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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라미 Oct 23. 2022

6개월 동안 매일 일기를 썼더니

내 마음도 두드리면 열린다

지난해 블로그나 브런치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목표는 1일 1포스팅이었다. 어떻게든 매일 글쓰기를 실천하여 소위 말하는 글빨이나 필력을 일취월장 시켜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3일도 채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된다.


1. 나는 매일 글을 발행할 만큼 부지런하지 않다.

2. 나는 매일 글을 발행할 만큼 콘텐츠가 많지 않다.

3. 나는 매일 글을 발행할 만큼 집중력이 좋지 않다.

4. 나는 매일 글을 발행할 만큼 체력이 좋지 않다.

5. 나는 매일 글을 발행할 만큼 책임감이 크지 않다.


비루한 변명으로 들리겠지만, 중도 포기자에게 있어 자기 합리화만큼 편리한 방법은 없는 듯 하니 눈감아 주시길.


이 중에서 가장 부담을 느낀 건 5번째 항목이었다.


공개 글쓰기는 내 글에 책임을 지겠다는 의무나 부담을 동반해야 하는 행위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 철갑 멘탈을 두르고 개똥 같아도 뻔뻔하거나 쓰레기 같아도 꼿꼿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무게가 덜 했을지는 모르겠다. 지금 이 글도 쓰레기가 될 것 같지만..)


이는 글의 방향이 지식 혹은 정보 전달이 아닌,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쪽에 가깝다는 점과도 관련이 있다. 나도 모르게 솔직한 마음을 휘갈기다 보면 내 감정이 손에 잡히지 않고, 주체하지 못할 때가 종종 생기는 것이다.


특히 '노(怒)'의 경우 글로 삭히려 하면 할수록 소용돌이가 일면서 마치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가 '캔자스 외딴 시골집에서 어느 날 잠을 자고 있을 때 무서운 회오리바람 나타나 끝없는 모험이 시작되는 것'과 같은 스펙터클한 장면 전환이 일어난다.


바보 같은 내가 한심해 죽을 것 같다가도 분 풀릴 때까지 상대방을 욕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이럴 때 글로 두들겨 패 버리면 속이 후련하련만 공개적으로 그런 내용을 쓸 용기는 없었다(그렇다 하더라도 욕설을 쓰지는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정한 어조 교훈의 메시지를 입혀 '나를 안아주자' 또는 '달달한 케익이나 먹으며 기분 전환해야지' 등의 긍정적인 마무리 만으로는 찌꺼기가 남은 듯 속이 불편했다. 나의 본심은 그게 아닌데 에둘러 표현하면서 마음을 예쁘게 포장하려는 것이 위선으로 느껴진 것이다.


더욱이 이 흘러넘치는 감정을 빈곤한 어휘로 담아내자니 필력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 같아 부끄러워졌고, 공개된 공간에서 나라는 인간의 거무튀튀한 면이 부각되는 것도 싫었다.


매일 글쓰기 위한 방법으로서 비공개 일기를 선택한 이유다.


특히 세상 쁜 것들 - 하늘, 바람, 나무, 어린아이의 미소, 강아지들의 기지개 - 로도 마음이 덮어지지 않는 날이면  이 감정의 결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싶어 진다. 그때마다 유치한 단어들로나마 그 층들을 하나씩 벗겨내 씨앗을 발견하고 필요하다면 싹을 잘라버리는 과정을 거친다.


이때는 감정의 밑바닥을 제대로 만나보기 위해 지우거나 고치지 않는다. 모든 스위치를 끄고 검열 없이 의식의 흐름에 맡겨버리는 것이다. 지금의 내가 그때를 바라보면서 어떤 감정이었는지 왜 지금도 불쑥불쑥 튀어나와서 마음 한편을 도려내고 생각을 갉아먹는지를 살펴본다.


하지만 일기를 써도 당장은 감정을 알 수 없고 어떻게 액션을 취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경우도 많다.


최근에는 하나의 갈등에 대하여 3일 동안 마음에게 말을 건 적도 있다.


유난히 그 속을 보여주지 않아 두드리고 소리쳐봐도 답을 구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식의 흐름에 따라 써 내려가는 것뿐이었다.


다행히도 시간이 가면서 조금씩 빛이 보이는 방향을 향해 걷고 있었다. 이 또한 쓰다 보니 알게 된 것이다. 상대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이제 와서 상처받았던 내 마음을 거듭 토로하는 내 마음을 어떻게 납득시켜야 할지라는 것에만 매몰되어 있었는데 흐름에 맡겨 생각을 떨어뜨리다 보니 답이 나왔다.


상대방을 이해하려 애쓰지 말고 "어차피 세상만사 다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런 사람으로 인정해버리자."였다.


그날 이후 응어리는 씻은 듯이 내려가버렸다. 3일 밤을 끙끙 앓고 과음까지 해가며 머리를 쥐었뜯었는데, 방법은 일기에 있었다니. 의외로 단순한 해결법이 허무하기도 했지만, 덕분에 아침 일기 외에 취중 일기에 멍중 일기(멍하니 끄적거리는 것)까지 썼으니 실보다는 '' 많은 아닌가.


우울할 땐 침대 속에서 웅크린 채 영상을 보는 대신 ,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일단 나가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점도 깨달았다. 자전거를 실컷 타고 들어와 바로 써 내려간 일기에 해답이 있었던 것이다. 건강을 조금 해치긴 했으나 자전거를 통해 그 마이너스는 상쇄되었을 것이라는 엉뚱한 믿음을 가져본다. 다음에는 "산책 또는 자전거 + 일기 공식"을 쓰자고 다짐한다.


마음은 자주 들여다보지 않으면 혼자 토라져서 굳게 문을 닫아 버린다. 이럴 땐 내 마음을 나도 몰라서 애가 타기도 하지만 두드리면 결국 열린다. 자꾸자꾸 일기를 끄면서 나에게 말을 걸어 보자. 이 녀석은 워낙 까칠해서 쉬이 속을 보여주지 않지만 은근 츤데레인가 보다. 글로 다가가면 또 좋아라 하니까.


쓰다 보니 마음과 친구가 되었다.


P.S. 물론 날아갈 듯 기분 좋은 일, 유쾌한 경험, 유치뽕짝 이벤트, 오글오글 이불 킥 사연,  낭만 찬란한 순간까지 모든 일상이 일기의 소재다. 단, 검열은 하지 않는다. 지금 이 브런치 글은 망글이 되어가고 있는 탓에 검열하다 자빠지기 일보직전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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