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있는 반전, 생각 없는 진실10) 작은 선율에서 태어난 큰 울림
작은 것에서 시작된 큰 힘
소금 한 줌으로
제국의 무거운 권위를 무너뜨린 간디가 있었다면,
들판의 작은 선율로
예술의 성벽을 뒤흔든 바르톡이 있었다.
(Béla Bartók, 1881–1945).
작은 선율에서 출발해 거대한 울림을 남긴 음악가.
헝가리 민속의 노래를 채집하고,
그것을 인류애의 언어로 승화시켰다.
그 시작은 미약해 보였으나,
그 힘은 정의의 여신이 들어 올린 저울처럼
세상의 균형을 되찾게 했다.
그래서 9월, 정의의 여신 두 번째 이야기는
간디의 소금행진과 닮아 있는,
바르톡의 민속 채집 여정을 따라가 보려 한다.
민속 채집의 여정
• 왼쪽: 바르톡과 코다이,
낯선 땅의 노래를 기록하던 젊은 날.
•오른쪽: 당시 사용된 축음기,
생경한 기계음 속에서 지켜낸 노래
1900년대 초,
젊은 바르톡은 동료 졸탄 코다이와 함께
헝가리와 루마니아, 발칸 반도를 걸었다.
그들이 든 짐은 악보와 펜, 그리고 막 발명된 축음기였다.
문제는 그 축음기가 거대한 깔때기를 달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농가 마당에 기계를 세우면 닭들이 놀라 달아났고, 아이들은 괴물이라도 본 듯 울음을 터뜨렸다.
농민들조차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바르톡은 여러 차례 이렇게 말했다.
“민속음악[1]은 예술의 가장 순수한 근원이다.”
또한 그는 “우리는 이 노래를 보존하려는 것이다” 라는
취지의 글을 남겼다.
( 『The Hungarian Folk Song』 서문, 1924 )
그래서 현장에서는 먼저 자신들이 직접 노래를 불렀다.
이렇게 농민들과의 신뢰를 얻어낼 수 있었다는 사례가
회고록에도 등장한다.
코다이는 후일 이렇게 회고했다.
“We were not merely collecting songs,
but preserving the soul of a people.”
(우리는 단순히 노래를 모은 것이 아니라,
한 민족의 영혼을 보존하고자 했다.)
“우리가 당신들의 소리를 빼앗으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남기려는 겁니다.”
조금씩 마음이 열리자,
그 자리에서 흘러나온 선율들이
축음기의 원통에 새겨지고 악보로 옮겨졌다.
그렇게 수만 곡의 민속 선율이 사라짐을 면하고,
예술의 뿌리로 되살아났다.
민속 선율, 두 얼굴
바르톡이 남긴 수많은 채집 가운데,
두 작품은 그 여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Romanian Folk Dances, Sz.56》은
현장에서 발견한 춤곡들을 거의 그대로 옮겨,
민속음악의 생생한 숨결을 들려준다.
《Hungarian Peasant Songs, Sz.71》은
헝가리 농민들의 노래를 바탕으로 예술적 재구성을 거쳐,
채집을 넘어 작곡가의 언어로 승화된 작품이다.
하나는 발견의 현장감,
다른 하나는 예술로의 변용을 담고 있다.
이 두 곡을 통해 작은 선율이
어떻게 거대한 예술로 자라났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Romanian Folk Dances, Sz.56
바르톡 《Romanian Folk Dances, Sz.56》
제1곡 〈Stick Dance〉 악보.
트란실바니아에서 채집한 춤곡의 생생한 선율이 실려 있다.
1915년,
바르톡은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 지방에서 수집한
여섯 개의 춤곡을 바탕으로 이 작품을 완성했다.
당시 트란실바니아는 헝가리령이었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루마니아에 편입된 지역이기도 하다.
여섯 개의 짧은 피아노 소품 (총 6분)
각 악장은 1분 내외, 빠른 템포와 색채 변화가 있다.
장조·단조가 아닌 도리안, 리디안, 믹소리디안[2]같은
교회선법을 사용하고 있다.
1917년에는 관현악 버전(Sz.68)이 만들어졌고,
졸탄 세케이의 바이올린과 피아노 편곡으로
세계에 널리 퍼졌다.
특히 1곡 Stick Dance는 헝가리·루마니아 민속의
투박한 5음 음계가 그대로 살아 있다.
짧지만 힘 있고, 단순하지만 뿌리 깊은 소리.
이 곡은 민속 선율이 어떻게 예술로 승화되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Hungarian Peasant Songs, Sz.71
바르톡 《15 Hungarian Peasant Songs, Sz.71》 악보.
헝가리 농민들의 선율을 채보해 예술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또 다른 대표작은 〈헝가리 농부의 노래, Sz.71〉 이다.
