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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라미 Jun 26. 2022

일어난 김에 아침 일기나 써볼까?

태어난 김에 사는 인생, 재미라도 찾아보자

한달 전부터 부쩍 수면 시간이 부족해졌다.


하루 이틀이야 버티고 견딘다지만, 잠 빚이 누적되면 피로는 복리로 쌓인다. 아침이 개운하지 않으니 예민 보스 모드로 하루를 시작한다.


"에이씨, 오늘도 망했어."


처음 한주는 출근 준비해야 할 시간이 다가올 때까지 누워있었다. 한창 무기력에 빠져있었던 시기이기도 해서 동영상을 보거나 그동안 미뤄왔던 생활용품을 구매했다.


하지만 2시간을 이렇게 누워있다가 일어나면, 분명 몸은 쉬었는데 땅속으로 꺼질 것 같은 찌뿌둥한 느낌이 온종일 지속되었다.


피곤과 피로의 뜻이 서로 어떻게 다른지 굳이 국어사전을 찾아보지 않아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두 가지 단어들이 환장의 팀웍으로 세포 하나하나에 자리를 잡은 듯했다. 나는 분명 살아있는데 삶에서 살활(活)이라는 글자가 쏙 빠져버린 것 같았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거다.


사라진 활(活)을 되찾아 오려면 잠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하지만 잠 이 녀석은 일방적인 숨바꼭질을 제안하고는 꼭꼭 숨어버렸다.


매일 밤 오늘은 꼭 찾게 되길 소망하며 잠들지만, 새벽 5시에 눈을 뜨면 알게 된다.


"오늘 밤에도 못 찾았구나. 또 내가 술래네."


그러다 불쑥, 영영 도망가버린 것 아닐까? 평생 이렇게 수면부족으로 살아야 하면 어쩌지? 그러면 미쳐버릴 것 같은데, 아니 이미 마음 어딘가가 고장 나서 미쳐 있는 걸지도 몰라. 정신과 상담이라도 받아야 하나?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주말이라면 낮잠 찬스가 있기에 생각에도 조금 여유가 생기지만, 직장인 엄마의 평일은 To Do List로 가득 차 있으니 시작도 안 한 하루가 덜컥 무서워진다. 집중력이 떨어져 실수하면 어쩌지? 사무실 책상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앉아있는 나를 상상한다.


왜 이렇게 된 거냐며 화를 내다, 아 우울해라는 감정이 마음을 스친다.


"야!!! 우울! 너 나가! 그리고 멈춰."


우울감에게 마음자리를 내어준다면, 침잠의 블랙홀에 빠질게 뻔하다. 부정적인 감정 중에 우울이가 제일 무섭다. 얘를 쫓아내야 해.


그날 이후부터는 5시에 눈이 떠지면 바로 불을 켜고 책부터 집어 들었다. 앉아서 읽다 누워서 읽다를 반복했지만, 누워서 영상 시청이나 쇼핑만 하는 것보다는 한결 나았다. 활기는 부족하지만 마음이라도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내 아침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왜 잠을 못 자는 지를 파헤치고자 함은 아니었고, 책이 가르쳐 준대로 실천해보고 싶어서였다. 긍정적인 마음은 훈련과 습관으로 만들어지며, 아침 일기가 마음을 실행으로 연결하는데 어마어마하게 도움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잠을 설치는 원인은 최근 이 쫄보 인간이 과감히 앞으로의 인생을 결단해 버린 탓도 있는 듯하다. 물론, 장고의 시간이 있었지만 뒤도 안 돌아보고 인생을 선택해버렸으니 불안한 건 당연한 것이다. 그러니 수면 부족은 일종의 통과의례가 아닐까? 막상 그 미래가 펼쳐지면 덤덤해지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품기로 했다.


잠과의 숨바꼭질에 에너지를 쏟으며 신경을 곤두 세우는 대신, 이왕 이렇게 된 거 상황을 받아들이고 더 긍정적인 생각을 하다 보면 마음도 편해질 수 있을 거라는 기대였다.


해님과 바람에서 해님의 전략이다. 언뜻 정면 승부하지 않는 비겁자로 보이지만, 억지로 바꾸지 않는 것이다. 내 통제권을 벗어나는 건 그냥 놔두고, 할 수 있는 걸 하다 보면 바뀔 수 있다고 믿기.


일기를 쓰다 보니 그날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오늘 하루 어떤 일이 기대되는지, 감사하고 싶은 일들, 컨디션이 가장 좋은 시간에 하면 좋을 일들처럼 설레게 하는 무언가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하찮은 기쁨과 변주를 상상하는 것도 긍정적인 기운을 주었다. 어느 날은 출근길 마카롱이 나에게 힘을 줄 것 같았고, 어느 날은 저녁 요가 수업이 설렘으로 다가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코디 조합으로 기운을 업시키고 싶다는 이야기, 내추럴 데이로 노메이크업을 해보겠다는 문장도 써 내려갔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부분까지 신경 쓰고 있는 스스로가 한심하기도 했지만, 스스로 만족하는 하루를 만들기 위해 뭐라도 재미를 찾으면 되는 것 아닌가?


일기를 쓰면서 에이씨 망했다고 생각한 아침이 조금씩 살만한 아침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물론 여전히 피곤과 피로의 뭉탱이가 온몸을 휘감는 기분이지만, 어차피 내일 어찌 될지 알 수도 없는 인생이니 오늘 하루를 소중히 보내는 것에만 마음을 쓰기로 했다.


어차피 인생은 매일 리셋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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