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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라미 Oct 31. 2023

나, 친구가 별로 없는데... 너도?

내향인 부부

[남편] "오늘 약속 취소 됐어. 나랑 저녁 먹어줄 거지?"


오랜만에 잡힌 약속이 갑자기 취소되었다는 남편의 톡.


[나] "응, 당연하지. 근데 좀 아쉽겠네."

[남편] "뭐 그렇긴 한데. 왜 이렇게 후련하지? 솔직히 좀 귀찮았나 봐."


하하. 내 그럴 줄 알았다. 막상 나가서 놀면 엄청 신나게 즐기지만, 외출 준비하는 것도 번거롭고 약속 장소까지 가는 것도 성가신 데다 돌아오는 길은 피곤할 것 같아서 출발하기도 전에 전투력이 급감해 버린다. 그래서 나가지 않을 핑곗거리 어디 없나 찾는 와중에 누군가가 약속을 취소해 주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나도 똑같기에, 그 마음 너무도 잘 안다.


남편이나 나나 친구가 많지 않다. 어쩌다 한 번씩 잡히는 약속이 귀할 수밖에 없는 유형이다. 그런데 찾아주는 사람에 대한 감사함도 잊은 채, 오히려 외출 안 하게 되어서 좋다며 배부른 소리나 하고 있다니. 이러다 나중에 그나마 연락하는 사람들조차 다 잃게 되는 건 아닌지. 우리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나는 오랜 기간 외향형을 지향하는 인간으로 살았다.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성격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관계 맺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어느 집단에도 잘 녹아드는 사람이 환영받는 사회적 통념을 따른 결과이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아이를 매개로 한 만남, 잊힐만 하면 연락오는 친구들, 퇴사자 모임 등 그냥 저냥 유지되는 관계 속에 머무는 시간이 즐겁지 않았다. 자랑이나 험담에 듣는 데에 지쳤고 겉핡기식의 신상 공유도 지겨워졌다. 만남 이후엔 공허감이 밀려왔다. 이내 경조사나 정보의 품앗이 관계 이상의 그 무엇도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이후 애매한 관계들은 모두 청산했다. 굳이 연락처를 지우지는 않았지만 먼저 연락하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들 또한 나를 찾지 않았으니까. 그간 내가 노력해서 명맥을 유지했던 것이지 애초에 인기가 많은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덕분에 나의 인간성과 사회성은 모두 탄로 나 버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홀가분했다. 더 이상 외향형인 양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모임 쫓아다니는 것이 귀찮기도 했는데, 차라리 잘 되었다.



딱 중요한 사람들만 남겨 두니 애매한 관계에 쏟았던 시간이 고스란히 남았다. 시간 부족을 핑계로 미뤄두었던 것들을 하나 둘 시작했다. 꾸준한 책 읽기가 가능했고, 글 쓰는 시간이 확보되었으며 그림과 같은 새로운 취미들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가족들과 대화하는 시간도 늘어났다.


관계가 좁아져 타인에 대한 불필요한 정보에 노출되지 않게 되자, 남과 비교하거나 질투심에 사로잡혀서 스스로를 갉아먹는 경우도 줄어들었다. 주위 반응에 일희일비할 일도 없어졌다. 그 에너지는 내면을 살피는 힘으로 환원되었고, 내가 좋아하는 걸 찾아 나서거나 삶의 방향을 점검하는 데 사용되었다. 나를 만나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외로움이 아닌 황홀한 고독이 자리 잡았다. 고독은 또 다시 에너지를 만들어냈다. 나, 혼자서도 잘 지내는 사람이었네.


남편 역시 우주 최강 귀차니스트답게 먼저 연락 하거나 다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성향이다. 그 때문인지 인간관계가 저절로 걸러져서 주변에 남은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그 역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타입이다. 그의 말이나 행동으로 유추할 뿐이지만, 단순하고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래도 그 시간이 결코 지겹지 않단다. 연애 시절부터 유독 사람이 여유롭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아마도 그 비결은 자신을 향한 시간을 많이 확보하는 데 있는 것 같다. 독서를 많이 하지는 않는 듯 하나 사색은 즐기는 타입이다. 그 덕분일까 사람의 마음을 잘 읽는다.

저녁이 되어 만나기 전까지 우리는 각자의 생활 패턴을 이어가면서 짬을 내어 은둔의 시간을 누린다. 특별한 이슈가 없는 한 서로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으며 뭘 하는지 섣불리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밤 시간은 항상 넉넉하게 비워두고 낮에 응축시킨 에너지로 서로에게 충실한 시간을 갖는다. 이때 하루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쏟아낸다.


가끔 우리 부부 사이가 좋은 것 같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친한 것뿐이에요"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이쯤 되니 알겠다. 우리가 왜 친한 사이가 되었는지 말이다.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질 만큼 서로를 너무 사랑해서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비결은 둘 다 혼자 지내기를 좋아하고 친구가 별로 없다는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 둘 다 남들이 먼저 연락해 주는 "성격 좋은" 사람은 아닌가 보다. 이렇게 사는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판단은 유보하기로 했다. 대신, 인생에 정답은 없다는 말을 잘근잘근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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