15곡으로 이루어진 소품집으로,
바르톡 스스로 “소나타 형식을 느슨하게 갖췄다”고
말한 작품이다.
각 곡은 헝가리 농민들의 노래에서 직접 채보된 것으로,
겉으로는 단순한 선율이지만 그 안에는
기쁨과 슬픔, 분노와 체념 등 다양한 감정이 스며 있다.
특히 6번 곡은 배신과 후회, 절망을 담은
음유시와 같은 음악으로,
민속 선율 속에 깃든 색채와 감정의 결이 절절하게 녹아 있다.
눈으로 듣는 헝가리 민속의 선율
화려한 색채와 무늬로 수놓인 헝가리 전통 의상은
민속 선율의 감정을 시각으로 옮겨온 듯하다.
아이들의 웃음, 어른들의 삶, 축제의 기쁨과 애환까지..
옷감 위에 새겨진 문양은
노래와 춤처럼
민중의 이야기를 담아낸 또 하나의 언어다.
이 작품은 선율이 예술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음을 증명한다.
민속음악은 흥겨운 춤 그 너머의,
인간의 감정을 모두 담아내는 그릇임을 보여준다.
민족을 넘어, 인류로
바르톡은 처음엔 헝가리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마음으로
민속 채집을 시작했다.
그러나 곧 깨달았다.
헝가리 선율은 슬라브, 루마니아, 발칸, 터키 음악과
긴밀히 닿아 있다는 것을…
이 발견은 환영만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극렬한 헝가리 민족주의자들은 그를 비난했다.
“헝가리 음악에 다른 나라의 피를 섞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르톡은 단호히 말했다.
“The brotherhood of all peoples, a brotherhood in spite of wars and conflicts.”
(모든 민족은 전쟁과 갈등에도 불구하고 형제다.)
그에게 민속음악은 민족의 깃발이자 동시에,
인류애의 언어였다.
아리랑과 닮은 울림
왼쪽 : 전통 민요 〈아리랑〉 악보.
5음 음계 위에 민족의 기억과 정서를 담아낸 대표적 노래.
오른쪽 : 바르톡의
《Three Hungarian Folksongs from Csík》 중
제1곡 〈공작새〉.
민중의 노래를 예술로 옮겨 적은 바르톡의 첫 걸음.
우리에게 아리랑이 있듯,
헝가리에도 마을마다 변주된 수많은 노래가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두 음악 모두 5음 음계[3]라는
공통된 뿌리를 지닌다는 점이다.
일제 강점기에 아리랑이 민족의 깃발이었다면,
헝가리 농민들의 노래 역시 제국의 그늘 속에서
존엄을 지켜낸 증언이었다.
작은 것은 결코 작지 않았다
나는 피아니스트로서 바르톡을 자주 연주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의 정신은 지금도 내 마음속깊은 곳에 머물러 있다.
작은 노래 한 줄이 민족의 혼을 지켜냈고,
그 선율은 결국 인류의 형제애로 번져갔다.
작은 것은 결코 작지 않았다.
주석
[1] 민속음악
민속음악은 특정 민족이나 지역 공동체의 삶과 정서를 담은 음악이에요. 세대를 거쳐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이어져 왔지요. 단순한 오락을 넘어서 노동, 의례, 축제 등 일상과 깊이 연결되어 있어요. 바르톡은 이런 민속 선율을 채집하고 기록하면서, 단순한 자료를 넘어서 음악학적 가치와 예술적 재창조로 이어가게 했어요.
[2] 도리안, 리디안,믹소리디안 선법
서양 음악의 전통적인 교회 선법(Church Modes) 중 일부예요. 민속 선율 속에서 자주 발견되지요.
•도리안(Dorian, 레부터 시작)은
단조이면서도 희망적인 빛깔을 담고 있어요.
•리디안(Lydian, 파부터 시작)은
밝고 환상적인 느낌을 주는 선법이에요. (#4음 사용)
•믹소리디안(Mixolydian, 솔부터 시작)은
장조와 비슷하지만 7음을 낮춰서
소박하고 민속적인 색채를 띠고 있어요.
민속 선율에서 자주 발견되는
도리안, 리디안, 믹소리디안 선법
[3] 5음 음계 (Pentatonic Scale)
5개의 음으로만 이루어진 음계예요.
반음 진행이 없어서 단순하면서도 맑은 울림을 줘요.
한국의 〈아리랑〉을 비롯해 아시아, 아프리카, 동유럽 등 세계 여러 민속음악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지요.
이런 보편성 덕분에 민속 선율은
국경을 넘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되었어요.
5음음계 : 장음계의 4음(파)과 7음(시)을 제외한
도, 레, 미, 솔, 라 다섯 음으로 이루어진 음계예요.
단순하면서도 맑은 울림 덕분에
아리랑을 비롯해 세계 민속음악에서 널리 발견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