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riation2.슈베르트와 포글,한 편의 이야기처럼

《이유 있는 반전, 생각 없는 진실》 별책부록

by 이정민 Ophelia


술잔을 기울이는 자리마다 음악은

그날의 박자로 숨을 쉬었습니다.

베토벤에게도,

슈베르트에게도,

친구들과 함께하는 잔은

삶을 멋지게 건네는 매개체였지요.


계절의 빛처럼 스며든 노래,

우정과 기쁨을 건배하듯 이어주던 선율.

두 번째 바레이션 슈베르트는,

술잔에 담긴 노래와 오랜 벗의 이야기입니다.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음악을 나누던 빈의 저녁

- 예술과 우정이 어우러진 순간



슈베르트와 포글, 인연의 시작


슈베르트가 스무 살 무렵,

그는 재능 있는 젊은 작곡가였지만

아직은 이름 없는 교사 출신의 청년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자신보다 열여섯 살 많은 성악가,

요제프 폰 포글을 만났어요.


성악가 요제프 폰 포글 (Joseph von Vogl, 1768–1840)



포글은 당시 빈 무대에서 인정받던 가수였고,

슈베르트의 노래에 첫 숨결을 불어넣어 준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의 만남은 곧 음악적 동지로 이어졌고,

이 우정은 슈베르트의 짧은 생애의 곁을

끝까지 지켜주었습니다.




슈베르티아데, 노래와 술잔이 머물던 자리


그 무렵, 슈베르트와 친구들은

빈의 아파트와 저택 응접실에 모여

노래하고, 시를 읽고, 서로의 삶을 나누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모임을 ‘슈베르티아데

(Schubertiade)’라 불렀습니다.


음악과 웃음, 그리고 작은 잔이 오가던 그 밤은

예술이 삶이던 이들의

사적인 자리이자, 조용한 축제였습니다.


슈베르티아데(1815~1828)

- 빈에서 열린 슈베르트와 벗들의 음악 모임



보통 스무 명에서 마흔 명 남짓,

슈베르트 또래의 젊은이들만이 아니라

연배가 있는 이들도 함께했습니다.

성악가와 시인, 화가와 법률가, 교사 —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음악을 듣고, 시를 낭독하며,

대화와 웃음을 나누던 자리였지요.


빵과 과일, 와인과 맥주가 곁들여지던 그 밤은

오늘날의 살롱 콘서트이자 문학 동호회,

그리고 우정으로 엮인 조용한 예술의 연회처럼

품격과 따뜻함이 공존하던 순간으로 그려집니다.



술잔의 노래, Trinklied


그 자리에서 자주 울려 퍼진 노래가 있었습니다.

바로 슈베르트의 〈Trinklied, 술잔의 노래〉였지요.


· 〈Trinklied〉, D75 (1813)

열여섯 살의 소년 슈베르트가 쓴 첫 곡.

청춘다운 경쾌한 에너지가 담겨 있습니다.


· 〈Trinklied〉, D148 (1815)과 D183 (1815)

삶과 술의 즐거움, 그리고 친구 사이의 위안을 노래했지요.


· 〈Trinklied im Mai〉, D857 (1825)

봄의 환희와 자연,

그리고 삶의 기쁨을 술잔과 함께 노래한 합창곡으로,

오늘날까지도 무대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 중, 봄의 기쁨을 가장 밝게 노래한 〈Trinklied im Mai〉,

D857의 첫 소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슈베르트, 〈Trinklied im Mai〉 D857

- 봄과 우정을 건배하던 노래



“Bekränzet die Tonnen und zapfet mir Wein,

der Mai ist gekommen, wir müssen uns freu’n!”


“술통에 화관을 씌우고, 와인을 따라 주오, 5월이 왔으니, 우리는 기뻐해야 하네!”



여기에서 술잔은

봄의 빛과 삶의 기쁨,

우정과 예술을 함께 축하하는 상징이었고,

슈베르티아데의 분위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노래였어요.




마지막 노래, 포글의 목소리


세월이 흘러 병이 깊어져

더 이상 자유롭게 연주할 수 없었던 슈베르트.

그때 포클이 그의 곁에 다가와,

대신 가곡을 불러주었습니다.



모리츠 폰 슈빈트,

〈피아노 앞의 슈베르트와 요한 미카엘 포글〉(1868)

- 두 사람의 음악적 우정을 그린 그림



익숙하지만 새로운 울림,

친구의 목소리에서 슈베르트는 조용히 눈물을 글썽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속삭이듯, 이렇게 말했지요.


“Ja, das ist meine Musik…so habe ich es mir gedacht.”

“그래, 이게 바로 내 음악이야… 내가 바라던 그대로야.”


그 말에는 기쁨과 안도, 그리고 떠나가더라도 음악은 남으리라는 확신이 담겨 있었습니다.



포글의 목소리 속에서 슈베르트는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음악은 이제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의 목소리 속에서 다시 살아 이어지리라는 것을.


그래서 그것은 영원히 건네질 노래,

우정의 술잔으로 남으리라는 것을.



프란츠 슈베르트(1797–1828)


그렇게 슈베르트의 가곡은 한 잔의 기품 있는 와인처럼,

포글의 목소리 속에서 따뜻하게 흘러넘쳤습니다.


병든 순간에도, 떠나가는 길목에서도

그들의 노래와 음악은 하나처럼 서로를 감싸며

삶의 끝까지 동행하였습니다.


짧은 생이었지만, 그 우정은 긴 단단한 매듭으로 남아

지금도 우리 곁에서 함께하고 있습니다.


마치 오래된 술잔처럼…

세월이 흘러 더욱 깊고, 따뜻한 향을 머금은 것처럼요.



추가로 보는 이미지


슈베르트와 포글 - 음악으로 이어진 영원한 동행

(모리츠 폰 슈빈트의 스케치)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묘

- 빈 중앙묘지에서 다시 만난 두 음악가

(왼쪽: 베토벤, 오른쪽: 슈베르트, 중앙은 모차르트 기념비.

모차르트의 실제 무덤은 성마르크스 묘지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