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왕과 만파식적 - 피아노 위의 수호룡

5. 소소한 음악의 기쁨 / 음악으로 쓰는 설화의 숨결 i

by 이정민 Ophelia

- 피아노 위 드래곤이 들려준 오래된 이야기


붉은 피아노 위, 까만 드래곤 인형이 조용히 저를 지켜보던 어느 날,

딱! 들켰답니다.

그래… 오늘은 연습 전에…

“이야기 하나 해줄까?” 하는 듯,

피아노 위의 투 (투쓸리스의 애칭) 는

눈빛으로 슬쩍 저를 꾀어냈어요.

ㅎㅎ 어떻게 알고…


“죽은 뒤 용이 되어 바다를 지키겠다”는 왕의 약속.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바다 아래 잠든 수호자의 이야기.


이 조용한 드래곤은 어쩌면…

그 옛날의 용왕과 어떤 비밀스러운 거래(?)를 나눈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봤어요.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되었죠.


- Once upon a time… 용이 되어 바다를 지킨 왕의 이야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제30대 문무왕은 세상을 떠나며 이렇게 말했대요.


“나는 죽은 뒤, 용이 되어 동해에서 나라를 지키겠다아 아~!”


그 유언에 따라

그는 감포 앞바다의 수중 바위섬에 묻히게 되었고,

지금도 그곳은 ‘문무대왕릉’이라는 이름으로 고요히 바다를 지키고 있어요.


바람이 거세게 불고, 파도가 세차게 휘몰아치는 날이면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하곤 했대요.


“저건 파도가 아니야.

용이 된 왕이 부르는 노래야.”


그 노래는,

지켜야 할 것을 위해 조용히 자리를 지킨 이의 숨결 같았죠.

약속의 멜로디이자, 소리 없는 연주처럼…


- 만 가지 파도를 잠재운 피리, 만파식적


문무왕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아요.

아들 신문왕의 등장이요!


어느 날, 용왕이 잠든 바다 근처에서

한 그루의 신령한 대나무가 자라났고,

그 대나무로 만든 피리를 신문왕이 얻게 됩니다.


그 피리의 이름은~


일파도 아닌, 십파도… (이건 건너 뜀. 안 될 듯 지나감…)

백파도 아닌, 두둥~ 만파식적(萬波息笛)!


(솔직히 저도 하나 있었음 해요.

쓰나미가 몰려올거란 알림이 있을 때마다…

그걸 ‘잠잠~자암‘자게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 피리는요, 날마다 오는 단순한 악기가 아니랍니다.

잘 보셔요, 사용법이 이렇습니다:

• 전쟁이 일어나려 할 때 (아ㅠ)

• 역병이 퍼질 듯할 때 (앗.. 코로ㅠㅠ)

• 백성의 마음이 어지러울 때

(날이면 날마다 불어제껴야 할 듯ㅠㅠㅠ)


신문왕이 피리를 불면,

모든 소란이 사라졌다고 해요.


불안을 잠재우는 음악,

모두를 위한 기도처럼 울려 퍼졌던 그 피리.

지금도 다시 나타나면… 정말 좋겠어요. 제발… PLZ.


- 지리산의 용소, 또 하나의 전설


이 얘기를 들으며 넋을 놓고 있던 하늘 푸르른 날,

“비 오는 날 좋아해?”

그러더니 드래곤이 슬그머니 꺼낸 이야기.


화창하기 그지없는 날에 들려준,

촉촉한 빗소리 같은 이야기였어요.


바다를 지킨 용왕 말고,

산속에서 ‘비를 부르던 용’이 있었다는 전설이에요.


전라도 지리산 자락에는 용소(龍沼) 라는 연못이 있어요.

옛날 옛적에 마을에 큰 가뭄이 들자,

한 노인이 그 연못 앞에서 피리를 불며 기도했대요.


“용이시여,

목마른 이 땅에 비를 내려주소서!”


피리 소리가 연못 위를 감싸던 그 순간,

하늘이 흐려지고 단비가 내렸다고 해요.


(…근데, 저는 이런 생각도 들었죠.

‘아니… 좀 일찍 불어주시지… 그쵸?’ )


그 소리는

파도를 잠재운 만파식적의 선율과 닮았고,

바람을 쓰다듬던 용의 숨결 같았대요.


이런 소리…

저도 피아노로 꼭 연주해보고 싶었어요


- 달숨의 왈츠


얘기를 듣고… 피아노 앞에 앉았는데요,

마치 감상문처럼

아무 생각 없이 흘려보낸 음들이

자연스럽게 세 박자의 멜로디로 피어났어요.


그건 파도를 잠재우는 숨결 같았고,

언제나 곁을 지켜주던 드래곤의 노래처럼 느껴졌죠.

(아주 강한 주관적인 제 생각입니다!)


이 선율을

제 딸 재연이는

《달숨의 왈츠》라고 이름지어 주었어요.


달숨.

달이 쉬는 숨.

바다 위, 조용한 용의 호흡.


이 왈츠는

피아노와 드래곤이 지켜낸 순간들의 기억,

그리고 저마다의 파도를 지나가는 이들을 위한

작은 마음의 연주가 되었으면 해요.

(조만간 유튜브에서 만나요)


- 다시 살아나는 전설들


가끔 생각해요.


피아노 위에서 저를 바라보던 투,

동해의 바위섬 아래 잠든 용왕,

지리산 연못 위로 퍼졌던 피리의 숨결…


어쩌면,

모두 같은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지도 모르죠.


누군가를 위해 자리를 지키는 존재.

말없이 곁을 내어주는 존재.


오늘도 건반 위에서

저는 그 용의 호흡을 들으려 합니다.


바다의 기억,

목마른 땅을 적시는 연못의 기도,

그리고 지금의 찰나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


* 다음 편 예고도 있습니다 *


수줍은 용, 반반 닭(?) 전설도

제 창작 연주와 함께 이어집니다.

기대해 주세요 ~

![문무대왕릉 실사 사진]

“문무왕의 전설을 따라, 오늘도 고요히 숨 쉬는 동해의 파도”

문화재청 (heritage.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