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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라미 Sep 16. 2022

내 안에 쫄보가 산다

내 손에 맞는 한 줌의 용기만 있으며 될거야

"어어, 까치발 드시면 안돼요. 키 기준 미달로 탑승 못하십니다. "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던 것 같다. 눈을 까뒤집고 고개를 쳐들어도 130cm를 넘지 못하자 살짝 발을 들어보았지만 안내요원에게 들키고 말았다. 5살 터울의 언니는 의기양양하게 혼자 입구를 통과했다. 롤러코스터에 탑승하는 그녀의 모습은 용맹했고 라이딩을 즐기고 나오는 표정은 개선장군 같았다.


그때마다 내 입은 삐죽거렸다.


"겁쟁이가 아니라 키가 작아서 못 타는 거라고!"


드디어 130센티가 넘었을 때 무엇보다 기뻤던 건, 당당하게 롤러코스터에 올라 언니 옆에 앉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더 이상 꼬맹이가 아니라고 인정받는 기분이 들어 어깨를 으쓱해 보이기도 했다.


그 성향 그대로 자라 웬만한 놀이기구에서는 소리 한번 안 지르는 용맹한 어른이 되었다. 놀이동산의 꽃은 퍼레이드가 아닌 심장 쫄깃한 롤러코스터나 바이킹이지. 아니면 자이로드롭!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끔 번지 점프에 도전하는 연예인들을 볼 때마다(그들의 대부분은 강제 연행이 되고, 뛰어내리는 그 순간까지 눈물을 글썽인다 - 의도된 콘셉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돈 받고 호사를 누리는 것 같아 부러워졌다. 언젠가는 번지점프에 꼭 도전해야지라고 중얼거리곤 했다.




지난해 여름 휴가지는 여수였다. 낭만의 도시에 온 만큼 밤엔 유람선을 타기로 결정한 후, 낮에는 아이들과 무얼 할까 고민하는데 큰 아이가 대뜸 라마다 짚트랙을 타야 한단다. 여수에 오기 전부터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어랏. 검색해보니 이것은 어나더 레벨이다. 120미터 높이의 라마다 호텔 24층 옥상에서 짚라인을 타고 바다 쪽으로 내려오는 코스다. 아찔하다. 슬쩍 꽁무니를 빼본다.


"나는 안 탈래. 나 빼고 즐겁게 타고 와."

"어? 왜? 놀이기구 잘 타던 사람 아니었어?"


남편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스터리라고 여길만했다. 나조차도 젊은 날의 겁 없던 호기로움은 어디로 간 건지 궁금했으니까. 혹시 짚라인 자체가 무서운 건가? 맞아. 짚라인은 거의 안 타보긴 했지. 그렇다쳐도 예전의 나는 번지점프도 해보고 싶다고 중얼대던 사람인데 짚라인은 그보다 하위 레벨이 아닌가? 이봐요.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거죠? 나도 내가 낯설게 느껴졌다.


남편은 일단 라마다 호텔 앞까지 가보고 가서 결정하자 했다.


호텔에 도착하자 나를 제외한 나머지 3인은 벌써부터 흥분하기 시작했다. 가장 신난 건 역시 첫째.


"엘리베이터는 이쪽이야!"

"어?? 일단 와서 결정한다는 거 아니었어?...?"

"일단 24층까지 올라가서 결정해도 늦지 않아."


얼떨결에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24층에 도착하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높아서 현기증이 났다. 멀쩡히 두 다리로 서 있는 것도 정신이 아득한데 대롱대롱 매달려서 내려간다고?

하얗게 질린 얼굴로 주위를 둘러봤다. 다리가 풀리셨는지 바닥에 주저앉아 계시는 아저씨가 눈에 들어왔다. 딸로 보이는 20대 여성분이 그를 설득하고 있었다.


"아빠, 엄마랑 우리 셋이 추억 한번 만들어보자. 잠깐만 참으면 돼요."

"아니 내가 왜 해야 되는데, 죽기 싫어."

"아이고 여보, 안 죽어. 남들 다 하는 거야. 더 나이 들면 하지도 못한다고."


