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있는 반전 , 생각 없는 진실13)
• To the Immortal Beloved
(가수 윤하의 〈기다리다〉 일부 가사를
문학적 비교 목적으로 인용하였습니다.)
프롤로그
“침묵의 길 위에서도, 그는 음악으로 대화했다.”
- 1812년 여름, 체코 테플리츠에서 만난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과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812년 7월,
체코 북부의 온천 휴양지 테플리츠(Teplitz).
이곳에서 베토벤은 ‘불멸의 연인에게’ 편지를 쓰던 중,
《색채론》을 집필하던 괴테를 만났다.
두 거장의 첫 만남이자,
예술가의 위엄과 인간적 거리감이 교차한 순간이었다.
사랑은 어쩌면 음악을 닮았다.
지금의 한 음과 그다음 음 사이,
쉼표의 공간 - 그 공백의 기다림은 언제나 설렘이었다.
그 여백에 채워질 나의 감정을 조율하는 일은, 늘 즐거웠다.
다음 음을 어떻게 이어가야 가장 자연스러울지,
손끝의 모양, 호흡 하나까지 무수히 연습하던 순간들.
그리고 딱 맞았을 때의 안도감과 환희.
사랑도 이와 다르지 않았겠지.
• 불멸의 연인에게 - 1812년 여름
(1812년 여름,
베토벤이 머물던 테플리츠의 거리와 온천 공원)
“그의 발자취가 여전히 온천의 바람 속에 머무는 곳.”
1812년 7월 6일, 7일 즈음.
체코의 온천 도시 테플리츠(Teplitz)와
프라하(Praha)를 오가며
‘불멸의 연인(Die unsterbliche Geliebte)’에게
세 통의 편지를 썼다.
그의 나이 마흔하나.
피아노 위에는 악보가, 그 옆의 책상에는 펜과 편지지가 놓여 있었을 것이다.
아침, 그는 이렇게 적었다.
“Mein Engel, mein Alles, mein Ich…”
(나의 천사, 나의 모든 것, 나의 자아여…)
1812년 7월 6일,
베토벤이 체코 테플리츠에서 쓴 편지의 첫 장.
훗날 ‘불멸의 연인에게(To the Immortal Beloved)’로
불리게 된 원본이다.
잠에서 깬 첫 순간, 부른 사랑의 이름.
그 고백은 윤하의 노래처럼 닮아 있다.
“그댄 내 마음 알까요.”
그의 사랑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음악이었을까.
그가 사랑한 음악만큼의 ‘그 무언가’ 였을까.
• 밤의 편지
밤이 찾아왔지만, 그는 잠들지 못했다.
편지의 문장은 열망처럼 흘러나왔다.
“Ohne dich kann ich nicht leben…
Ohne dich - ohne dich…”
(당신 없이는 살 수 없소… 당신 없이는, 당신 없이는…)
무엇을 그리도 기다렸을까.
노래 〈기다리다〉가 말하듯,
“오지 않을 그댈 알면서도
또
하염없이 뒤척이며 기다리다.”
이 기다림이 가득 채운 열정의 시간들은
교향곡 7번 2악장 Allegretto 속에
그대로 스며 있는 듯하다.
베토벤, 교향곡 7번 A장조 Op.92 - 2악장 Allegretto
(출처: Bärenreiter Verlag / musescore.com)
교향곡에서 대개 느린 템포로 작곡되는 2악장이지만,
베토벤의 교향곡 7번 2악장(The Second Movement of Symphony No.7)은 Allegretto(조금 빠르게)의
빠르기를 지녔다.
고요하고 잔잔한 흐름 속에서,
콘트라베이스까지 더해질 만큼 점점 커지고 넓어진다.
이래야 마음이라도 후련했을까.
무언가 조금이라도 더 빨리 닿고 싶었던걸까.
“여기 있다”라고 점점 더 크게, 넓게 소리쳐야
사랑하는 이가 알아줄 거라 생각했을까.
• Allegretto
어찌 보면 ‘조금 느리게’라는 뜻,
그러나 바꾸어 보면 ‘조금 빠르게’ 일 수도 있는
마법의 단어.
그 모호한 경계 안에서,
그의 음악은 기다림과 그리움 사이를 오갔다.
끈질기게, 집요한 Ostinato 리듬처럼…
꺼질 수 없는 희망이 다시금 꺼내지는 음악처럼.
(Ostinato: 한 성부에서 짧은 리듬이나 선율이 반복되는
기법으로써, 음악에 끈질긴 에너지와 긴장을 더한다.)
• 마지막 고백
며칠 뒤,
세 번째 편지의 끝에서 그는 이렇게 적었다.
“Ewig dein – ewig mein – ewig uns.”
(영원히 그대의 것, 영원히 나의 것, 영원히 우리의 것.)
이 메아리는 그의 음악 속에서도
서정적인 노래로 이어지는 듯하다.
마치 사랑의 회상을 담은 듯한,
따뜻하고 달콤하게 흐르는 선율.
윤하의 가사가 다시 떠오른다.
“나는 그대만,
그대가 아니면
또 어제처럼 기다리고 기다리는 나예요.”
• 나의 음악, 나의 연인
나는 연습을 하다 보면 문득,
음악이 나인지, 내가 음악인지 모를 때가 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언제나 내가 음악에게
더 많은 사랑을 건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음악은 가까이 있으면서도 내 마음 같지 않다.
그래서 더 다가가고 싶고,
더 간절히 기다리게 된다.
어쩌면 베토벤도 그랬을 것이다.
그의 불멸의 연인은 한 여인이었을 수도 있고,
동시에 그가 평생을 걸어 사랑한
음악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결국 이렇게 약속했을 것이다.
“Ewig dein – ewig mein – ewig uns.”
(영원히 그대의 것, 영원히 나의 것, 영원히 우리의 것.)
•에필로그
사랑은 끝내 닿지 못했어도,
기다림은 음악이 되어 버렸다.
부쳐지지 못한 편지들과 함께,
그의 애끓는 고백은
선율을 투명히 두드리며,
마치 공기와도 같은 울림으로
우리와 11월을 천천히 걷는다.
피아노 위에 남은 울림이 완전히 사라질 때쯤,
나는 그의 편지에서 흘러나온 숨결을 들었다.
기다림은 사랑이고,
사랑은 결국 음악이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잠들죠.”
기다림이 머문 자리.
인용 출처:
윤하 〈기다리다〉 (2007, Kakao Entertainment)
(문학적 비교·해석 목적의 부분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