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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라미 Aug 17. 2022

그 시어머니에 그 며느리의 덕후 생활

그녀들의 콘서트 & 뮤지컬 회전문 돌기

"어~ 손 타치도 했고, 앞쪽 자리라서 얼굴도 제대로 다 봤어. 너무 좋았지!"


지난 5월, 임영웅 콘서트에 다녀오신 어머니는 즐거우셨냐는 물음에 소녀처럼 흥분을 감추지 못하셨다.


6월에는 7월 인천 콘서트 예매에도 성공하셨다고 하셨다. 그리고 8월 서울 콘서트 때 예매를 부탁한다는 진한 부담을 남기셨다.


아, 잠깐만요! 어머니 또, 또 가신다고요?


예매일을 며칠 앞두고 온 어머니의 리마인드 톡.

7월 7일 예매일, 잊지 않았지?


남편은 톡을 보자마자 스피커 모드로 전화를 걸었다.


"엄마, 몇 번을 가도 그렇게 좋아?"

"응."


단호하고 결연하다. 때로는 구구절절한 설명 없는 짧은 대답이 더욱 비장하게 들리는 법이다.


통화를 끝낸 남편은 마치 전장에 나서는 장군처럼 결의에 찬 눈빛으로, 이번에야 말로 우리 손으로 직접 티켓을 거머쥐어보자는 파이팅을 외쳤다. 피켓팅이라 불릴 만큼 피 튀기는 티켓팅이니 전쟁이라면 전쟁이었다. 게다가 지난 콘서트들은 시누이측 용병들(지인의 자녀들로 추정)의 도움으로 티켓팅에 성공한 것이기에, 이제는 직계인 우리가 직접 표를 구해서 효도 한번 해보고 싶다 다.


맞아. 남이 해주는 것보다 아들 딸이 직접 해드리면 얼마나 어깨뽕이 올라가시겠어? 나도 덩달아 승부욕이 불타올랐다. 우리 집에도 나름 금손으로 통하는 손 빠른 중학생이 있기에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나저나 언제부터 임영웅 콘서트 티켓이 효심의 바로미터가 된 것인가? 전국 아들딸들에게 효도에 대한 동기부여를 고취시키고 있는 그의 존재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혹시 부모님께 제대로 효도해보고 싶으신 분이나, 갈등을 겪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피케팅에 동참해보세요! 약간의 운은 필요하지만 진심이 하늘에 닿는다면 한방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 손 빠른 중고등학생 혹은 Z세대 용병이 필요할 수 있으니 사전에 스케줄 확인과 컨디션 관리해두시고요!

그리고 결전의 날, 내딸 금손이 손가락 컨디션 관리에 성공한 덕인지, 전국 효자효녀 대열에 등극했다. 무려 VIP석을 예매해버린 것.


어머니는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실 듯 기뻐하셨다. 어머니 세.. 세 번째인데도 그리 좋으신 거예요? 회전문 제대로 도시는 당신을 찐 팬으로 인정합니다.


그리고 다음 , 티켓은 우리 집으로 직접 가지러 오겠다고 하셨다. 우리가 아니, 정확히는 당신 손녀가 10년 치 효도했다는 말씀과 함께.

하지만 공사가 다망하신 어머니는 콘서트 전날까지도 우리 집에 오지 못하셨다. 다행히  콘서트장이 집에서 멀지 않은 위치에 있어서 당일에 직접 가져다 드리기로 했다. 딸과 함께 두손 모아 공손히.


올림픽공원역에 도착하니 그곳은 이미 축제의 장이었다. 쨍한 파란색 티셔츠를 입은 어르신들은 덥고 습한 날씨에도 상기된 기분을 감추지 못하셨다. 여기저기에서 까르르까르르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그나저나, 엄마 저 파란 티셔츠는 공식 굿즈인가 봐. 다들 입고 계셔."


딸아이가 여기저기 둘러보더니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그런가 보네. 영웅시대라고 쓰여 있어. 파란 스카프랑 모자도 굿즈인가 보네! 네임 핀 같은 것도 있나 봐"


여사님들은 저마다 '임히어로', '영웅아 사랑해', '건행'이라고 적힌 네임 핀을 꽂고 계셨다.