양쪽에서 모녀가 부축하듯 일으켜 세우고는 장비 렌털 샵으로 향했다. 여전히 휘청거리는 아저씨의 다리는 질질 끌려가는 모양새였다. 남편은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웃음을 참는 듯 보였으나, 동병상련을 느낀 나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모든 게 무서웠다. 안전사고라도 날까 봐. 심장이 너무 놀라 멈출까 봐. 발판도 없고 줄 하나에 의지해 매달려 간다는 것이, 그리고 그 줄이 썩은 동아줄일 것 같아서 두려웠다. 혹은 내 가족 중 한 명이 붙잡은 줄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섬뜩했다.


그렇게 따지면 다른 놀이기구도 다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나서는 안되지만 상위 레벨의 놀이기구들  모두 안전을 100% 장담할 수는 없고, 치명적으로 운이 나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가 선택하는 삶의 모든 과정이 완벽히 안전하지도 않다. 언제든 교통사고가 날 수도 있고 비행기가 추락할 수도 있다. 생각하면 할수록 더 무서웠다. 그냥 사는 게 다 무서워졌다.


30분을 버텼으나, 결국 가족들의 설득에 넘어가고 말았다.


'아 죽었다. 에라 모르겠다 ㅠㅠ'


철컹철컹 탑승장으로 올라가는 철제 계단 소리와 진동조차 공포스러웠다. 너무 무서워 사진도 못 남겼다.


'사진이고 나발이고 죽기 싫다고!!!!!'


탑승 직전, 안전 교육을 받으며 뮬(신발)을 벗으라 해서 배낭에 소지품과 함께 넣었다. 아직 안전 문은 닫혀 있지만, 이미 돌이키기에는 늦었다.


잠시 후. 으악. 안전 문이 열린다. 지옥의 문이다.

난 이미 죽은 목숨이라고 되뇌는 순간 낙하. 이후는 그냥 괴성뿐.




막상 짚라인을 타보니 바다와 하늘이 너무 예뻐서 황홀했다던지, 재미있어서 또 타고 싶다던지 하는 드라마틱한 반전은 결코 없었다. 빨리 내리고 싶고 두 번 다시 타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 들었으니까.


짚라인을 계기로 두려움을 극복했다며 주먹을 불끈 쥐고 자신감을 찾는 영화 같은 결말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혹시라도 그런 결말을 기대했다면 진심으로 미안합니다).


식상하게도 현실적인 결말은 어느새 소심하고 불안 가득한 아줌마가 되어 버렸다는 사실이었다.


'내 안에 쫄보가 살고 있었구나.'


나는 내향인이지만 익숙해지면 나름의 색깔을 드러내는 유쾌한 사람이었다. 노잼 혹은 정석대로 행동하는 사람은 숨이 막혔다. 색다른 모험도 삶에 즐거움을 더하는 일들이라 생각했고, 도전하지 않고 안주하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해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점점 더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 꺼려지고, 나서서 의견을 내거나 주장하는 일을 어려워하기 시작했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낯선 지역에 가는 것도 불편했다. 모임이나 회사에서 괜한 드립을 쳤다가 반응이 없으면 밤에 이불 킥을 날리며 주책 떨지 말자고 다짐하는 날도 많아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 용기나 에너지 레벨이 많이 떨어졌나보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건지, 이런저런 경험을 하다 보니 무리하지 않고 싶은 것인지, 애초에 "아닌 척" 했을 뿐 훨씬 더 내향적이고 안전지향적이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중요한 것은 지금의 나에게 감당하기 힘든 용기나 에너지를 강요하는 것은 스스로를 더 힘들게 한다는 사실이다. 내 용량에 맞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내 선택에 대한 판단 기준을 외부가 아닌 내 안으로 가져오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쫄보(겁쟁이 또는 유리멘탈로도 불릴 수 있음)임을 쿨하게 인정해버리는 것에서 출발한다. 상태를 수용하면 방법을 찾는 것은 쉬워지니까.


변화를 위한 시도 역시 하루아침에 바꾸려 하지 말고 낮은 레벨에서부터 뛰어내려 보기로 했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 혹은 덜 두려운 것부터 조금씩 하다 보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레벨이 어느 정도 인지 알게 될 테고, 이것을 판단 기준으로 삶을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크고 거창한 목표도, 극복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도 필요치 않다. 그저 내 손에 맞는 한 줌의 용기만 쥐고 살면 될거다. 그 누구도 24층에서 또 뛰어내리라고 등을 떠밀지는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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