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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라미 Jul 24. 2022

욕설과 함께 시작된 하루. 그럼에도불구하고

열받을 땐 심호흡을 해보자

* 생각하지 못한 전개일 수도 있으니, 비위가 약하신 분은 창을 닫아주셔도 좋습니다.


아침 7시. 웅크리고 자던 몸을 활짝 폈다. 흔한 뒤척임이었다.


수면을 취할 때 자세를 많이 바꾸는 편은 아니지만, 잠에서 깰 때쯤이면 한두 번 세를 바꾸면서 새우처럼 돌돌 말린 몸을 쭉쭉 펴는 무의식적 습관이 있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런 건가?? ㅎㅎ)


다리를 쭉 늘리는 순간 발목과 정강이 사이에서 차갑고 축축한 그래서 엄청나게 찝찝한 액체의 기운이 느껴졌다. 


안 좋은 일임을 직감했다. 배에 돌돌 말려 있던 이불을 걷어내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발아래에는 둘째 강아지가 누워 있었다. 이 녀석이 밤새 발아래에서 자는 바람에 더 몸을 웅크릴 수밖에 없어 몇 번을 깨곤 했다. 그러니 얘는 이곳에서 자고 싸고를 반복한 것임이 분명했다.


'잡았다 요놈!'


동시에 상상조차 못 했던 광경을 목격했다.

액체 위에 고체 두 덩이가 얹어져 있었던 것!


내 다리에 닿은 것이 고체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개자식아!"라는 사자후에 가까운 외침이 곱디고운(?)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네네, 오늘 하루는 쌍욕, 그리고 강아지 배설물들과 함께 시작되었던 것이지요.


며칠 전에도 화난다는 이유로 험한 말을 내뱉고는 이내 후회한 적이 있어 다시는 욕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요 감정의 존재임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사실 간밤에 쩝쩝대는 소리가 거슬러 자다 깨보니, 이 녀석은 문이 열린 욕실로 들어가 휴지를 잔뜩 물고 나와서는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환장의 향연을 벌이고 있었다. 현장을 본 이상 치우지 않을 수는 없었기에 나름 순한 맛으로 욕을 해가며 정리한 시각이 새벽 2시 반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휴지의 일부가 위와 소장 대장을 거쳐 배출된 듯했다.


고체를 제거한 후 침대 매트를 걷어내 욕실로 들고 갔다. 고무장갑을 끼고 분노의 양치질 아니고 빨래를 시작했다. 씩씩거리면서 세탁기에 넣고 나오니 어느새 30분이라는 시간이 흘러 있었다.


그렇게 기상 30분 만에 녹초가 되었다.




홀로 우당탕탕 고군분투하는 와중에도 주말 아침이라 그런지 집안은 고요했다.


나의 30분은 꿈이었던 것인가?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도 모를 혼란 속에 물 한잔을 들이켜고 털썩 의자에 앉았다.


열불 나는 내 속과 달리 차분하고 조용한 집안의 공기에 잠시 언짢음을 느끼기도 했지만, 오히려 혼자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에너지를 쏟아낸 후 충전해야 할 때는 혼자인 편이 나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연습을 통해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롯이 혼자서 편안해지는 것들을 하면, 사라진 에너지를 채울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해온 터였다.


몇 달 전 요가원에서 신기한 호흡법을 배웠다. 코를 한껏 확장하고 가슴과 배 한가득 숨을 들이켜고 내쉬면서 목은 살짝 잠가 빨대처럼 구멍을 만들어 보라는 기묘한 주문이었다. 당연히 그날은 무슨 말인지, 어떻게 해야 가능한 것인지 짐작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언젠가 회사에서 일에 지쳐 심호흡을 하고 싶어 졌을 때 목구멍에 정신을 집중했더니 이게 되더라는 거다! 코에 가까운 목구멍 위쪽으로 빨대가 생기는 신묘한 경험을 했다. 요가 선생님 설명대로 더 길고 깊은 호흡이 가능했다.


그 이후로 마음을 삭히거나 흥분을 가라앉히고 싶을 때면 이 호흡법, 일명 빨대 호흡을 했다.


오늘도 차분히 마음을 정화하고자 이 호흡을 시작했다. 호흡에 집중하기 위해 눈을 감았더니 가장 먼저 패드 위의 액체와 고체가 떠올랐다. 토할 것 같은 울렁임을 억누르고 다시 호흡에 마음을 모았다.


이내 이왕 일어난 일 되돌릴 수는 없으니 빨리 해결이자 하자며 빨래에 집중하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인간은 감정의 존재이기에 예기치 못 한 불쾌한 일이 생겼을 때 화가 치밀고 짜증이 나는 것을 억누르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어른이라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문제라는 것은 해결하지 않으면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설령 스스로 사그라진다 하더라도 매번 이런 요행을 바랄 수는 없다 .그러니 약간의 감정은 허용하되, 재빨리 해결책을 찾고 행동해야 한다.


해결된 이후에도 감정은 남아 있을 수 있다. 오늘 내가 귀한 시간이 증발되어 속상해하고, 쓸데 없는 것에 에너지를 써버렸다는 허탈감에 빠졌던 것처럼 말이다.  

​이때는 감정을 사고로 전환하여, 소모된 에너지와 감정을 회복하기 위해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인가를 생각해본다.

나에게 필요한 건 심호흡이었다. 무작정 숨쉬기.

마침 창문을 열어 두었더니 반가운 새소리가 들린. 다시 평화로운 아침으로 돌아왔다.


개똥으로 시작된 개똥철학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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