"할머니도 굿즈 티셔츠 입으셨을까? 영웅시대 활동하시니까 당연히 입으셨을 것 같은데?"


그때 저 멀리서 익숙한 미소를 띤 여사님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머니였다.


"아, 역시, 입으셨네!"


블루 티셔츠와 스카프는 물론 멋들어진 페도모자에 각종 네임 핀까지, 축제를 제대로 즐기시는 모습이었다. 이 삼복더위에 설레는 마음이 앞서 3시부터 와계셨다고 한다. 역시 어르신들은 부지런하다니까.

영웅시대 그녀의 경쾌한 뒷모습

우리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말 "건행(영웅시대 분들 사이에서 통하는 인사말이라고 함)"으로 당신의 건강과 행복을 빌어본다.




이제 며느리인 내 이야기를 할 차례다.


남편은 나더러 뉴비(뒤늦게 입덕해서 원래 팬인양 설쳐대는 사람)라고 놀리지만 나는 엄연히 박효신의 찐 팬이다.


뮤지컬에 콘서트까지 어떻게든 피켓팅을 뚫고 그의 공연 현장을 찾아왔다.


최근 몇년간은 활동이 뜸해 간간이 음악만 들으며 지내오다 지난 4월, 그가 뮤지컬로 컴백한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다시 덕후 라이프를 소환했다.


하지만 오랜만의 활동 재개 영향인지, 티켓팅 난이도는 한층 상향된 듯 했다. 예매 사이트가 열리자마자 그의 공연 회차만 줄줄이 매진되었다


2차 오픈에서는 나의 간절함이 통했는지 남편이 4 연석을 거머쥐는 쾌거를 달성했다(나에겐 로또 1등 당첨 다음으로 큰 소원임). 2층 앞쪽 중앙 열로 자리도 나쁘지 않았다. 세찬 비바람이 퍼붓는 7월 어느 날 우리 4 식구는 세종문화회관으로 총출동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다시 시작된 효신 앓이. 딸내미 역시 그의 공연을 한번 더 보고 싶어 했고 우리 집 공식 금손이 답게 한밤중의 취켓팅(취소표를 줍줍 하는 것)에 성공했다.


며칠 전, 두 모녀는 티켓 두장을 공손히 들고 다시 세종문화회관을 찾았다. 공연이 끝난 후, 두 번째 관극임에도 불구하고 감동과 흥분을 주체하지 못해 발걸음이 쉬이 떼지지 않았다.


"우리, 퇴근길 볼래?"


조심스럽게 딸아이에게 물었다. 딸은 이 엄마 주책이라는 표정을 지었으나 싫지는 않은 눈치였다. 계단과 광장으로 둘러싸인 퇴근길은 이미 그의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비록 맨 앞줄에 서는 건 실패했지만 앞사람들 머리 사이로 시야가 확보되었다.


동영상 촬영은 나보다 키가 큰 딸아이가 맡고 나는 눈에 그를 담기로 했다. 완벽한 전략이야.


40분의 기다림 끝에 그가 눈앞에 나타났다. 저 멀리 아득했던 무대 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가까운 거리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의 뒷모습. 가까이에서 찍은 사진은 나만 소중히 볼 예정

딸아이는 계획대로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카메라에 실었는데  막판에는 그가 우리 대열 쪽으로 너무 가까이 다가오는 바람에 흠칫 놀라 화면이 크게 요동치기도 했다.


나는 그가 차에 올라타는 순간까지도 눈을 떼지 못하고 차게 손을 흔들었다.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딸아이가 묻는다.


"엄마 아까는 진짜 폴짝폴짝 뛰더라. 그렇게 좋아?"

"응."


때로는 이런저런 설명 없는 짧은 대답이 더욱 강한 긍정을 나타내기도 하는 법이다.


P.S. 개학을 앞둔 딸의 한마디.

"할머니랑 엄마 덕후 생활 지원해드리느라 여름이 다 갔어."

"응! 영화롭고 찬란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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