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이 아닌 Pause, 글로 이어진 음악의 숨결
언니가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나는 작은 키로 어깨너머를 기웃거리며 악보를 읽기 시작했다.
그 시절의 왕성한 호기심은 지금껏 내 삶을 지켜주는 숨결이자 삶의 중심이 되었다.
최근 몇 개월 전까지는 매일은 아니었지만, 연습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다음 날을 살아낼 숨을 채워주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이런 연습을 피아노와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면서, 나의 내면에 금이 가는 듯했고 조각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내 어릴 적에는 이름조차 없었던 공황이 다시 고개를 들어 뿌리를 내리는 것 같았다.
1980년대 중반 중학교 시절엔 공황장애라는 진단명도, 그에 맞는 약도 없었다.
병원에 가 검사를 진행했지만 “아무 문제 없다”는 말뿐이었고, 나는 다시 기절하듯 쓰러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왜 이래…아무 일도 없다는데 왜 이런 증상이 자꾸 나타나는 거야?” 스스로를 책망하듯 나 자신을 다그치기도 했다.
중학교 1, 2학년 시절, 피아노를 그만둔 그 두 해 남짓한 시간 동안 나는 유독 많이 쓰러졌었다는 걸, 커서 알게 되었다.
내게 피아노는 단순한 취미나 전공 악기가 아니라, 내게 숨을 불어넣어 주던 존재였다는 걸.
그런데 이제는 그 피아노마저 마음껏 붙잡지 못할 거라는 생각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혀왔다.
그래서 무언가를 찾아야 했다. 절실하게.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음악과 함께 살아온 내 하루하루를 기록하면 어떨까?’
어떤 모습의 나일지라도 늘 나를 품고 치료해주었던 건반의 기억을 악보처럼 글로 남기고 싶었다.
그러면 언젠가 다시 내 손이 건반 위에서 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마지막일 듯했던 멈춤은 Pause였음이 느껴지는 시간들을 마주했다.
마음의 기록처럼 써내려간 글들이 하나둘 모여들었고, 내 이야기를 읽어주시는 분들이 생겼다.
지인은 글 속에서 오래 묻어두었던 기억이 떠올라 눈물이 났다고 했고, 어떤 분은 잊고 있던 음악을 다시 꺼내 듣게 되었다고 얘기해주셨다. 때로는 자신의 추억을 덧붙여 긴 댓글을 남겨주신 분도 있었다.
그렇게 이야기는 ‘나 혼자만의 기록이어도 괜찮아‘라고 여겼던 나를 누군가와 연결해주는 정다운 이음줄(Slur)이 되었고, 음악이 닿지 못해 답답하던 내 마음을 탕탕 두드려주었다.
피아노는 또 다른 나였고, 나의 오랜 동반자였다.
그리고 글은 지금 내 옆에서 새로운 장르의 곡이 되어 주고 있다.
음악이 미처 다 담아내지 못한 감정과 공기, 그리고 풍경들을 글이 대신 채보해 주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바라보고, 생각한다.
피아노와 함께했던 숨을 글로 옮겨 한 줄 두 줄 적어내며 하나의 악장을 만들고,
또 다른 리듬과 템포로 두 번째 악장을 써 내려가는 재미는
나를 내 삶의 주체적인 작곡가이자 지휘자로 세워주면서,
내 숨결 같은 음악과 나란히 호흡하게 한다.
언젠가는 잘 숙성된 와인처럼, 같으면서도 다른 오묘하고 매력적인 이 두 세계가 아름답게 어우러져, 내가 지키고 싶은 것들을 품어내는 동그란 바퀴가 되기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