탱하는 숨이 되었습니다.
2009년,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Invictus〉[2] 는 바로 이 반전을 스크린에 담았습니다. 감옥에서 27년을 보낸 만델라가 마음을 붙들었던 시 〈Invictus〉의 마지막 구절,
“I am the master of my fate, I am the captain of my
soul.”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며, 내 영혼의 선장이다.”
이 문장은 꺾이지 않는 그의 신념이었고,
영화의 숨결이 되었어요.
2019년 럭비 월드컵 우승을 기념하는 남아공 스프링복스 팀. 거리 응원 속에서 ‘Shosholoza’가 울려 퍼지며 국민 전체의 노래가 되었습니다.
영화 속 경기장에는 남아공 전통가요 〈Shosholoza〉[3]가 울려 퍼졌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라, 길을 열어라”라는 뜻을 지닌 이 노래는 흑인 탄광 노동자들의 합창에서 시작해 이제는 국민 전체의 응원가가 되었어요. 흑인과 백인이 함께 이 노래를 부르며 같은 팀을 응원하는 순간, 럭비는 단순한 경기를 넘어 연합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장면에서 드라마 〈트라이〉의 대사가 겹쳐 들립니다.
“It wasn’t just about winning or losing a game. It captured what a ‘try’ means in life.”
“단순히 이기고 지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인생에서 ‘트라이’가 의미하는 바 -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고, 함께 해내는 것 -그 자체였다.”
이들은 삶이 주는 도전,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용기, 그리고 함께하는 기적의 이름이었어요.
다시, 모두는 하나를 위해
럭비는 언제나 무대의 중심이 아니었지만, 드라마와 음악, 그리고 영화 속에서는 늘 우리를 지탱해 주는 힘이 되었습니다.
결승전을 앞두고 주가람 감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Your legs will shake. Every part of your body will ache. But if you push through, this moment will
become our greatest highlight. Can you do it?”
오네게르의 음표, 홀스트의 선율, 만델라의 신념,
그리고 드라마의 외침까지.
그 모든 목소리가 하나로 합쳐집니다.
스포츠는 쓰러짐을 넘어 다시 일어서는 힘,
그리고 삶을 새롭게 시작하게 하는 이름입니다.
“우리는 기적이 된다.” ,스포츠가 전하는 강한 희망의 메시지
주석
[1] 〈I Vow to Thee, My Country〉
제1차 세계대전의 상흔 속에서
애국과 희생을 노래하는 곡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영국 왕실과 군대 의식, 장례식에서 자주 불렸고,
특히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장례식에서 울려 퍼지며
전 세계인의 기억에 남았습니다.
같은 선율은 훗날 〈World in Union〉으로 변주되어,
스포츠와 세계적 연합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2] 〈Invictus〉
영국 시인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William Ernest Henley,
1849–1903)의 시로, 라틴어로 ‘정복되지 않은‘ 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넬슨 만델라는 로벤섬 수감 시절 이 시를 반복해 읽으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전해집니다.
마지막 구절 “I am the master of my fate, I am the captain of my soul” 은 영화 《Invictus》(2009)에서도 만델라의 신념을 상징하는 핵심 문장으로 사용되었습니다.
[3] 〈Shosholoza〉
은데벨레(Ndebele) 어로 ‘앞으로 나아가라’ 또는 ‘다음 사람을 위한 길을 열라’는 뜻입니다.
원래 19세기 경 탄광 노동자들이 증기 기관차의 리듬에 맞춰 부르던 ‘노동가요’였으며, 만델라도 로벤섬 수감 시절 이 노래를 부르며 희망을 잃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남아공 전역의 스포츠 경기장으로 퍼져, 국민적 응원가로 자리 잡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